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의 어느 작은 마을. 형사들의 말을 빌리자면 몇 년 만에 살인사건이 벌어진다. 문아정이라는 여고생이 폐가의 지붕 옥상에 귀신 같은 형상의 시체로 널려 있다. 형사들은 둔기로 맞아 살해된 것 같다고 말한다.
용의자는 그날 밤 문아정의 뒤를 쫓아가며 술 한잔하자고 조르던 도준(원빈)이다. 도준은 그날 밤 친구 진태(진구)를 허름한 술집 맨하탄에서 기다렸지만 진태는 오지 않았고 술집 주인의 증언에 따르면 발정난 개처럼 헉헉거리다가 집으로 돌아갔다.
집에 가는 길에 그가 여고생 문아정을 쫓으며 술 한잔하자, 남자가 싫으냐며 농짓거리를 한다. 도준은 행동이 어리숙하고 판단이 명확하지 않고 미숙아 같다.
하지만 대체로 착하고 순박한 녀석이다. 선천적으로 좀 부족한 도준의 말을 여고생 문아정은 무시한다. 폐가의 어두운 샛길로 숨어버리더니 도준에게 위협적으로 커다란 돌을 던진다.
도준은 겁을 먹은 표정이다. 도준의 어머니(김혜자)도 여기까지 들어 아는 것 같다. 하지만 그녀는 그 다음을 믿을 수가 없다. 천금 같은 내 아들이 살인자라니. 경찰이 나 몰라라 하자 어머니는 스스로 탐정이 된다.
아들의 유일한 친구였던, 하지만 어딘가 음흉하고 폭력적으로 보이는 진태부터 의심한다.
하지만 진태가 범인일까. 이야기는 이 자리에서 한참을 더 나아간다. 하지만 같은 자리, 그날 밤의 그곳으로 다시 돌아오면서.
이 영화에서 오프닝 시퀀스는 ‘마더’를 보는 방법에 관한 영화적 머리말이며 제안으로 읽힌다. 이 여인은 무슨 이유로 지금 이곳에서 이러는가, 여기는 어디일까, 는 중요하지 않다. 그건 밝혀질 것이다. 그보다는 우리는 무엇을 보고 들을 것인가. 그런데 보고 들을 때 우리는 어떻게 믿을 것인가. ‘마더’에서는 그 질문이 더 중요하다.
영화를 관람한 사람이면 누구나 첫 장면을 이 영화의 명장면으로 꼽을 것이다. 펼쳐진 갈대밭. 아무렇게나 차려 입은 한 중년의 여인이 화면 안으로 걸어 들어온다.
화면의 중앙에 서자 천천히 몸을 움직인다. 처음에는 그냥 몸을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춤이고 춤이라고 생각하기에는 그냥 몸을 슬프고 우스꽝스럽게 놀리는 것 같다. 이 여인의 기이한 춤사위에 어울리는 음악이 흘러나온다.
혹은 그 음악 때문에 그 몸짓이 더 기이하다. 그런데 음악은 갈대밭에서 들리는 것이 아니고 스크린 바깥에서 들려오므로 이 여인은 음악을 듣지 못한다.
여인이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것처럼 보이지만 거기 음악은 없고 음악에 맞춰 춤을 춘다고 느끼는 것은 우리의 착각이다. 춤을 출 때의 김혜자의 얼굴은 마치 오래전에 보았던 게오르규의 ‘25시’에서의 마지막 장면- 안소니 퀸의 - 웃고는 있지만, 웃는 것 같기도 하고 우는 것 같기도 한 그 표정이 떠올랐다.
마지막 시퀀스에서 달리는 고속버스에서의 춤은 절망의 우물바닥을 들여다 본 자의 역설적 화해를 위한 몸짓이다.
해가 지면서 만들어내는 역광이 춤을 추는 사람들의 모습을 실루엣으로 그려낸다.
이 마지막 롱 테이크는 이 앞에서 전개되어 온 영화의 모든 요소를 한 데 모아 집약시킨 것 같은 매우 시적인 장면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