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禮書(예서)의 결정판 "常變通攷(상변통고)"

정태원 기자
등록일 2009-05-28 21:26 게재일 2009-05-28
스크랩버튼
정태원 북부취재본부장


안동지역 사람들이 흔히 쓰는 말로 “예(禮)를 모르거든 ‘무실’에 가서 물어 봐라.”라는 말이 있다. ‘무실’이란 안동시 임동면 수곡리로 전주 류씨 수곡파의 집성촌이다. 임하댐 건설로 지금은 대부분이 다른 지역으로 이주했으나 400여 년을 세거한 전주류씨들은 대과 급제자 만 10명을 배출하고 진사·생원이 33명, 문집을 남긴 분이 77명에 이르는 마을이다.


이 마을에서 1700년대를 살았던 동감 류장원(柳長源:1724∼96)은 상례(常禮)와 변례(變禮)에 관한 여러 학설을 모으고 자신의 학설을 붙인 예서 상변통고(常變通攷)를 남겼다.


이 책은 주자가례(朱子家禮)를 주로하고 그밖에 경사자집(經史子集)과 유서(類書)에서 주요 내용을 골라 덧붙였다.


각 조문마다 ‘주자가례’의 조문을 먼저 넣고 이 가운데 주자 만년의 학설과 다른 것은 ‘의례경전통해(儀禮經典通解)’ 등 여러 서적에서 유학자들의 일치된 학설을 택했고, 여러 사람의 학설이 다를 때는 모두 수록했다.


가례 가운데 고사와 난해한 곳은 따로 모아 해설하고 마지막으로 자신의 견해를 붙였다. 가례에서 언급하지 않은 향례·학교례·국휼(國恤) 등의 예도 모두 수록하여 해석해 놓았다.


참고한 서적은 한나라와 당나라의 고서 70여 종과 송대의 고서 60여 종 그리고 조선시대의 고서 50여 종으로 가히 예학을 집대성한 책이라 할만하다.


동암의 예학은 퇴계학의 적전인 대산 이상정선생에게서 배웠을 을뿐만 아니라 가학으로 면면히 이어져 온 것이었다.


방선조인 괴애(乖涯) 류지는 ‘방례변증(邦禮辨證)’을 저술했고, 몽천 경휘(慶輝)는 ‘가례집설’ 6권을 지었으며 삼종형 삼산과 중형 노애도 예서를 남겼다.


이 같은 학풍은 동암으로 이어졌고 그의 훈도를 받은 가문내의 문도들에게 전해져 호고와(好古窩) 휘문(徽文)은 ‘관복고증’ 등의 예서를 썼고 족 증손 정재 치명과 금암 치덕 등도 많은 예서를 남겼으며 특히 류장원의 아들 희수는 ‘상변찬요’를 남기는 등 예학은 무실 류씨의 가학으로 이어져 온 것이다.


동암의 저술 ‘상변통고’는 30권 16책의 방대한 분량이다. 이 책을 부산에 있는 경성대학교 교수들을 주축으로 한 ‘한국고전의례연구회’가 16명의 학자를 동원해 5년 만에 국역을 끝내고 지난 23일 국학진흥원에서 출판기념회를 가졌다.


출판기념회로는 보기 드물게 주최 측이 예상했던 인원을 훨씬 넘는, 6백여 명의 인사들이 참석해 무너져 가는 예의 복원을 기대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21세기, 이 시대에 왜 다시 거추장스럽기만 한 ‘예’를 들먹이느냐고 할는지 모른다.


그러나 동암은 이 책의 총론에서 이천과 주자 등의 말을 인용해 ‘예는 성품을 유지하는 것이다. 대개 성품에서 나오지만, 성품을 유지하여 근본을 되돌리는 것이다. 무릇 아직 성품을 이루지 않았을 때 모름지기 예로써 유지하여 능히 예를 지키면 이미 도에 배반되지 않는다.’고 했다. 또 ‘예는 바로 천지자연의 이치이니, 번거로운 조문과 자질구레한 절차가 모두 그 가운데 있다.


예의(禮儀) 삼백 가지와 위의(威儀) 삼천 가지는 곧 하나의 도리이다. 공자가 “나의 도는 하나로 꿰었다.”라고 한 것이 이것이다.


대개 도리는 하나의 근원이니, 사물에 흩어져 보이는 것이 모두 하나의 사물에서 나온 것이다.’라고도 했다. 그러나 그는 ‘예는 단순하게 풍속을 놀라게 해서는 안 된다. 모르는 자들이 괴이하다고 여긴다.’ 며 ‘인정이 편안하게 여기는 것이 곧 예이다.(人情小安 則禮也 故 禮 所以 由義起)’ 라고도 했다. 또 증자의 말을 인용해 “행동하는 용모에는 사납고 거만함을 멀리하며, 안색을 바로잡음에는 미더움에 가깝게 하며, 말을 할 때는 비루하고 패악함을 멀리하는 것이 대원과 대본이다”라고 강조한다.


이제 예학의 백과사전격인 ‘상변통고’가 국역 된 만큼 누구나 관심만 있으면 쉽게 전통예학에 접근 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지나치게 관념적이고 까다로운 형식논리가 지배하는 ‘예’가 아니라 인간의 기본을 찾아가는 ‘예’를 제대로 알아볼 수 있는 기회이다.

종합 기사리스트

더보기
스크랩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