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호랑이의 흔적

정태원 기자
등록일 2009-05-14 20:45 게재일 2009-05-14
스크랩버튼
정태원 < 북부취재본부장 >

우리나라에는 호랑이가 멸종됐다는 게 학계의 공식입장이다. 그러나 심심치 않게 호랑이로 추측되는 짐승의 흔적이 발견됐다는 소식이 들린다.

호랑이 소동은 우선 발자국 흔적에서부터 배설물 또는 가축이나 야생동물이 물려죽은 사례들이 주종을 이룬다. 지난 가을 이후 태백산맥을 중심으로 한 산간지대에서 신고된, 괴 짐승 흔적 발견 건수가 세 건에 이른다. 이들 신고사례를 분석한 전문가들은 호랑이가 아닌 표범일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 강원도 지역에서 몇 년 전 산에 올랐다가 호랑이를 목격했다는 주민의 말을 종합해 보면 한국호랑이 또는 백두산 호랑이로 불리기도 하는 시베리아 호랑이가 아닌 표범이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한국호랑이와 시베리아 호랑이는 체형에서부터 발의 길이 등에 걸쳐 약간의 차이가 있는 것으로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으나 한국 호랑이는 또는 백두산 호랑이는 시베리아 또는 아무르 호랑이와 같은 종으로 분류한다.

시베리아 호랑이는 1900년대 초까지만 해도 한반도를 비롯한 만주와 몽골 북부, 러시아 극동지방에 걸쳐 수천 마리가 서식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남한에서는 일제 강점기에 이루어진 무차별 포획으로 1920년대 이후 서식이 확인되지 않고 있다. 현재는 러시아 극동 남부의 하바로프스크와 만주, 북한 등지에 수십 마리 정도가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192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한반도 일대는 호랑이 천국이었다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역사기록으로는 조선왕조실록에만 수백 차례나 호랑이에 관한 기록이 보인다. 실록에서 보이는 기록은 태조 1년 윤 12월 20일 한양 성안에 호랑이가 들어와 흥국리 사람이 활로 쏘아 죽였다는 기록을 시작으로 백성들을 해치는 호랑이를 관찰사가 주도해 잡으라는 어명에 이르기까지 2백여 차례가 넘게 호랑이가 등장한다.

이처럼 많은 호랑이로 인해, 192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전국에서 한 달에 백여 명이 넘는 사람들이 목숨을 잃기도 했다고 전한다.

실제 강원도 태백시의 문화원 관계자가 1980년대 중반에 조사한 바에 따르면 태백산을 중심으로 한 강원도와 경북 봉화군 일대에서만 호식총이 2백여 기 이상 있었다고 한다. 호식총 또는 호식장은 그 독특한 무덤양식으로 쉽게 구분이 간다.

호랑이가 사람을 해치면 시신의 잔해를 모아 현장에서 화장을 하고 돌무덤을 쌓은 뒤 시루를 덮고 쇠꼬챙이를 꽂아 두는데 이를 일러 호식장 또는 호식총이라 한다. 산간지역 주민들은 사람이 호랑이에게 목숨을 잃으면 창귀가 되어 호랑이의 종이 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 창귀는 다른 사람을 유인해서 호랑이에게 잡혀먹히게 하고 나서야 호랑이의 종에서 풀려날 수 있다고 믿어 호환을 없애기 위한 주술적인 방식으로 이 같은 무덤을 만들었던 것이다.

유골을 화장하는 것은 사악한 기운이 완전하게 소멸될 것을 바랐고 돌무덤을 쌓은 것은 신성한 지역임을 표시한 것이다.

또 시루는 철옹성임을 뜻하면서, 솥 위에 올라앉는 형국으로, 뚫린 구멍과 함께 하늘을 상징하여 사악함과 불결함, 모든 것을 찌고 삶아 죽이는 시루를 엎어놓으면 창귀도 그 안에서 꼼짝 못하리라 여겼던 모양이다.

또한 아홉개의 시루 구멍으로 귀신이 빠져나갈 수 없도록 벼락을 의미하는 쇠꼬챙이를 꽂아 두고 창귀가 시루 안에서만 맴돌고 나오지 말라는 의미도 담았다.

한반도에서 이렇게 많았던 호랑이가 모두 사라진 지금 인간이 호환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되기는 했다.

그러나 늘어나는 야생동물을 감당하지 못해 순환 수렵장을 지정하고 인간이 또 다른 간섭을 하면서 생태계는 다시 혼란을 겪고 있다.

인간에게 심각한 해를 끼칠 수 있는 호랑이의 야생복원은 국토가 좁다는 등의 이유로 어려운 일인 건 분명하다.

그러나 자연이 가지는 먹이사슬을 되돌려 놓는다는 의미에서는 인간에게 크게 해를 끼치지 않는 표범이나 늑대 등의 복원은 적극적으로 검토해 볼 만한 일인 것 같다.

종합 기사리스트

더보기
스크랩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