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쉰여덟번째 안부 - 시인 어부 김근이

관리자 기자
등록일 2009-04-21 20:29 게재일 2009-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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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오면/ 막내야

안마당 수돗가에/시멘트 벽돌로/ 자그맣게 연못을/ 만들고

바닷물 길어다 가득 채우고

아빠가 잡아오는/ 숭어랑 가자미도/ 헤엄치게 하고

문어랑 게도 작은 놈으로/ 두어 마리 넣어서

절대로/ 따분하지 않은 너의 하루를

벗하게 하자 그리하여

(김근이의 시 ‘봄이 오면’ 부분)

바람 크게 불던 며칠 전,

두 번째 시집을 만들었다며 읍내 오셨지요.

온 마음 다해 밤새 축하주 올려도 시원찮을 판에

동아다방 커피값, 모리집 탁주값 당신 서둘러 치르시고

어스름 저녁 해안길 따라 굽이굽이 트럭 몰고 가셨지요.

시를 읽노라니 불현듯 그리웠습니다.

모감주나무 울타리 삼아 동그마니 앉은 마을 학달비에서

평생을 어부로 사는 시인,

어린 시절 만난 시 몇 편 가슴에 뿌리고 만 탓에

눈부신 흰머리 칠순에 당겨 앉은 이 봄에도

시를 거두며 사는 당신.

뒷산 숲은 연록으로 우거지며 재잘대는데

한달비 구룡소 입구 당신의 아담한 집은 비었더군요.

벗어 놓은 비닐 옷과 장화가 그물 더미 곁에서 고양이처럼 졸고

계셔요? 계셔요? 묻는 말에 바닷내만 내다보던 마당.

물어물어 용진호 찾아 갔지요.

밀짚모자 눌러 쓰고 아내와 마주 앉아 그물 손질 하는 모습

먼발치부터 크게 안겨왔습니다.

넙죽 배에 올라 노부부의 오후로 염치없이 끼어들었지요.

주고받는 이야기 속에서 훈훈하게 익어가는 목선 또한

항해하는 한 척 ‘시’였답니다.

파도처럼 치고 달아나버린 원망스런 세월도 밉지 않은 건

결국은 파도처럼 다시 밀려오는 한 줄 시가 있었기 때문이겠지요.

쓰러진 삶도 일어선 삶도 모두 그 안에 있었으니까요.

그래요.

잡아 올린 물고기는 간혹 금쪽같은 시절을 선물하기도 하였지만

반평생 써 내린 시 수 백편은 여전히 술 한 잔 받아 주지 않음에도

놓고 싶지 않은 그 마음 보았습니다.

당신을 ‘어부 시인’이 아니라 ‘시인 어부’라고 부를 겁니다.

그러니까 시인이 바다에 나갔고 시인이 그물을 던졌고

다름 아닌 시인이 온 삶에 부리고 사는 짧은 글귀 덕분에

그 외진 바닷가에도 꿈과 희망 여적 살고 있는 것이니까요.

돌아와 다시 든 시집 속 당신, 참 따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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