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는 남편의 영원한 누이다. 우리나라 속담에는 불여악처(不如惡妻)라 해서 효자 자식보다 아내가 낫다.
대과에 급제한 허균은 먼저 간 아내의 행장(行狀)부터 써 기렸다. “내 나이 아직 장난치기 좋아할 때였으나 부인은 조금도 싫은 기색을 보이지 않았소. 내가 조금이라도 방탕해지면 번번이 세월은 빠르다고 나무랐소.” 그러면서 부인은 늘 학문을 권했다고 적었다.
부부는 예나 지금이나 알뜰히 아끼는 마음은 여전했다.
칠거지악에 가까운 일을 저질렀다 해도 시부모 삼년상을 같이 치르고 아이들을 성장시켰다면 갈 곳이 없을 경우 내치지 않는 게 지난 법도이었으나 지금은 견우직녀의 정신은 사라져가고 걸핏하면 이혼절차를 밟으니 세월의 변화만이 원망스러울 뿐이다.
일본도 마찬가지였다.
에도시대 만엽집(萬葉集)연구로 대성한 일본 국학의 대가 가모마부치(賀茂眞淵)는 어느 여인숙집 데릴사위로 들어갔다고 한다.
여인숙 일은 뒷전이고 허구한 날 책만 가까이하니 처가 식구들로부터 좋은 대접을 받을 리가 없었다.
그렇지만 아내는 달랐다. “당신은 여인숙 일이나 하실 분이 아니니 집을 떠나 학문에 정진하십시오. 학문을 성취하실 때까지 아이를 키우면서 기다리겠습니다.” 가모 마부치(賀茂眞淵)는 결국 당대 일본 국학을 이끄는 최고 학자가 됐다.
젖 먹는 아이는 어머니의 소리를 들으면 잠든다.
어머니의 마음까지 가져간 아이들은 부모의 사랑, 능력, 심성까지 닮아가면서 성장한다.
부부로 맺어지는 결혼은 부모로부터 받는 가장 소중한 선물이다.
남녀는 단순한 육체적 결합이 아니라 주변으로부터 축복을 받고 양가의 혈통과 전통을 잇고 순결의 중요성을 지키면서 백발이 성성할 때까지 살아가는 것이다.
시인 백석은 만주로 떠돌던 시절 고향에 두고 온 부인과 아이들을 객창(客窓)밖으로 떠올리며 이런 시를 남겼다.
“내 사랑하는 어여쁜 사람이/ 어느 먼 앞대 조용한 개포가의 나지막한 집에서/ 그의 지아비와 마주 앉아 대구 국을 끓여놓고 저녁을 먹는다/ 벌써 어린 것도 생겨서 옆에 끼고 저녁을 먹는다”(힌 바람벽이 있어서-)
유대인에겐 가정은 성전이다. 집에서 아내나 어머니가 차린 음식을 먹는 것이 구약 음식계율이다.
신문화에 가장 많이 젖어 있는 미국 부부 가운데 엄마들이 어머니날 가장 받고 싶어 하는 선물은 예외 없이 꼽는 게 있으니 가족이 함께 모여 식사하는 자리다.
미국도 맞벌이 등 두 직업을 갖고 뛰는 부부가 많고 아이들 역시 운동이다 음악학원이다 해서 한자리에 모이기 힘들어서다.
이런 미국 역시 지난해부터 불어 닥친 불경기 여파로 가정이 깨어지는 등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도 오히려 부부가 힘을 모을 가족 식사 자리가 늘어난다는 것.
미국의 주 정부들은 9월 넷째 월요일을 부부는 물론 가족들이 함께 모이는 ‘가족의 날’로 정하고 저녁을 함께할 것을 권하고 있다 한다.
한국은 지금 무척 어렵다.
나이 40이 되도록 돈 한 푼 벌어보지 못하는 백수 층이 늘어나고 경제위기설이 여전히 풀리지 않는다.
출범 2년을 넘겼지만 이명박 대통령체제는 아직도 새 정부가 출범 초기 형태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으니 사회 전반이 안정을 찾지 못하는 형국이 이어지고 있다.
북한조차 연일 으르렁대고 있으니 국민들의 마음은 영 편치 않다.
이러니 부부마음이 영 편치 않다. 요즘처럼 평지풍파가 많을 시기, 부부는 마음을 한층 다잡을 시기다. 밥상머리에 마주 앉아 긴 얘기를 나누면서 우울하고 극단적인 사나운 마음들은 털어버리고 이 고비를 넘겨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