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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아이들

김만수 기자
등록일 2009-05-20 19:50 게재일 2009-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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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만수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경북분원 주임교수


얼마 전 서울 출장 중 전철 안에서 있었던 일이다. 주말이라 유난히 차 안이 복잡한데 30대의 젊은 어머니가 유치원에나 다님 직한 아들을 자기 옆자리에 앉혀 놓고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자기 무릎에 앉히고 가는 것이 도리겠지만, 그 젊은 어머니에게 그것이 당연한 권리로 생각되었던 모양이다.


차가 막 떠나려는데 할아버지 한 분이 탑승했다. 할아버지는 주변을 둘러보다가 선뜻 일어나서 자리를 양보하는 사람이 없자 그 아이 자리로 다가 가서 “아가, 이 할아버지하고 같이 좀 앉아가렴!” 하면서 아이들 안아 들려고 했다.


그때 갑자기 아이는 무어라고 고함을 지르면서 할아버지의 뺨을 철썩 올려붙이고 말았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다. “애한테 양해도 제대로 구하지 않고 그렇게 강제로 자리를 빼앗는 법이 어디 있어요? 얘는 집안에서도 기를 죽이지 않고 키웠기 때문에 도저히 그런 걸 못 참는단 말이에요!”


젊은 어머니의 항변은 서슬이 시퍼렇게, 그렇잖아도 얼이 빠져있는 그 할아버지를 사정없이 몰아치는 것이었다.


“허허, 말세로구나, 말세!” 할아버지는 간신히 그 말 한마디만 남기고는 자리를 피하려고 몸을 돌렸다. 그제서야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일어나 할아버지에게 자리를 권하는 한편 그 젊은 어머니에 대한 비난이 세차게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 막대 먹은 모자(母子)는 결국 다음 전철역에서 쫓기듯 홍당무가 되어 내리고 말았지만, 할아버지의 얼굴에 깃들어 있는 수심은 좀처럼 지워질 줄 몰랐다.


지금 한참 자라고 있는 어린이들은 어른들처럼 쉽게 피로를 느끼지 않는다. 그러므로 2∼30분쯤은 서있거나 엄마 무릎에 앉아간다고 해서 뭐가 어떻게 되는 것도 아니다.


밥을 먹을 때도 어른들 앞에서는 무릎을 꿇고, 조금만 잘못을 저질러도 종아리를 맞으며 자랐던 나이 지긋한 사람들 눈으로 볼 때는 요즘 젊은 부모들이 아이를 키우는 것은 “키우는 것이 아니라 망쳐놓고 있는 것 같다”고 한다.


대중음식점에서 마구 떠들며 뛰어 다니는 아이들에게 야단 한번 안친다. 사달라는 것은 어떤 무리를 해서라도 다 사주고, 껌처럼 TV 앞에 딱 붙어 있어도 “떨어져서 봐라” 소리하는 부모 별로 없고, 울면 돈으로 달랜다.


얼마 전 모 중학교에 선생님 한 분이 말썽꾸러기에게 엉덩이를 때렸다가 학부형이 아이를 병원에 입원시키고 선생님에게 “전치 2주 진단이 나왔는데, 당신 혼 좀 나야겠다.” 면서 폭언을 일삼는 등 며칠여에 걸쳐 학부형한테 혼이 난 그 선생님은 그 후로는 아이들 버릇 고치는 것을 아예 포기해 버린 것 같다고 같은 학교에서 근무하는 교직원 한 분이 귀띔해 주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집안에서 기 살린다는 명목으로 학교에서도, 또 사회에서도 포기해버린 아이들이 자라서 장차 무엇이 될 것인가?’ 생각만 해도 무서운 일이다.


젊은 부모들이라고 모두가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정말 문제는 문제다. 옆에서 뭐라고 한마디 타일러 주고 싶은데 “당신 자식도 아닌데 무슨 상관이냐?”고 대드는 꼴을 한 번만 당하고 나면 누구든 포기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날이 갈수록 청소년 범죄가 증가하고, 학생들이 거칠어지는 것을 단순히 개방사회의 서구화 탓이라고 돌릴 수 있을 것인가? 절대 그렇지 않다고 본다.


옛 선조들은 학교(서당)교육보다 가정교육을 우선으로 쳤다. 부모님께 효도하고 웃어른을 공경하는 것을 백행의 근본으로 삼았으며, 효하는 자만이 나라에 충성할 수 있다고 봤던 것이다.


학교에서 영어 수학 잘하고, 1등 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바른 생각과 바른 말, 바른 행동, 즉 인간이 된 바탕 위에 지식과 지혜를 얻어야 빛이 나는 것이지 자기 멋대로 사는 인간은 사회를 병들게 할 뿐 쓸모없는 존재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기 자식은 물론 남의 자식이라도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서 가르쳐야 한다. 물론 무조건 나무라면 요즘 아이들은 “자기도 시원찮으면서 숯껑이 검정 나무란다”고 대들런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어른들도 바르게 살아야 아이들에게 떳떳이 훈계할 수 있는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즉, 내가 살고 있는 사회, 그리고 내 자식들이 살아야 할 미래의 밝은 사회를 위해 이 문제는 심각히 생각해야 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버릇없이 자란 아이들은 이다음에 어른이 되어서도 이웃을 괴롭히고, 이 사회의 안녕과 질서를 위협할게 뻔하기 때문이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이 5월, 이미 어린이 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은 지나갔지만 말로만 ‘가정의 달’이라고 요란을 떨 것이 아니라 오늘의 이 모든 사회적 불안과 청소년문제가 어른들의 잘못으로 생겨났음을 깨닫고 모두가 아이들 앞에서 다시 한 번 옷깃을 여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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