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만수 <경기대정치전문대학원 경북분원 주임교수>
“제가 생각해도 옳고 좋은 것 같은데, 위에서 시키니까 어쩔 수 없이……”
진짜로 내 편인지, 아니면 자기의 편에 서서 이해를 해 달라는 말인지, 그것도 아니면 적당히 책임을 윗사람에게 전가함으로써 자신이 행한 이른바 비민주적, 부도덕적, 반위민적 행위를 합리화하고 자신을 보신하기 위한 술수인지, 좌우지간 민(民)이 관(官)을 상대하거나, 약자가 강자를 상대하다 보면 심심찮게 듣는 말이다.
도대체 위가 어딘지, 또한 위에서 그러한 일들을 정말로 일일이 시키는지 알 수 없으나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이러한 말들을 잘 새겨 보면, 첫째는 위를 팔아야 일이 잘 진행된다는 논리와 둘째는 책임을 위로 전가시켜야 자신은 욕을 먹지 않는다는 사고가 다분히 숨어있는 것을 엿볼 수 있는데 이러한 무책임과 책임의식 부재의 현상을 분석해 보면 다음의 몇 가지 유형으로 구분할 수 있을 것 같다.
첫째는 ‘눈치형’이다. 이러한 형은 소신을 가지고 창의성을 발휘하여 효율성 있고 생산성 있게 직책을 수행하여 기관과 조직, 사회 발전에 기여하려는 노력보다 책임 회피를 위해서 저 위(?)에다가 물어보지 않고 당연히 독자적 자율적으로 해야 될 일들까지도 반드시 상급자나 상급기관에다가 한번 씩 물어보는 경우가 적지 않다.
물론 사전 협의가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래야만 탈이 났을 경우 “그때 이야기 하지 않았습니까?”라는 식으로 책임 전가를 할 수도 있고, 또한 자기가 하는 일도 마치 저 위에서 시켜서 하는 양 꾸밈으로써 상사나 상급기관으로부터 미움 받지 않고, 욕을 얻어먹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기 때문에, 이러한 눈치형은 지극히 비생산적이고 소신대로 행동하지 못하기 때문에 자신의 보신에는 이로울지 모르나, 봉직하는 기관과 사회의 발전을 저해하는 나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둘째는 ‘맹종·아부형’이다. 이러한 형은 상사에게는 맹종과 아부를 일삼고 부하에게는 복종을 강요하며, 위선적인 아첨을 하게 만든다. 흔히 이런 형의 사람을 ‘Yes Man’으로 표현하는데, 이들의 특성은 자기보다 신분과 지위가 높은 사람에게 이의 제기를 하지 못함은 물론이요, 상사의 생각이 합리적이 아니고 옳지 못함을 뻔히 알면서도 아부하기 위하여 거의 동의 한다.
그리고 부하나 주위 사람들의 정당한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고, 지극히 비상식적이고, 불합리한 일까지도 “좋은 게 좋은 것 아니냐?”는 이상야릇한 표현으로 묵살해 버리기 때문에 행정이 불합리하고 비효율적이 되며, 한편으로는 각종 사회악을 정당화시키는 행위로 작용된다.
셋째는 ‘책임전가, 미꾸라지형’을 들 수 있다. 이러한 형은 자신의 직책을 책임으로 생각하지 않고 명예로 알고, 사람들이 자기를 존경해 주기를 바라기 때문에 이런 유형의 사람들에게 직언이나 정당한 요구, 또는 이의를 제기하면 몹시 기분이 나빠하거나 ‘예의도 버릇도 없는 부도덕 한 사람’으로 매도된다.
또한 이들은 소신을 가지고 조직의 발전을 위해서 선두에 서서 책임을 지고 일하려 하지 않고, 책임을 위 아래로 전가 하는데 능하다. 아울러 이권이 있으면 탐욕스럽게 독점하고, 사고가 나면 그 책임을 상사나 동료, 또는 부하에게 전가해 버리는 비열한 인간형이다.
어쨌든 책임을 서로가 지지 않겠다는 풍조가 공직사회는 물론 사회 지도층에 만연해 있음은 부인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이러한 책임회피가 일시적으로는 자신의 보신에 도움이 될 런지 몰라도 사회라는 울타리에서 보면 일련의 그러한 언행들이 지역사회와 국가발전을 저해하는 가장 큰 요인으로 작용되어 왔을 뿐 아니라, 불신조장의 원인으로 작용 해 왔다.
‘저 위’라는 미명하에 말단은 직속상관에게, 그 직속상관은 또 그 위 단위의 기관이나 상관에게, 그리고 급기야는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에게 떠넘기고, 대통령은 또 하기 좋은 말로 “국민이 원해서”라는 논리로 그동안 국민은 얼마나 많은 희생을 강요당해 왔던가 말이다.
위를 팔아 책임을 회피하려는 사람보다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자기는 결백했음에도 불구하고 부하를 보호하기 위해 전적인 책임을 스스로가 지는 상사가 많은 사회, 위에서 시켜서 어쩔 수 없이 하는 것이 아닌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이 옳은 일이면 다소 불이익이 뒤따르더라도 책임감과 사명감을 가지고 공직을 수행하고 조직에 참여하는 사람이 많은 사회는 그 사회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을 리 없고, 발전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위에서 시키니까∼’가 아니라 소신대로 행동하고 정도를 믿으며 책임질 줄 아는 사회의 실현이야 말로 우리 모두가 합심하여 총력을 경주해야 할 중요한 과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