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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접대"란 요상한 말이…

김시종 기자
등록일 2009-04-09 20:19 게재일 2009-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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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종 前 문경중 교장


요사이 바보상자(TV)에서 자주 튀어나오는(?) 말이 ‘성 접대’란 말이다. 식사접대나, 식사제공이란 말은 자연스러운데, ‘성 접대’란 말은 낯 간지럽고 어색하기 짝이 없는 말이다. 탤런트 J씨가 성 접대 생활화(?)에 언저리가 나 청춘에 인생을 하직했다.


‘성 접대’란 말은 언어의 타락이다. 부부가 아닌 남과의 성(性)관계는 부도덕이요, 범법행위인데, ‘성 접대’란 말 대신에 ‘성 제공’이란 말로 말을 정화해야 한다.


J 탤런트의 죽음을 두고 그녀와 노닥거린 성남(性男)들은 조금 긴장이 되겠지만, 내가 보기엔 이 사건도 그 전의 사건처럼 ‘태산명동 서일필(泰山鳴動 鼠一匹)’격이 될 것이 불 보듯 뻔하다. 불경이 중생들에게 많은 감동을 주지만 보시 중엔 ‘살(肉) 보시’가 제일이란 스님의 속언(俗言)이 정곡을 찌른 도인(道人)의 달변이다.


지금까지 인류가 멸종되지 않고 꾸준히 이어져 온 것은 식욕과 육욕 때문이다. 기독교의 원죄도 아담과 이브의 섹스(Sex) 행위에서 나온 것이다. 일찍이 인류는 황금(富)과 미녀(Sex)를 뺏기 위해 전쟁의 폭력을 남용했다. ‘여자보고 성내는 것은 남자의 그것밖에 없다’는 패설도 보통 깨달은 사람의 말이 아니다.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것은 핵폭탄이 아니라 성 폭탄이다. 핵폭탄은 핵보유국가 원수들이 잘 조정하면 되지만 성 폭탄은 성자로부터 구제불능의 망나니까지 소지하고 있어 폭발사고의 예방은 커녕, 예측조차 할 수 없는 형편이다. 20세기가 되기 전, 19세기까지 유목국가인 몽골에는 자기 집을 방문한 남자손님에게 자기 아내를 주어 하룻밤 노리개가 되게 했다.


21세기 문명인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야만인의 풍속 같지만, 옛날 몽고인은 집단생활을 한 게 아니라, 파오(천막집)를 만들어 단독 이동 생활을 했기 때문에 치안도 부재요, 무뢰한이 자기 천막에 뛰어들어 폭력을 휘둘러 가족을 다 죽이고 겁탈하기 전에 낯선 나그네에게 선뜻 자기 아내를 빌려(?)주어 화를 예방했다고 한다.


또 이 건에 대해 다른 이야기도 있다. 종자개량(?)을 위해 외간 남자의 정자탱크(!)를 활용했다는 설도 있는데 그도 듣고 보니 그럴 듯 하다. 성은 종족번식 문화창조를 위해 막강한 힘을 발휘하기 때문에 무조건 경시할 수는 없다. 여자가 연예계의 입문과 정상이 되기 위해서는 육탄공세와 금력 공세 등 피나는 총력전을 벌여야 함은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예술을 하자면 근본적으로 ‘끼’가 있어야 한다는데 하필 ‘화냥끼’가 극성을 부리는 것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인간에게 성(Sex)은 필요악인가? 필요선인가? 정답은 개개인 각자의 도덕수준과 정확하게 정비례 한다고 본다. 지금까지 성 접대를 한 번도 받은 적이 없기 때문에 ‘성 접대’에 대한 걸쭉한 글도 부담 없이 적을 수 있어 참 좋다. 양심의 자유야 말로 최고의 행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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