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종 시인·前 문경중 교장
유사 이래 문학의 안방을 지켜오던 시가 19세기부터 소설에게 밀려 안방에서 쫓겨나고 곁방살이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렇긴 하지만, 21세기에도 문학의 주류는 소설과 시가 빵실한 주인공임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지난 3월말경 문경새재 조선시대 주막에서 소설가 김주영의 문학기행이 있었다. 김주영 작가는 소설 ‘객주(客主)’로 소설 문단의 터줏대감이 된 문단의 실력자다.
나도 아홉권이나 되는 김 작가의 ‘객주’를 독파한 탄탄한 김 작가의 애독자다. 지역문화원이 동참하고 민선시장까지 자진참여하는 등 성황을 이루었다.
조선일보 문화부 차장, KBS PD까지 수행(?)하고 일반독자가 이삼백은 좋이 돼 보이는 외적으로 보기에는 손색이 없다.
주인공 김주영 작가는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그날의 당당한 주인공이다. 1971년 월간문학에 ‘휴면기’가 가작 입선하여, 소설가로 등장했다. 70년대 초는 문단등단이 하늘의 별따기 였던 만큼 입선 당선을 따질 것 없이 쾌거임이 분명하다.
필자의 경우는 만 25세 생일날인 1967년 1월14일에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상장을 받고, 상금도 당시 초등학교 초임교사 봉급 3개월 반에 해당하는 2만원을 받았다.
잊지 못할 감격은 서울대 출신의 재원 김정강 기자가 가슴에 하얀 국화를 달아주었다. 정치가가 대통령 당선된 기쁨이나, 문학도가 유수한 중앙일간신문의 신춘문예당선이나 큰 차이가 없다고 착각(?)을 해본다.
나보다 4년을 늦게 출발한 김주영은 소설가로서 스타가 벌써 되었지만 시인 김시종의 주가는 스타가 되었다기에는, 나 자신부터 자신이 결여되어 있다.
문제작과 쾌작을 연속발표해도 시인은 소설가만큼 뜰 수가 없다. 저속한 비유 같지만, 소설가를 가수라면, 시인은 코미디언이다.
가수는 데뷔한 지 얼마 안되어도 스타가 될 수 있지만, 코미디언은 20년 이상 굴러먹어도 수면위에 뜰까 말까다. 시인이 천대받는 것도 어쩌면 자업자득이다.
유명 무명 가릴 것 없이 시인 수가 1만명을 넘는 사단병력이니, 약에 쓸려고 해도 희소가치는 없다.
“정년 퇴임하시고, 어디에 다니느냐”고 묻는 제자들이니 지인들이 있다.
그때마다 어디에 다니는 데는 없고 할 일 없이 걸어다닌다고 했더니, 나의 재치(?)있는 답변을 듣고 가가대소를 한다.
늘 걸어다니는 내가 거의 하루 한번 점촌역 대합실에 들린다. 대합실의 도서함에서 한국 명작소설을 가끔 한 편씩 읽어 내 문학역량을 충전하곤 한다.
오늘은 스승의 날, 지난날 교육대학재학시절에 읽은 적이 있는 이병주의 중편소설 ‘알렉산드리아’를 다시 읽기로 한다.
43년 전에 읽어서 오래되어 다시 읽기로 했는데, 3쪽을 읽고 나니 더 이상 읽을 수가 없어, 소설책을 접고 말았다.
나의 참을성이 이것밖에 안된다니, 좀 생각해 볼 문제다.
소설책을 도서함 제자리에 정좌시키고 벽을 보니, 벽에 걸린 시화 ‘삶의 의미’가 눈에 들어온다.
‘삶의 의미’ 김영강
만원버스에 한 사람이 타고 내려도,
아무 표도 안 나듯이,
오늘 요단강을 건너는 사람이 있어도,
지구의 하중엔 하등 변함이 없다.
너의 눈에서 눈물의 폭포가 쏟아져도
강물은 조금도 불어나지 않는다.
너의 웃음이 호들갑스러워도
가지를 스치는 바람만큼도
나뭇잎을 흔들리게 할 수 없다.
그러나,
너의 조그만 힘이,
너의 조그만 눈물이,
너의 조그만 웃음이,
지구를 움직이는 원동력임을
한시라도 잊어선 안된다.
‘삶의 의미’는 5연15행의 시지만, 밤 10시 막차에 내린 승객들이 벽에 걸린 ‘삶의 의미’를 읽고 많은 깨달음을 얻는단다.
살아가기 바쁜 세상에 ‘대하소설’을 읽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시 전편을 다 읽어도 5분도 안 걸리지만, 삶의 참뜻을 일깨워주는 시 앞에서 경건함을 느낄 수 밖에 없다.
시를 짓는 사람, 시를 읽는 사람, 시를 아끼는 모든 이들께, 신의 축복이 있을진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