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말기의 대표적인 성리학자로 흔히 정재 유치명과 화서 이항로, 노사 기정진, 한주 이진상, 간재 전우 등을 꼽는다.
이들은 각각의 학단이 형성되면서, 나라가 망해가는 위기의 상황을 두고 독자적인 대처방식을 고수하며 지성인으로서의 한 시대를 이끌었다.
외세의 침입이 가속화되는 상황에서 독자적인 성리설을 주장하며 주자학을 수정하는 쪽에 서 있었던 화서와 노사학파는 적극적으로 의병운동을 주도했고 한주학파는 산속으로 들어가 은둔하거나 일부는 개방적 사고를 보인다.
간재 학파는 서해의 외딴섬으로 들어가 유학의 전통을 지키고자 한다. 이들 가운데 한주(寒洲 ) 이진상(李震相)은 영남학파의 대표주자로 경상남북도를 아우르는 학단을 형성했다.
성주 이씨로 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 대산리 한개 마을에서 태어난 한주 이진상은 8세 때 아버지로부터 통감절요(通鑑節要)를 배웠으며, 13세 때 사서삼경을 읽고 경사(經史)·정무(政務)·문장·제도로부터 성력(星曆)·산수(算數)·의방(醫方)·복서(卜筮)에 이르기까지 다방면에 걸쳐 왕성한 지식욕을 보였다고 한다. 성년이 되어서는 성리학에 몰두하면서 안동에 와서 도산서원을 참배하고 퇴계학파의 정맥인 정재 유치명(柳致明)·서산 김흥락(金興洛) 등과 교류하며 성리설을 토론하고 가르침을 받기도 했다. 이처럼 한주는 퇴계의 학통에 깊이 연결되었으나, 퇴계 학맥과는 뚜렷한 구분을 짓는다.
원래 성리학의 기본은 ‘성즉리(性卽理)’라는 기본명제에서 출발한다.
그럼에도 한주는 성(性)이 아닌 심(心)이 곧 리(理)라는 당시의 정통 유학과는 전혀 다른 학설을 주장한다. 이 때문에 한주 사후에는 퇴계학문을 절대시 하던 영남 유림들이 분노해서 한주문집을 불태우는 등 이단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한주는 생전에 ‘주자나 퇴계의 본뜻도 나와 같았을 것’이라며 자기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본래 조선의 성리학은 퇴계의 ‘이기호발(理氣互發)’설과 율곡의 ‘기발이리승일도(氣發而理乘一途)’설이 큰 주류를 이루면서 발전해왔다.
이런 학문적 풍토에서 한주 이진상은 ‘이발일로(理發一路)’설을 주장하여, 퇴계의 ‘호발설’에도 동의하지 않고, 율곡의 ‘기발설’에도 동조하지 않았으니 사상계에 파란을 몰고 올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실천적 성리학자였던 이진상은 조선 말기의 외세 침입을 보며 조국의 안위를 잊은 적이 없었다. 이런 그의 정신은 아들과 제자들에게 전승되어 우국충정의 뛰어난 학자들이 배출될 수 있었다.
아들 이승희와 함께 한주 문하의 큰 학자인 회당(晦堂) 장석영(張錫英)은 스승의 사상을 계승해서 중국으로 망명해 독립운동에 투신하였다. 뒷날 장석영은 스승 한주의 묘지명(墓誌銘)을 지어 그의 높은 학문과 덕행을 유감없이 기술하여 업적을 높이 평가하가도 했다.
한주의 학문은 영남 일대에 널리 전파돼 후산(后山) 허유( 許愈), 면우 곽종석, 김진호 등 당대의 큰 학자들이 학단을 이루어 한주의 학문을 계승하고 전파하는 데 앞장섰다.
특히 ‘한주학단’의 학자들은 호남의 노사 기정진의 문하인 ‘노사학파’와 깊은 교류를 가지면서 노사학문과 한주학문이 결합하는 높은 수준의 성리학이 이루어지기도 했다(박석무). 특히 그의 아들 대계 이승희는 아버지에 버금가는 성리학자요, 뛰어난 독립운동가였다.
망국을 당하자 만주로 망명하여 공교회(孔敎會)를 설립, 유학사상을 통한 항일운동에 적극적인 활동을 폈으며 그 문하에서 독립운동가 심산 김창숙이 배출되기도 했다.
이처럼 면면히 이어져 오던 학맥이 일제 강점기 이후 끊어지면서, 일반인들에게 지금은 잊혀 가는 옛 이야기가 되고 있다.
그러나 학자들 사이에서는 그동안 상당한 연구 성과가 이루어져 오는 22일 안동에 있는 국학진흥원에서 조선말 성리학에 대한 학술 대회가 열린다. ‘19세기 한국 성리학의 지역적 전개양상과 특징’이라는 큰 주제로 열리는 이 학술대회에서는 ‘한주학파 성리학의 지역적 전개양상과 사상적 특성’ 그리고 정재와 화서, 간재학파 등 조선말의 우뚝했던 성리학파들을 아우르는 연구발표가 있을 예정이다.
조선사회의 통치이념으로 절대적인 권위와 영향력을 발휘해 오던 성리학이 서양이라는 새로운 도전이 시작되던 시기, 어떻게 작동되고 변모해 왔는지 되돌아보고 우리의 현재 위치를 남의 잣대가 아닌 우리의 잣대로 가늠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