내가 그분을 시단(詩壇)에 안내했다고 극진한 예우를 잊지 않는다. 몇 차례 회식(會食)도 이 시인이 알아서 마련했고 내게 밥을 살 기회를 도무지 주지 않는다.
너무 일방통행이 되어서 안 됐다고 하면 제자가 스승을 대접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하여 그분의 마음씀에 내가 도리어 경외감을 느낀다. 쇠고기를 번제(燔祭)로 드리는 식탁에서 주고받는 이야기는 정치나 사회 현상에 대한 시국담(時局談) 보다는 정갈한 문담(文談)이 주어(主語)다.
워낙 나이 들어서 시를 처음 시작하여 현대적 감각이 무딜세라 `올해의 좋은 시``연간우수시선집` 등 그해를 대표(?)한다는 우수(?) 시선집을 모조리 구입하여 시시콜콜히, 노안(眼)에 돋보기까지 동원하여 일독(一讀), 재음미하지만 어째서 그런 시들이 그해를 대표하는 시인지 이해할 수가 없다는데, 뇌 세포가 노쇠하여 그렇다고 장탄식이시다.
이근창 시인은 오십대 후반에 늦게 시단(詩壇)에 들어온 늦깎이지만, 소년 시절부터 시심(詩心)을 닦아온 저력 있는 노익장의 시인으로, 지역 문예지에 발표하는 시 수준이 그 잘된 시집이라는 우수 시선집에 넣어도 단연히 돋보일 정도다. 부끄럽지만 이 시인의 궁금증에 대해 나의 소견을 말씀드리지 않을 수 없다.
잘된 시라고 내놓은 우수 시선집은 특정 출판사가 낸 한 권의 공동 시집으로 그해의 한국 시단을 대표하는 시집이 아니다.
시를 선정한 위원인 평론가나 시인도 일 년에 만편도 넘게 생산되는 시를 다 읽고 시의 등급을 정확하게 판정하는 초인적 문사도 아니다.
별로 그림도 못 그리면서 10명이 합동 전시회를 하고 나서 대한민국 10대 화가라고 명함을 찍어 돌리는 자칭(?) 대가(大家)가 많은 게 우리나라 현실이다. 출판사가 시집을 많이 팔려고 애를 쓰는 것을 탓할 생각은 조금도 없다.
너무 극단적으로 그해의 명시집입네 과대 포장하여 순진한 독자에게 시의 부고장을 보내선 안 된다.
가장 잘된 시집이 이 정도니, 우리나라 시단은 끝장났다고 오판하도록 선량한 독자들을 더이상 울리지 말자.
시 한 편 제대로 못 뽑는 평론가(?)와 별로 감동을 주지도 못하는(?) 시인이 뽑은 시가 제대로 잘된 시일 리 없다.
어느 중진 시인이 신춘문예 심사를 맡아 했는데, 예선 통과 작품 중엔 단선작을 뽑을 수 없어 예선 탈락 작품을 심사하여 뜻밖의 대어(大魚)를 건져냈다고 한다.
차리리 올해의 잘된 시는 그 시집에 안 실린 시라는 것을 알 필요가 있다.
제 시(詩)가 선집에 못 오르니까 공연히 푸념한다고 해도 좋다. 소위 잘된 시선집이라고 나팔 부는 그 시집이 딴 시집과 다름없는 평범한 시집에 불과하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창간한 지 38년이 된 한국의 대표적 시 전문 월간지 시문학에 실린 우수 작품들이 한편도 그 대단한(?) 우수 시선집에 실리지 않은 것만 봐도 우수 시집이란 허구에 불과한 것임을 쉽사리 알 수 있다.
이근창 시인이시여! 우수 시집에 실린 시를 읽고도 감동을 못 받는 것은 이 시인 당신의 잘못이 아닙니다. 제대로 시안(詩眼)을 못 갖춘 채 시를 논()합네, 고(考)하네 하는 문학적 양심이 증발(?)이 됐거나 심안(心眼)이 어두운 상업의 전위가 된 소위 평객·시인들의 대과(大過) 탓입니다.
이 시인이시여! 앞으로는 시 공부는 `우수시집`이라고 나팔부는 시집을 제쳐놓고 평범을 기치로 한 시집을 읽으심이 어떠하시올지요? 우리나라 문학가가 노벨문학상을 못 받는 것은 너무 당연합니다. 끼리끼리 노나 먹는 문학상과 사이비 우수(?) 작품집이 판치고 있는 한 한국 문단의 전도는 암담할 뿐입니다.
양두구육(羊頭狗肉)이라는 옛말이 우리 문단 현실에 아주 걸맞은 말입니다.
한국 사람은 양고기보다 개고기를 좋아하니까 양두구육도 괜찮은 말이라 한다면 저는 더이상 할 말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