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주의 영화와 치욕을 구제하지 않고 나라의 흥망을 구제하지 않고 구차하게 합하고 구차하게 용납하여 녹봉을 유지하고 사교에만 힘쓸 뿐인 자를 ‘나라의 도적’이라 한다.
‘순자(荀子)’의 신도편(臣道篇)에 나오는 말이다. 오늘날 이 땅의 한쪽에선 길바닥에 거적을 깔고 삶의 무게를 잠시라도 내려놓고 싶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다른 쪽에서 이런 어려운 사람을 돕겠다고 두 팔을 걷어붙이는 사람도 있다. 불행 중 다행이다.
그런데 정작 이들을 위해 한 팔이라도 건네야 할 사람들이 엉뚱하게도 차려놓은 잿밥을 놓고 둘러앉아 희희낙락거리고 있으니 ‘순자’의 말대로 이런 몰염치한 자들을 ‘국적(國賊)’이라 부르지 않을 수가 없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주변이 자화자찬한 도덕성은 요즘 불거진 금전문제를 보면 비리의 추함을 가리기 위한 포장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가운데 현 정부의 청와대 직원이 성 접대 파문을 일으켜 세간의 눈총을 받았다.
게다가 연약한 자의 피를 빨아 강한 자에게 수혈해 잇속을 챙기려는 자의 더러운 행각이 드러난 고 장자연 씨의 사연이 안타깝다.
전설의 태평성대 요순시대에 임금이 되어달란 말에 귀를 더럽혔다고 맑은 물에서 귀를 씻었다는 ‘허유(許由)’와 그런 더러운 귀를 씻은 물을 말에게 먹일 수 없다고 한 ‘소부(巢夫)’가 오늘날 이런 꼴을 보고 듣노라면 아마 눈과 귀를 아예 막아버리지나 않을까 싶다.
이런 걸 보고 과잉반응이고 침소봉대(針小棒大)라고 말하지 마라. 바늘도둑이 소도둑이 되고 쥐구멍 때문에 저수지 둑이 무너진다.
2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던 영국 베어링 은행도 신출내기 직원 한 사람의 맹랑한 짓거리로 공중분해 됐다.
그리고 스스로 병들었음을 알지 못하고 재수가 없어 일어난 일이라 말하지 마라. 미국에서 돈에 중독된 자들로 인해 벌어진 프라임 모기지 금융사태가 세계경제를 침체 늪에 빠뜨렸다. 이것이 재수가 없어서 일어난 일인가?
정·관계 불법 금품로비로 바늘방석에 앉아있는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은 현재 자신이 처한 상황을 “인연이 아니고 운명”이라 표현했다.
모르긴 해도 스스로 인연에 매달리거나 또는 그 인연을 과감히 자르지 못해 지금의 운명을 만든 것이라 짐작된다.
거미줄이 얽히고 얽혀 어느새 쇠사슬보다 단단해져 버린 것이다. 인연을 다루는 근본적 생각이 현재의 운명을 만든 것이다.
배반낭자(杯盤狼藉)란 말이 있다. 주연(酒宴)이 고비에 오르면 주석이 난잡해지는 형상을 일컬어 한 말이다.
아무리 즐겁고 좋은 것도 극에 달하면 어지럽고 혼란해진다. 이제 그런 고단한 운명의 굴레를 벗어버리는 운명의 시간이 온 것 같다.
행동은 생각이 근원이요 중독은 행동으로 이뤄진 습관이 원인이다. 결국 생각이 중독을 일으킨다는 말이다. 중독이 되면 필요한 것을 핏속으로 빨아 당기기 전에 눈에 보이는 게 없다.
건강한 공직자라면 누가 업무와 상관이 없다며 유흥이나 금품을 권유해도 사양을 해야 할 텐데 습관적으로 접대 받기에 중독되어버린 공직자는 먼저 그런 걸 요구한다. 처음부터 생각이 병들었던 것이다.
공직사회가 부패의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으려면 곪은 부분을 숨길게 아니라 과감히 도려내야 할 것이다.
현 정부에서는 지난 참여정부시절 자기 식구 감싸기의 결과를 교훈 삼아야 할 것이다.
온 강산에 봄꽃이 한창이다. 꽃을 보고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 길가다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영문도 모르게 꽃을 받아도 우선 기분부터 좋아진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고 한다.
모든 사람과 함께 이 세상을 아름답게 꾸미려는 마음을 가진 자는 정말 꽃보다 아름답다. 이렇게 모두에게 베풀 줄 알고 기쁨을 주려는 자, 그들이 바로 공직자가 아닌가?
공직자는 국민을 위한 희생과 봉사의 대가로 살아간다. 공직자는 이 사회의 구조를 지탱하는 기둥이다. 꽃보다 공직자! 우리 사회에서 이런 말이 자연스레 회자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