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룡 서예가
눈물은 육상에 사는 척추동물의 눈알 바깥 면의 위에 있는 눈물샘에서 나는 분비액이다.
사람의 경우에는 눈 꼬리에 가까운 위 눈꺼풀 뒤에 있는 눈물샘 및 그 부근에 산재하는 부누선(副淚腺)에서 결막낭 안으로 분비되는 투명한 액체를 말한다. 눈물은 각막과 결막을 항상 적셔서 이물(異物)을 씻어냄과 동시에 각막 상피에 포도당과 산소를 공급한다. 또, 이산화탄소 등 그 밖의 노폐물을 받아내고, 용균성(溶菌性) 효소인 리소좀이 포함되어 있어 감염방지작용을 한다.
오늘날에는 이러한 눈물을 통해 질환의 진행에 대한 경미한 변화 혹은 당뇨 합병증의 발생 여부를 쉽게 확인할 수 있는 의료수준의 길이 열릴 전망이다.
눈물을 흘리는 경우는 크게 세 가지 형태로 구분 할 수 있다. 첫째는 기본적 눈물로 안구표면의 눈물 층을 따라 쉴 새 없이 흘러내리면서 코의 비루관(鼻淚管)을 통해 빠져나간다. 다음으로는 반사적 눈물로 어떤 자극을 받았을 때 즉시 반응하는 눈물이다. 예를 들면, 티끌이나 먼지가 눈에 들어갔을 때나 양파를 깔 때, 최루탄 등 자극성 물질이 눈에 들어갔을 때 흘리는 경우로 언제 겪게 될지 모르는 외부의 자극에 대해 눈물이라는 매개체가 항균 작용을 강화하는 즉각적인 방어체계를 구축함으로써 눈을 보호한다.
마지막으로 사람에게만 있는 희로애락 등 감정의 상태에 따라 흘러나오는 정서적 눈물이다. 이 눈물은 동물에게서 찾아볼 수 없는 것으로 인간만의 특권으로 감정에 의해 흘리는 수준 높은 인간의 뇌 활동을 의미하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사람의 웃음은 단순히 기쁠 때를 대변하지만, 눈물은 그렇지 않다. 감정에 의해 흘리는 정서적 눈물은 기쁠 때도 흘리는 경우가 있으며 슬플 때나 화가 났을 때도 눈물을 흘린다. 어찌 보면 눈물 만큼 정직한 것도 없으며 눈물 만큼 다양한 의미를 지닌 것도 없다.
이러한 눈물에게 부여된 가치는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다르다고 볼 수 있다. 대체로 천륜(天倫)으로 맺어진 부모 자식 간의 이별에 의해 슬프고 절망적인 상황에서 흘리는 단장(斷腸)의 눈물로 부터 전쟁터에서 상사나 부하를 잃고 흘리는 고귀한 전우애의 눈물, 연인과 이별을 하면서 흘리는 눈물로 고려시대 이인로의 파한집(破閑集)에 기록된 정지상의 임을 보내는 별리(別離)를 주제로 한 시에서 ‘그대를 남포에서 보내며 슬픈 노래 부르네(送君南浦動悲歌)/이별의 눈물 해마다 푸른 물결에 더하는 것을(別淚年年添綠波)’ 이란 구절을 보면 예전의 서정적인 이별의 눈물임을 알 수 있다. 지난 세월을 생각하며 흘리는 회한의 눈물, 이 외에도 슬픈 내용물이나 상황들을 접하거나 서러운 감정이 충만해서 나오는 눈물 등이 있다.
희대의 문호 셰익스피어는 낭만 희극을 쓰던 시기를 지나 그의 대표작들이 발표된 비극의 시기에서 가장 먼저 쓴 햄릿(Hamlet)을 비롯한 대표적인 4대 비극을 발표함으로써 사람의 철학은 즐거움과 웃음이 아니라 슬픔과 눈물 속에서 만들어진다고 했다.
반면 가치를 부여할 수 없는 눈물도 있다. 마음에도 없이 흘리는 거짓 눈물로 ‘악어의 눈물’이라고도 한다. 악어는 먹이를 잡아먹을 때 눈물을 흘린다. 눈물이 입안에 수분을 보충하여 먹이를 삼키기 좋게 해주기 때문이다. 언뜻 보면 잡아먹히는 동물이 불쌍해 눈물을 흘리는 것처럼 보여 진다. 때문에 악어의 눈물이 ‘거짓눈물’을 의미하게 됐다.
오늘날 우리가 영화나 TV드라마 속에서 배우들이 흘리는 눈물이다. 요즘 배우들은 허구의 드라마 속에서 눈물연기를 잘 해야 시청자들을 감동시키고 인기를 얻을 수 있다.
또 하나는 언론매체의 사진에 공개되는 정치인의 눈물이나 살인을 저질은 범죄자가 흘리는 눈물은 심리학적으로 대개 위선적인 눈물이라 한다.
동정심을 유발하기 위하여 흘리는 단순한 반사작용에 지나지 않다. 요즘 우리 사회는 떠들썩하게 하는 한 재벌 총수의 게이트가 연일 최대 뉴스로 화제이다.
검찰에서는 이 게이트에 연루된 전직 대통령일가를 비롯해 정관계(政官)계 인사들의 로비 의혹을 수사하고 있다.
얼마 전 전직 대통령이 조사받기 위해 고향에서 서울로 떠나 검찰로 향할 때. 그의 영부인께서는 밤새도록 크게 울었다 한다.
하지만 그 눈물의 의미는 우리는 아무도 모른다. 각자가 유추할 뿐이다. 눈물은 인간 내면의 선과 악을 모두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단지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목 놓아 울 수 있다는 것은 우리가 사이보그가 아닌 사람이라는 존재의 증명이며 나름대로 살고 있다는 징표이기도 한 것은 사실이다.
60년대 1인당 국민소득이 채 100달러도 되지 않았던 시대의 어둡고 가난한 나라의 대통령부부가 1964년 12월 10일 달러를 벌어들이기 위해 일자리를 찾아 이역만리에 파견되어 ‘한강의 기적’을 이루는데 기여한 루르탄광지대의 함보른 시골광산의 지하 막장에서 노동하던 우리 광부들과 주로 알코올 묻힌 거즈로 사망한 사람의 몸을 닦던 간호사들을 찾아 함께 목메어 차마 애국가를 다 부르지도 못하며 흘린 참된 눈물의 의미를 이 시점에서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