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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코교육재단 ‘선생님’ 주제 글쓰기 공모전

관리자 기자
등록일 2009-05-20 20:14 게재일 2009-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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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반부 최우수작 박영미(포철중 교사) ‘안녕하세요! Waterhouse 선생님’

박영미씨



“마음을 나누어 주는 것은 결코 사라지지 않으며 그 사람의 가슴속에 영원히 저장된다.”


활짝 피었던 벚꽃이 하늘하늘 눈꽃이 되어 휘날린다. 소복이 쌓인 하얀 눈꽃의 향연…. 급히 저녁을 먹고 달려 나가는 큰 아이의 뒷모습을 내다보다 흐드러지듯 떨어지는 꽃잎 사이로 그리운 얼굴 하나가 떠오른다. 늘 그랬던 것처럼 언제나 마음속에 그리움으로 남아 있는 분, 지금은 멀리 있지만, 언젠가 꼬옥 다시 한 번 찾아뵈어야 할 것 같은 그 분.


2002년 델라웨어의 여름은 유독 더웠다. 시차 적응도 되기 전, 시도 때도 없이 쏟아지는 잠 속에서 살림 장만하랴, 아이들 건강 검진 및 학기 준비에 정신없는 시간을 보낼 즈음, 며칠 후 Parents & Teacher‘s Meeting Day가 있다고 연락이 왔다. 학기 시작 전, 선생님과 인사 나누고 잠깐 동안 교실을 둘러보는 시간이라고.


기대감 반 설렘 반으로 찾아간 107호 교실엔 일찍 도착한 학부모들이 옹기종기 모여 서서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모두가 서로를 잘 아는 사람들인 것처럼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 두리번거리며 선생님을 찾았지만 도무지 선생님으로 보이는 분을 찾을 수가 없었다. 쭈뼛쭈뼛 교실을 둘러보다 용기 내어 곁에 있는 사람에게 물어 보았다. “Excuse me, Where is the homeroom teacher?” 웃으며 가리키는 쪽을 바라보니, 커다란 목소리로 열변을 토하는 한 할머니의 이야기를 미소 지으며 듣고 계신 콧수염 아저씨. 캐주얼 티셔츠에 반바지 차림. 선생님의 첫 인상은 그랬다. 그저 편안한 맘씨 좋은 옆집 아저씨 같은. 다가가 선생님과 인사를 나누고 한국에서 온 지 며칠 되지 않았음을 알리고 아이에 대한 부탁의 말씀을 드렸다. 미국 오기 전, 한국에서 한 학기 동안 학교를 다녔지만 아이가 분리불안 증세가 있어 낯선 환경에 잘 적응할지 걱정이라고.


활짝 웃으며 건네는 선생님의 다음 한마디는 순간 나를 놀라게 했다. 전혀 예기치 않던 제안(?)이었기에 잠시 내 귀를 의심하기도 했다. 하지만 선생님은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장난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한 번 더 친절하게 말씀해 주셨다. “How about staying in class with your son for a while?” 잠시 할 말을 잃었다. 나 또한 교직에 있지만, 내 수업에 학부모가 함께 수업을 듣는다는 건 상상할 수가 없는 일이었기에…. 정말 그래도 되겠느냐고 반문했지만 선생님은 싱글싱글 웃으시며 “No Problem!” 그 기간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다 해도 선생님은 역시나 “That’s OK!“이었다. 가슴 졸였던 나의 마음이 한 순간 환한 빛을 받았다. “Oh! Thank You!” 그렇게 시작된 선생님과의 만남은 내게 미국의 살아있는 초등교육을 체험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드디어 학기 시작일, 선생님은 교실 문 앞에서 통기타 반주에 맞추어 노래를 부르며 아이들을 환영하셨다. 형식적인 인사말 없이 곧바로 수업 시작, 칠판 왼쪽 구석엔 그날 수업 일정이 빼꼭히 적혀 있었다.


6명씩 그룹별로 마주 앉아 수학·과학수업을 듣다가, Reading 시간엔 교실 한쪽 러그에 둘러 앉아 스토리 북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때 등장하는 선생님의 Puppet, Grizzly는 아이들에게 최고의 인기였다. 목소리를 변조해 가며 아이들 입맛에 맞추어 책의 내용을 실감나게 들려주시는 선생님의 모습은 50대 아저씨가 아닌 초등학교 아이 순수 그 자체였다.


그룹별로 화장실을 보내는 일 이외에는 따로 쉬는 시간이 없음에도, 선생님은 아이들이 화장실 볼 일 보는 그 순간에도 기타 연주와 노래로 아이들의 귀를 즐겁게 해 주셨다. 신나고 즐겁게, 때론 코믹하고 익살스런 표정까지 곁들여…. 아이들도 자연스레 어깨를 들썩들썩 노래를 따라 부르다 까르르 까르르……. 초등학교 1학년 학생들에게 버거울 수도 있는 오후 3시까지의 수업은 하나도 지루하지가 않았다. 우리 아이 또한 말을 알아들을 수 없는 환경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고 즐겁게 학교를 다닐 수 있었다.


1년 동안 쌓인 수많은 추억들…. 특히 기억에 남는 건 Halloween Parade와 Book Character Day, 1박 2일 Field Trip이었다. 선생님은 마법을 부리듯 다양한 모습으로 아이들과 함께 호흡하셨다. 때론 동화나라에서 툭! 튀어나온 익살꾼처럼, 때론 나비넥타이 조여 매고 노래 부르는 거리의 악사처럼, 금방이라도 기이한 요리로 아이들을 팔짝 팔짝 놀래킬 괴상한 차림의 쉐프(chef)가 되어….


또한 학부모 상담에서 선생님은 우리 아이가 혼자 학교에 다닐 수 있었을 때에도 수업 중에 어떤 내용을 어떻게 공부했는지 그 발전 속도를 한눈에 가늠할 수 있도록 풍부한 자료를 보여 주실 정도로 세심해 처음의 걱정이 기우였음을 확인하곤 흐뭇해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사과 한 쪽, 쿠키 하나로 점심을 때우더라도 아이들에게서 잠시도 눈을 떼지 않았던 선생님. 말썽꾸러기 Don Walker에게 화가 나더라도 말로써 호령할 뿐, 다음 날엔 언제 그랬냐 싶게 함께 장난치던 선생님. 러시아에서 온 수학 천재 Alex가 수업 시간에 탁월한 수학 실력을 발휘했을 때, 성큼 성큼 다가가 정중히 악수를 청하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던 젠틀맨 선생님. 개인적으로 이야기를 나눌 때면 한반도의 남북관계에 대해 너무나 할 말이 많으셨지만, 짧은 내 영어 실력 탓에 함께 맞장구 칠 수 없었음이 참으로 안타까웠던 순간들.


어느덧 아이는 초등학교를 지나 이제 중학생이 되었다. 그 후, 얼마 동안은 이메일이나 크리스마스카드 등으로 선생님과 변함없이 연락이 지속되었지만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고 했던가? 지금도 주말이면 라이브러리에서 작은 콘서트를 계속하고 계신지, 사모님 유방암 수술은 무사히 끝났는지, 궁금함을 확인하지도 못한 채 또 시간이 흘렀다.


돌아올 때 교환학생으로라도 꼭 다시 미국에 오라는 당부의 말을 잊지 않으며 같은 반 아이들에게 일일이 편지글을 쓰게 해서 전해 주실 만큼 인정도 많았던 키다리 선생님. ‘It was a privilege to meet Hyuk‘s family.’ 아이의 마지막 리포트 카드에 적어준 감동적인 코멘트는 아직도 내 가슴에 지울 수 없는 선생님의 잔영으로 남아 있다. 하루하루 바쁘게 생활하는 우리 아이의 뒷모습에서 선생님에 대한 그리움이 더해지는 건 어쩌면 선생님을 통해 가졌던 그 시절의 작은 여유를 그리워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더 늦기 전에 선생님께 안부의 글이라도 띄워야겠다. 안녕하세요! 물집(Waterhouse)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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