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일 비 오십니다.
그간의 메마름 다독이며 묻는 안부에
작은 잎은 크게 대답하고
큰 숲은 조용히 끄덕입니다.
경사진 길에서는 함께 흐르고
오목한 곳에서는 둥글게 둘러앉는 빗방울들,
그저 창 안에서 밖을 바라보았을 뿐인데
마음이 젖어 듭니다.
이런 날은 북부시장 허름한 식당에 앉아
대낮부터 동무를 불러내고 싶습니다.
천막으로 떨어지는 투둑거림이 굵어질 때
슬리퍼 끌고 주머니에 손 찌른 채
삼미식품 모퉁이를 돌아 내 오랜 동무는
여전히 살이 부러진 우산을 쓰고 올 것입니다.
탁자에 뜨끈한 두부 한 모와 김치가 오르기도 전에
그와 나, 막걸리부터 한 잔 진하게 치겠지요.
드나는 이 모두가 오래 된 단골
기우뚱거리는 삶 안주 삼아 일어서는 거나한 목청 사이로
식은 동태찌개를 다시 데우며 찬모가 늙어가는 동안
틀어진 문 밖 장터 골목은 젖어 비릿하고
어쩌면 또각또각 싱그러운 처녀가 지나가기도 할 겁니다.
우째 지냈노? 하며 시작한 낮술은
두어 되쯤 비울 때까지 어쩌면 싱거울 수도 있겠네요.
그러나 두부가 한 모 더 추가될 무렵,
부리나케 택시타고 달려가겠다고
거기 꼼짝 말고 있으라는 동무가 있을 것이고
젓가락과 대접 하나 더 오르고 나면
어릴 적 이야기가 슬슬 둘러 앉아 컬컬한 웃음 터질 겁니다.
벽의 시계가 훌쩍 서너 시를 넘겨도
누구 하나 시간을 재는 이 없는 그 자리.
부산스런 시간 속에서
이리 구르고 저리 구르며 가랑잎처럼 살다가도
팍팍한 외로움에 가려움을 긁어대다가도
이렇게 비 오는 날,
마중 나가는 마음 있어 다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