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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 표류기"

관리자 기자
등록일 2009-05-22 21:27 게재일 2009-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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쏟아지는 빚 독촉에 남자(정재영 분)는 자살을 결심한다. 한강에 뛰어들지만 뜻을 이루지 못하고, 남자는 졸지에 밤섬에 표류한다. 여기저기 구조 요청을 보내는 그를, 세상은 싱거운 놈 아니면 미친놈 취급한다. 남자의 긴급구조 요청을 알아차린 이는 오직 한 사람. 심한 대인기피로 ‘방콕’하며 종일 ‘싸이질’ 하는 여자(정려원 분)다.


여자는 망원렌즈로 세상을 훔쳐보다 밤섬에서 홀로 기거하는 ‘변태’ 남자를 발견한다.


남자의 ‘HELP’를 지구에 불시착한 외계 생명체의 호소라고 여긴 여자는 큰 맘 먹고 외출을 감행하고, ‘HELLO’라는 메시지를 밤섬에 송신하는 데 성공한다.


남자는 죽어야, 산다. 사채 빚을 감당하지 못한 남자의 마지막 선택은 유일한 재산인 목숨을 내놓는 것이다. 여자 또한 죽어야 산다.


따돌림 당했던 과거의 기억을 잊기 위해 여자는 자신의 이름을 지우고 인터넷에서 ‘신상녀’ 행세를 한다.


남자는 죽음으로 떨어지고, 여자는 공상에 매달린다. 현실의 중력을 이기지 못한 남녀는 생존가능성 제로인 지구라는 감옥에서 한시라도 빨리 탈출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언제나 그랬듯이, 삶은 죽어야 사는 남녀를, 가만두지 않는다.


밤섬에서 자살시도를 행하지만 남자는 그때마다 ‘쪽팔리는’ 이유로 뜻을 이루지 못한다. 대신 “희망을 품지 않으니 마음이 편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남자는 오리배에 몸을 맡기고 못 말리는 단백질 보급투쟁에 나선다.


죽지 못한 남자의 삶은 곧바로 세상과 담쌓고 살던 여자에게 전염된다. “아무도 없으니 외롭지 않을” 달 사진 찍기가 취미인 여자는 목을 매려던 남자가 이튿날 모닥불을 피우고 있음에 환호하고 그를 지켜보게 된다.


이해준 감독 스스로 ‘공간에 대한 콤플렉스에서 출발한 영화’ 라고 말할 만큼 언뜻 보기에 ‘김씨표류기’는 인물과 공간의 변화와 상호작용이라는 오락영화의 가장 큰 요소가 배제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밤섬으로 상징되는 남자 김씨의 열린 공간과 좁은 방으로 상징되는 여자 김씨의 닫힌 공간은 그 개성과 특징이 캐릭터와 높은 싱크로율을 보이며 그 대비를 시각적으로 극대화하는 것에서 영화적 재미를 추구한다.


남자 김씨의 공간에서 스테디캠은 모든 것이 제한된 상황에서 인물의 복잡한 심리를 보여주는데 최적의 카메라워크을 선사하며 역동적 재미를 만들어내고, 남자 김씨를 만나고 창문이 조금씩 열리면서 밝아지기 시작하는 여자 김씨의 공간은 방안 쓰레기의 질감과 무게감까지 살려내려는 세심한 조명으로 감정의 변화에 따라 새로움을 선사하는 미학의 세계를 보여준다.


제한적 공간과 인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던져지는 상황 속에서 맛깔스러운 리듬감을 만들어내는 이해준 감독의 연출은 모든 게 넘쳐나는 세상, 부족한 것 많은 남녀의 희망대발견이라는 끝을 향해 힘차게 달려간다.


‘김씨표류기’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아이러니한 삶 한가운데 불량 남녀를 던져둔 뒤 기적 같은 도킹이 가능한지를 실험하는 영화다.


미운 오리새끼들의 뒤뚱거림에 맘놓고 웃을 수 있는 건 이해준 감독의 애정어린 시선 덕분이다. ‘마돈나’가 되기 위해 ‘천하장사’가 되어야 했던 소년(‘천하장사 마돈나’)에게 보냈던 응원과 다르지 않다. ‘김씨표류기’는 불량 판정을 받은 이들에게 조금만 더 용기를 내보라고 다독이는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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