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대통령은 자신의 가계를 이어온 가훈이 있다고 했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 절대 나서지 마라. 수풀처럼 바람 부는 대로 몸을 맡겨라”는 것이었다고 했다. 현실의 역사에 순응하고 불의를 타파하기 위해 한몸 희생하지 말라는 어르신들의 체념의 가치관에 한탄하면서도 그는 이같은 가훈이 지난시절 우리시대 대부분의 아버지 어머니들이 자식들에게 당부한 ‘침묵의 안위’가 아니었던가 회고했다.
하지만 그는, 그 가훈을 내던지고 역사의 소용돌이마다 저항과 변혁의 구덩이에 몸을 던졌다. 그래서 모난 돌 처럼 숱한 정을 맞았지만 모난 돌인들, 바람 부는대로 순응하는 숲인들 어울릴 수 없는 경계의 벽에서 소통의 역사를 일궈나갔다.
‘슬퍼하지 말고 미안해 하지 말고 원망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남기고 영면한 그의 죽음을 놓고 논란도 많았지만 대한민국은 지난 5월 끝자락 방방곡곡에서 목을 놓아 울었다.
삶과 죽음이 자연의 한 조각일 뿐이라던 그는 한줌 재가 돼 봉화산 정토원에서 6월을 맞고 있다.
지금 우리에게 6월은 무엇일까.
용서와 화합의 메시지 앞에서 통곡했던 5월을 떠나보내면서 맞은 6월은 하지만 혼탁일 뿐이다.
수처작주 입처개진 (隨處作主 立處皆眞)의 마음을 다잡아야 할 때지만 ‘∼다운’사람은 눈뜨고도 찾을 수가 없다.
‘가는 곳마다 주인이 되면 선 자리 그 곳이 바로 참다운 것’이라고 했지만 주인다운 사람이 없다.
가슴 한 곳이 뻥 뚫려 나간듯 통곡했던 국민들이야, 남편답게 아내답게 자식답게 다 주인으로 살아가기 위해 오늘도 무거운 짐을 버티고 있다.
하지만 정작 국민들을 통곡케하고 있는 국가와 정치는 왜 주인이 되지 못하고 제자리를 찾지못하고 있는가.
정파만 있고, 화해를 위장한 현재의 타협 저켠에는 또다른 음모가 도사리고 있는 참되지 못한 주인들만 곳곳에서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대한민국의 현실일 뿐이다.
초심은 없고 지리한 타성의 오만이 판을 치고 있는 것이 어디 정치뿐이겠는가.
그 틈바구니에서 우리는 슬픈 자화상을 6월에도 그리고 있을 뿐이다.
새벽 인력시장에서 일감을 찾지 못해 세상을 등지고 있는 우리의 아버지들, 실업급여를 타기 위해 늘어선 행렬들, 자갈논 판 돈으로 대학을 나와 백수가 직업이 돼 점심도 걸러가며 시험준비에 삶의 전부를 걸고 있는 청년실업자들, 유모차를 끌고 동네 구석구석을 꼬부라진 허리 한번 펴지못하고 폐지를 찾아다니는 우리의 할머니 할아버지들.
대한민국의 슬픈 그림은 아직도 종지부를 찍지 못하고 주인답지 못한 뭇 사람들에 의해 덧칠을 거듭하며 차라리 낙서가 돼 뒹굴고 있다.
모든 마음에서 진실이 없고 ‘다운’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진실되게 노력하고 정진하는 수처작주의 참마음이 없기 때문이다. 화와 복을 자신에서 직접 구하지 않고 타인에게서 구하고 있는 탓일까.
처신의 주체는 오로지 자기 자신이며 그 결과와 책임도 오직 자신의 몫임을 명심해야 할 때다.
이 6월, 참으로 부끄런 마음으로 자신을 다잡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