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에 힘 빠지면 어디 잘못 다닌다고 노자 보내 준 것 보름 전에 잘 받았다. 네 돈이 지팡이 아니가 참말로 고맙다.
갈대 두른 강경 포구가 가을 맛을 돋운다만 까탈스런 아비 입맛 물려준 것 다 내 죈데 내 대신 애면글면 사는 네 보기가 늘 미안타.
간장 종지 하나 정도면 고봉밥도 뚝딱한다는 명란젓과 어리굴젓 눈에 들어 싸 보낸다. 키 크고 싱거운 놈과 간맞추며 잘살아라.
- 채천수 시조집 ‘발품’(그루·2006)
대구에서 초등학교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시조를 쓰고 있는 채천수 시인의 둘째 시조집‘ 발품’에는 우리 시대의 사실적 삶이 잘 녹아들어 있다. 그것은 아내와 늙은 형수, 돌아가신 아버님과 어머님 등 가족의 일상적 삶의 모습이나 휴대폰이나 컴퓨터 기기 등의 통신 매체에서 비롯되는 다양한 현대적 삶의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인용한 시 ‘택배 쪽지’도 시골에 사는 노모가 도회지 며느리에게 보낸 택배물 속에 들어 있는 삐뚤빼뚤 사연을 적어 보낸 그야말로 ‘택배 쪽지’가 그대로 시로 만들어진 경우다. 이 시조는 3수가 하나의 제목으로 묶여진 시조이다. 그러니까 한 편의 시조가 1연(聯)이요, 1행(行)으로 표기되어 있다. 각 시조 종장의 시구를 읽는 맛이 알싸하고도 정겹다. “네 돈이 지팡이 아니가 참말로 고맙다.” “내 대신 애면글면 사는 네 보기가 늘 미안타.” “키 크고 싱거운 놈과 간맞추며 잘살아라.” 는 늙은 시어머니가 도회지의 며느리에게 보내는 편지 쪽지의 진솔한 말투가 잔잔한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그 누가 시조를 두고 고리타분한 지나간 옛 형식의 시라고 하는가? “마당에/애들도 놀고/칭얼대며 뭐 떼도 써야//손잡고 감도 따고 감자도 구워 먹지//추억만/먹고 사는 길에/영구차가 한 대 온다.”(‘화산리 고샅’ 전문.)라는 시조도 애들은 물론 젊은 사람도 없이 노인 혼자서 적막한 삶을 이어가다 마지막 죽음에 이르러 영구차 한 대 들어오는 산골 마을의 사실적 풍경을 잘 그려내고 있다. 우리 시대의 씁쓸한 뒷모습이다. ‘화산리 고샅’의 한 풍경만 제시하고 있는 듯한 이 단형 시조가 우리 시대의 던지는 삶의 문제의식은 작지 않다.
해설<이종암·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