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가리 한 마리
물속을 들여다보고 있다
저녁 자시러 나온 것 같은데
그 우아한 목을 길게 빼고
아주 오래 숨을 죽였다가
가끔
있는 힘을 다해
물속에 머릴 처박는 걸 보면
사는 게 다 쉬운 일이 아닌 모양이다
- 이상국 시집 ‘어느 농사꾼의 별에서’(창비,2005)
몇 해 전 설악의 산 속으로 온전히 떠나버린 이성선 시인을 대신하여 속초의 이상국 선생이 설악산과 그 옆자리의 동해를 서정의 물살로 보듬고 있다. 이상국 시인이 갖고 있는 서정의 물살은 진한 연민의 빛깔이다. 그 시적 대상이 세상의 힘없는 사람이든 그냥 자연물이든 매한가지다. “나무를 베면/뿌리는 얼마나 캄캄할까”(‘어둠’전문)에서 보듯 그 연민의 대상이 자연이라 할지라도 그 서정은 우리의 삶으로 곧장 이어진다. 시인이 말하고 있는 저 절망의 ‘어둠’은 이를테면 봄날 산야에 새끼를 까려고 모아둔 꿩의 알을 누가 슬쩍 가져가버렸을 때의 어미 꿩이 갖는 막막한, 깊은 슬픔의 어둠일 테다. 이러한 아픔을 보듬는 시인의 눈빛은 얼마나 따스하고 아름다운가. “목을 길게 빼고”서 “물속에 머릴 처박는” 왜가리의 힘겨운 삶을 그려놓은 시 ‘있는 힘을 다해’도 삶의 연민과 사랑을 노래하고 있다. 왜가리의 행위를 묘사한 1연과 3연 그리고 왜가리의 행위를 골똘히 지켜본 화자가 그 의미를 진술하고 있는 2연과 4연의 대비가 시 형식의 안정감과 내용의 깊이를 더하고 있다. 외모가 마치 한 마리 학(鶴) 같이 맑은 이상국 시인. 강원도 백담사 계곡이든 속초 바닷가든 시인이 거주하는 곳으로 찾아가 그 옆자리에서 앉아 서정의 깊은 물살은 어떻게 품고 펼쳐내는지를 배우고 싶다.
해설<이종암·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