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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과 시국선언

강희룡 기자
등록일 2009-06-11 20:00 게재일 2009-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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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룡 서예가

덩굴식물 중에서 칡은 물체를 감고 올라갈 때 왼쪽으로 감는다. 위에서 보면 감고 올라오는 방향이 시계바늘이 도는 방향과 반대로 감는다.

칡과 반대로 등나무는 오른쪽으로 감아 올라가는 식물이다. 위에서 보면 시계바늘이 도는 방향으로 감는다. 이 두 덩굴나무는 콩과의 낙엽식물로 서로 같은 족보의 사촌간이라 할 수 있다.

문제는 이 칡덩굴과 등나무가 만나는 일이다. 두 줄기가 만나면 서로가 감는 방향이 다르다 보니 둘 다 위태로워지는 상황을 만든다. 둘이 서로 감아 올라가려면 마침내 부딪쳐서 피할 수 없이 얽히게 되고 서로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밀고 당기고 꼬고 누르니 불화가 거기서 온다.

즉 서로가 반대로 가는 고통 속에 있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상황을 칡덩굴 갈(葛)과 등나무 등(藤)을 일컬어 갈등(葛藤)이라 부른다.

이 단어는 예전에도 나타난다. 조선시대 세종(1437·세종19) 때 펴낸 한자자전 운부군옥(韻府群玉)에 ‘말에 갈등이 있다.’(話葛藤)라 하여 ‘세상에서는 아주 크게 어긋나는 말을 이른다.’ 라고 하였다.

또한 조선후기 학자 조재삼의 송남잡지(松南雜識)에 ‘전설에서 백두산 위에 칡 한 뿌리가 자라는데 중국 쪽으로 퍼져나가는 것은 등나무가 되고 우리나라 쪽으로 뻗어오는 것은 칡이 되니 본래 같은 뿌리지만 각각 다른 식물이 된다.’라고 적고 있다.

이렇듯 갈등은 칡과 등나무처럼 서로의 목표나 이해관계가 다르기 때문에 적대시하거나 화합하지 못하는 것을 말한다.

소설이나 희곡에서는 등장인물 사이에서 일어나는 대립과 충돌 또는 환경 사이의 모순과 대립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하며, 심리학에서는 인간의 정서 생활을 혼란하게 하고 내적 조화를 파괴한다고 말한다.

또한 갈등상태는 두 개 이상의 상반되는 경향이 거의 동시에 존재하여 어떤 행동을 해야 할지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상황을 말한다. 즉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것이다. 이로 볼 때 갈등상황은 자칫 모두를 파멸시킬 수도 있다고 하겠다.

얼마 전 우리 국민들은 불행히도 부정부패 수사를 받던 중 스스로 목숨을 버린 전직 대통령의 서거로 큰 충격을 받았다. 이 돌발적인 상황을 계기로 하여 우리 사회는 지금까지 미완의 숙제로 남기고 있던 사회통합을 더욱 분열시켜 사회를 불안한 상황으로 만들어 가고 있다.

사회통합을 이루기 위한 처방으로 치유해야 할 중요한 환부가 바로 계층분열인데 사회 발전을 저해하는 이 계층 간 갈등과 분열이 더욱 심해진 것이다. 지난 10년간 전 정부의 정책노선을 지지하는 집단과 현 정부 정책을 지지하는 집단으로 양분되어 우리 사회는 지금까지 수구(守舊)와 진보(進步)라는 이분법 입장에서 충돌하여왔다.

이렇게 양분된 사회계층의 분열된 갈등 속에서 전 대통령 자살을 빌미로 지난 3일 서울대와 중앙대 일부교수들이 민주주의 후퇴를 우려하며 정부에 국정운영 전반적 전환 촉구를 시작으로 대학가의 교수와 학생들의 시국선언 발표가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으며 심지어 종교단체들까지 가세할 기미가 보인다.

부정부패 사건에 연루되어 검찰의 수사를 받던 전직 대통령의 자살이 그 본질이 바뀌어져 ‘정치적 타살’로 의미가 돌변하면서 분향소에 보내진 현 정부 인사들의 조화가 짓밟히고 전대협 출신의 야당 국회의원이 장례식장에서 헌화하는 대통령에게 심한 욕설을 쏟아내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인류사회는 항상 갈등을 해결하는 과정을 통해 발전해왔다. 갈등은 사회 발전의 원동력 중의 하나이기 때문에 피한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상대방의 입장을 좀 더 이해하고 나를 한 번 더 생각해보면서 대화를 한다면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

법치는 본래 권력의 자의성을 제어하고 인권을 보장하기 위한 평등개념이다. 또한 집단이기주의폐단으로 부터 국민 다수가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보호하고 모두에게 똑같이 적용돼야 한다는 의미도 강하다.

누구든 ‘민주, 개혁, 진보’라는 가면을 쓰고 개인이나 집단의 영욕을 위해 언행 불일치한 행동을 하면 안 된다. 그들이 우리 사회에서 ‘민주, 개혁, 진보’의 가치발전에 기여한 것이 과연 무엇이었는가.

칡과 등나무는 덩굴식물 중에서 가장 강한 줄기를 가지고 있다. 때문에 그 타고난 생태적 기질인 감기 방향을 제대로 알고 잘 엮는 지혜를 가진다면 세상에서 둘도 없는 튼튼한 동아줄을 우리는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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