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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얼굴

최재영 기자
등록일 2009-05-21 19:37 게재일 2009-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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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영 서양화가


인격을 알려면 그 사람의 얼굴을 보라고 했다. 살아온 인생이 얼굴에 그려지기 때문이다. 한 도시의 품격을 알려면, 얼굴이랄 수 있는 조형물을 주목해 보라는 이치와 같다.


오래전에 포항에 와봤던 사람이라면 송도해수욕장 입구에 팔을 높이 쳐들고 서있던 여신상을 기억할 것이다. 언제 철거되었는지는 모르지만, 그것이 내겐 가장 인상에 남는 포항의 이미지였다.


작은 조형물 하나가 어느 지역을 각인시키는 매개체가 되는 경우는 허다하다. 그런데 최근 포항시에서 추진된 조형물을 보노라면 선진문화도시의 위상을 만들어가야 한다는 취지와는 자꾸 멀어지고 있는 모습이어서 안타깝다.


1999년 호미 곶에 세워진 ‘상생의 손’은 당시 작가의 선정에서부터 작품수준과 공감대에 문제가 있다며 여론의 도마에 올랐고, 철거논란도 제기됐었다. 수면에 솟아있는 손이 상생이란 느낌보다 물에 빠져 허우적대는 마지막 단말마로 보인다는 지적도 많았다.


그리고 몇 해 전에 시 경계 조형물로 세워진 유강의 대형 간판도 사전조율 없이 설치되다 보니 경주시와 마찰을 일으켜 결국 포항시의 예산으로 세워진 간판에 한쪽 면을 경주에 할애함으로써 겨우 타협을 보았지만 관문을 상징하는 조형물치고는 너무도 치졸하여 도리어 포항의 이미지에 역효과를 주고 있다는 뜻있는 시민들의 지적이다.


2007년에 시작된 도시공원화사업인 테라노바프로젝트의 일환으로 항구동에 세워진 ‘일출’이란 조형물은 더욱 가관이다.


주제표현부터가 초등학생수준보다 떨어지는 발상이라며 일부 시민들의 분노까지 자아낸 것으로 해를 상징하는 스텐리스 강판원형에 같은 재질의 꽁치 두 마리가 붙어있고, 돌로 된 기단에 말라빠진 게와 오징어를 배치시켜, 전체적인 조형성도 유치한데다, 실물을 한 번도 본적이 없는 사람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 같다.


또 지난달 동해면 입구에 세워진 ‘은빛풍어’란 조형물 또한 웃기는 일이다. 주제와는 맞지 않는 형상과 주민정서는 전혀 고려치 않아 철거를 요구하는 시위까지 있었다.


더구나 설치된 곳이 포항공항입구여서 타지 사람들이 볼라치면 상징물이 그다지도 없어, 꽁치꼬리인가? 하는 의구심마저 갖게 한다.


지역의 학계, 문화계 등 저명인사들로 구성된 테라노바심사위원회에 의해 선정된 조형물이라고 하기에는 부끄러운 수준이다.


지역적 특성보다는 예술적 조형미를 중심으로 평가했다는 설명이라지만 심사위원들의 자질이 의심받기 십상이다. 이곳 포항은 포스코로 인해 성장한 도시라는 점에는 의의가 없다.


그러나 제철소가 들어서기 전에도 포항은 있었고 천혜의 자연보고로 잘 알려진 곳이다. 우리나라 전체 역사 중에서 천년 이상 중심역할을 한 곳이기도 하다. 이 지역의 대표적인 설화인 ‘연오랑 세오녀’가 아니라도 상징거리는 무수하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포항 하면 곧 제철소라는 등식이 만들어졌고, 지금은 또 꽁치다. 제철소는 그렇다고 치자, 어디 상징물이 없어 꽁치를 고집하는지는 생각이 영 짧아 보인다.


식민시대 일본인들이 포항을 호랑이 꼬리에서 토끼꼬리로 비하시켰다. 그런데 이제는 그보다 더 못한 꽁치꼬리라니 도무지 생각이 있는 사람의 발상인지 모르겠다.


그 옛날에는 과메기 재료가 청어에서 꽁치로 바뀐 것처럼, 언젠가는 어획량 감소로 사라질지도 모르는 꽁치를 포항의 상징물로 강조하는 것은 이치가 아니다.


거기다가 철강 도시의 이미지를 내세운답시고 걸핏하면 주변과 조화가 어려운 스테인리스를 재료로 고집하는 것도 무리가 있어 보인다.


작품의 선정에도 개선해볼 점이 있다. 여러 가지 구설수를 피하기 위해 공모를 하고 심의위원회를 통해 선정을 한다고는 하지만 도시 전체의 품격에 관련되는 것이기에 다수 시민들의 공감대를 우선해 보는 것이 필요하다. 작가선정에도 개선할 점이 있어 보인다.


포항에도 많은 조각가들이 활동하고 있고, 그들의 작품성도 전국 어디서나 인정받고 있다. 타지역작가에 비해 책임감을 더 많이 느낄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해 볼 필요가 있다. 어쨌거나 도시의 얼굴을 세우는 일에 제도적인 보완을 통해 신중을 기해야 할 일이다.


영국의 범죄자 수용소가 호주였고 시드니였다. 그랬던 시드니에 조개모양의 오페라 하우스 하나가 그 도시뿐만 아니라 나라 전체의 이미지를 바꾸어놓았듯이 실무를 맡고 있는 사람들은 조형물 하나하나가 그 지역의 품격을 나타내는 얼굴임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유치하고 시민정서에도 맞지 않는 조형물은 안타깝지만 헐어 낼 것은 과감히 헐어내고 새롭게 바꿔야 한다. 이런저런 이유로 계속 방치한다면 이곳을 찾아오는 외지인들에게 포항시민들 모두가 예술이나 조형감각에는 무지한 사람들로 도매금 취급을 당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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