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思慕-물의 안쪽...문태준

관리자 기자
등록일 2009-06-11 20:37 게재일 2009-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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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퀴가 굴러간다고 할 수밖에

어디로든 갈 것 같은 물렁물렁한 바퀴

무릎은 있으나 물의 몸에는 뼈가 없네 뼈가 없으니

물소리를 맛있게 먹을 때 이(齒)는 감추시게

물의 안쪽으로 걸어 들어가네

미끌미끌한 물의 속살 속으로

물을 열고 들어가 물을 닫고

하나의 돌같이 내 몸이 젖네

귀도 눈도 만지는 손도 혀도 사라지네

물속까지 들어오는 여린 볕처럼 살다 갔으면

물비늘처럼 그대 눈빛에 잠시 어리다 갔으면

내가 예전엔 한번도 만져보지 못했던

낮고 부드럽고 움직이는 고요

- 문태준 시집 ‘가재미’(문학과지성사·2006)


시의 제목이 사모(思慕)다. 사랑도 아니고 그리움도 아니고 사모라고 시인은 분명히 새겨놓고 있다. 사모(思慕)는 상대를 공손히 받들어 모시는 애틋하고 지극한 연모의 마음 아니겠는가. 그래서 ‘사랑’은 함께 하는 열락의 기쁨을 머금고 있어 아니 되는 것이고, ‘그리움’은 공손히 받들어 모시는 마음이 옅어서 안 된다는 것인가. ‘사모’라는 발음, ‘사’에서는 간절한 그리움의 목마름이 가득 쌓여 있고, 그것이 ‘모’로 건너오면 솜에 물이 스며들 듯 쑤욱 젖어드는 느낌이 그대로 일어난다. 문태준 시인은 이 절절한 사모(思慕)를 “물렁물렁한 바퀴”로 굴러가는 “물의 속살”로 그려내고 있다. 물의 안쪽과 속살의 형태를 갖는 ‘사모’는 “귀도 눈도 만지는 손도 혀도 사라지”는 그런 내밀한 곳일 테다. 그런 사모의 완전한 영토가 세상 어디에 있을까. 그래서 시인은 1연의 종결부를 “-갔으면”이라는 원망형으로 끝맺고 있음인가. 아니다. 그 영토로 기꺼이 가려는 간절한 마음이 바로 ‘사모(思慕)’일 것이다. 그것은 분명 “낮고 부드럽”지만 “움직이는 고요”임에 틀림없다.

해설<이종암·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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