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9일 우리 반은 첫째 주 토요일을 맞아 포항시 용흥동에 위치하고 있는 학도의용군 전승기념관을 찾았다.
가기 전, 쉬운 편에 속하는 봉사활동이라는 말을 들었기 때문인지 지난번에 갔었던 ‘예티쉼터’와는 또 다른 경험이 될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는지 발걸음은 가볍기만 했다.
도착하자마자 기념관의 선생님들께 인사를 하고, 시청각실에서 영상물을 보고 선생님의 말씀을 들었다. 그 덕에 여태까지 잘 몰랐던 학도의용군에 대해 잘 알 수 있었다.
특히, 포항에서도 그러한 학도의용군의 활동이 매우 활발했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조금 놀랐다.
무엇보다도 놀랐던 것은 우리에게 그런 이야기들을 해준 선생님께서 6·25 당시 학도의용군으로 전쟁에 참여하신 분이었다는 것이다. 나는 주위에서 전쟁에 참여한 분들이 없기 때문인지 새삼스레 신기한 생각이 들었다. 그 후 우리는 전시실로 향했다.
전시실에는 총도 많았고, 의용군들이 당시 사용했던 물건들도 많았지만 그 중에서도 내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한 장의 편지였다. 그렇게 길지도 않은, 어찌 보면 사소하다고도 할 수 있는 그 편지가 왜 그렇게 눈물이 나도록 인상 깊었을까. 전쟁에 참가한 학도의용군이 어머니께 보내는 그 편지는 자신이 사람을 죽였다는 말을 어머니께 올리며 시작된다.
“사람을 몇이나 죽였는지 모르겠습니다, 자신이 죽는 것은 두렵지 않으나 사랑하는 사람들을 못 보는 것이 두렵습니다.” “내복을 빨았는데 그 내복이 마치 하얀 수의 같이 느껴집니다.” “꼭 무사히 돌아가겠습니다”는 내용으로 서술된 그 편지는 다음에 다시 편지하겠다는 인사를 마지막으로 끝을 맺는다. 하지만 나와 나이가 비슷했을 그 의용군의 편지는 어머니께 전달되지 못한다. 장렬한 전투로 전사했기 때문이다.
눈물이 났다. 나라면 과연 그런 상황에서 그렇게 큰 용기를 낼 수 있었을까. 펜을 놓고 총을 잡아야만 했던 학생들, 사랑하는 사람들과 헤어져 간절한 상황에서 편지 한 통 전달하는 것이 소원이었을 그 학생들을 위해 다시 한 번 묵념해 본다.
그 뒤, 조금 높다 싶은 계단을 올라가면 있던 기념비에 돌아가신 학도의용군 분들을 추모하는 시간을 가졌다. 잠깐이었지만 엄숙한 분위기였다. 나 또한 마음속으로 깊이 감사드렸다. 그분들이 있었기에, 목숨을 다 바쳐가며 나라를 지키려했던 그 분들이 있었기에 지금 우리가 여기 이렇게 존재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그 후 마지막으로 행해진 봉사활동은 의외로 너무 쉽고 간단했다. 주변의 쓰레기를 줍고, 빗자루로 낙엽을 쓰는 별 것 아닌 일이어서 도리어 너무 죄송했다. 그리고 교생선생님이 사주신 음료수를 마시고, 친구들과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 등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물론 음료수 캔 등의 우리가 남긴 흔적을 깨끗이 지우는 일도 잊지 않았다.
이번 봉사활동은 아주 유익한 시간이 되었다. 나라와 사랑하는 가족들을 지키기 위해 펜 대신 총을 들어야만 했던 학도의용군 분들의 숭고한 정신도 깊이 배울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다.
나라면 과연 그런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쉽게 전쟁터로 나가지는 못하리라. 나 아닌 누구라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럴 것이다. 그래서 더더욱 전쟁에 조국을 지키기 위해 기꺼이 참여하신 모든 분들께 큰 박수를 보내드리고 싶다.
또한 전장의 폐해에 관해서도 많은 것을 느끼게 되었다. 전쟁은 어떤 이유로든 나쁜 것이다. 어떠한 전 세계, 모든 인류의 문제가 되는 것이라도 그 해결 방안이 전쟁뿐이라면 전쟁을 행하는 것은 결코 옳지 못하다. 우리는 나 자신과 내 가족, 나아가 내 나라가 소중한 것처럼 남도 그렇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자칫 무의미하게 보내버릴 수 있었던 토요일 낮 시간을 이렇게 보람차게 보내 뿌듯했다. 다음번에 가는 봉사활동도 이번처럼 유익한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