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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송찬호

관리자 기자
등록일 2009-05-25 19:04 게재일 2009-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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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는 순식간에


째크 나이프처럼


날개를 접었다 펼쳤다



도대체 그에게는 삶에서의 도망이란 없다


다만 꽃에서 꽃으로


유유히 흘러 다닐 뿐인데,



수많은 눈이 지켜보는


환한 대낮에


나비는 꽃에서 지갑을 훔쳐내었다



- 송찬호 시집 ‘고양이가 돌아오는 저녁’(문학과지성사·2009)




봄이 깊어간다. 산과 들에 봄꽃이 만발하다. 꽃이 피니 겨우내 보이지 않던 벌과 나비가 와글와글하다. 꽃나무 사이로 날아다니는 저 벌과 나비를 ‘공중에 피는 꽃’이라 부르면 어떨까. 충북 보은에 사는 송찬호 시인은 나비를 두고 째크 나이프라고 비유한다. 째크 나이프, 40∼50대 장년들에게는 아련한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도구다. 동네에 한두 대밖에 없는 흑백텔레비전으로 보던 최불암의 ‘수사반장’이나 전운의 ‘113수사본부’에서나 볼 수 있던 날카롭고 번쩍번쩍하는 그 물건, 다들 얼마나 갖고 싶어 했던가. 째크 나이프 같은 날개를 가져서 그러한가, 시인은 나비의 삶을 도대체 도망이란 없는 삶이라 한다. “다만 꽃에서 꽃으로/유유히 흘러 다닐 뿐”. 이 얼마나 멋진 삶인가. 노래 부르는 것을 직업으로 삼고 있는 시인이 또한 저 나비의 삶과 같지 않을까. 그리고 3연에서 나비가 꽃에서 꿀을 따는 것을 “지갑을 훔쳐내었다”고 한다. 그것도 “수많은 눈이 지켜보는/환한 대낮에”. 1연에서 명명한 째크 나이프라는 시어에 딱 걸맞는 비유다. 송찬호 시인을 비롯한 수많은 시인들이 이 세상의 지갑을 훔치려 끝없이 노래를 부르고 있다.


해설<이종암·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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