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살 연상의 마누라 앞에서는 기 한번 못 펴는 한심한 남편이지만, 딸의 학교 일일교사 1순위로 꼽힐 정도로 마을에서는 나름 알아주는 형사다.
소싸움 대회를 준비하던 필성은 강력한 우승후보에 대한 정보를 입수하고, 훔쳐 나온 마누라의 쌈짓돈으로 결국 큰 돈을 따게 된다.
난생처음 마누라 앞에서 큰소리 칠 생각에 목이 메이는 조필성.
그러나 기쁨도 잠시! 갑자기 나타난 어린 놈에게 순식간에 돈을 빼앗기고 마는데, 그 놈은 바로 몇 년 전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가 행방이 묘연해진 탈주범 송기태.
희대의 탈주범을 눈 앞에서 놓친 필성은 모두에게 그 사실을 알리지만 이런 시골마을에 송기태가 나타났다는 그의 말을 아무도 믿지 않는다.
잃어버린 돈도 찾고, 딸 앞에서 영웅이 되고 싶은 마음에 직접 송기태의 은신처를 찾아 덮치지만 이번에는 송기태에게 새끼손가락까지 잘리는 수모를 당한다. 게다가 이 날의 사건이 언론에 공개되자, 예산서 형사들은 탈주범을 놓친 무능한 시골형사로 전락하고 필성은 형사직에서 물러나게 된다.
돈, 명예, 그리고 마지막 자존심까지 빼앗긴 필성. 그 놈을 반드시 자신의 손으로 잡아 형사로서, 그리고 한 남자로서의 명예회복을 위해 본격적으로 나서는데 만만하지가 않다.
영화 장르는 코미디와 드라마 가운데 놓여 있다. 무능한 아버지를 둘러싼 일화, 범인을 쫓는 바보의 집념이 드라마를 맡고 있다면 코미디는 촌의 정서에 바탕을 둔다.
촌티, 촌의 정서는 대략 이런 것이다. 향토예비군인지 로터리클럽 회원인지, 그냥 백수인지 알 수 없는 동네 중년들이 ‘청년’이라는 이름으로 배회한다.
그들은 흰색 트레이닝복을 즐겨 입고 타지 사람들이 오면 거들먹대면서 위세를 과시한다.
옆집의 강아지가 새끼를 낳은 것부터 누구네 집 마누라가 돈 떼먹히고 도망간 이야기까지 하루면 동네에 소문이 다 퍼진다.
증거물 수집을 통한 과학수사보다 이웃집 건너보는 눈썰미가 더 유익한 단서가 된다. ‘거북이 달린다’는 이런 촌의 정서를 활용해 웃음을 이끌어낸다.
영화를 차별성 있게 만드는 것은 끈질긴 추격전이라기보다는 어설픈 검거작전이라고 보는 편이 옳다.
시골 중년 백수들은 검거대를 자청해 얼토당토않은 작전을 수행한다.
재미있는 것은 오합지졸로 뭉친 백수 검거대가 서울에서 내려온 특수 검거대를 능가한다는 것이다.
영화 초반 늘 2등이라고 멸시받던 ‘곰이’가 유력 우승 후보인 ‘태풍’을 물리치고 우승 소가 되듯, 실패한 아버지 필성은 날고 기는 기태를 잡아 영웅이 된다.
소 싸움장에서 벌어지는 두 사람의 대결이 곰이와 태풍이 싸움과 오버랩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이연우 감독은 ‘소싸움’ 그리고 ‘충청도’라는 코드를 통해 끈질기게 오래, 천천히 해내는 근성을 그려내고자 한다.
속옷 바람으로 아내에게 쫓겨났던 필성이 제복을 차려입고 돌아오는 마지막 장면은 상징적이다.
딸들과 아내는 멋지게 사회적 제복을 입고 돌아온 가장을 환대한다. 아버지는 속옷이 아니라 사회적 계급이나 계층을 나타내는 ‘옷’을 입고 있을 때에야 아버지로서 합당한 대우를 받을 수 있다.
필성이 그토록 되찾고 싶어 하는 것이 ‘돈’이 아니었다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된다.
영화 ‘거북이 달린다’는 부모, 남편으로서 당당히 걷고 싶은 이 시대 아버지의 그림자를 담고 있다. 한 가지 더 덧붙인다면, 권선희 시인의 ‘툇마루’라는 시의 내용을 연상케하는 장면이 나온다는 것도 유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