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한국화가 이철진

윤희정기자
등록일 2009-02-27 16:07 게재일 2009-02-27
스크랩버튼

누드에 철학이? "제 작품의 존재 이유죠"

"전시회에 가기가 부끄럽다는 사람들이 있지요. 대학 졸업후 대구 모화랑에서 큐레이터를 몇 년 한 적이 있어요. 그때 일반인들이 전시장을 들어오는 것에 부담을 느낀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미술관은 각종 기획전을 준비하므로 입장료를 낸다고 보면 됩니다. 화랑이나 갤러리는 입장료가 없어요. 그저 들어와서 자기만의 방식으로 작품을 감상하면 됩니다. 음악이 깔려나오면 남에게 그 음악에 지장을 주지않을 만큼 발자국 소리를 내지 않으면 좋겠고 어린이를 동반했다면 아이 혼자 뛰어다니지 않게 손을 잡고 관람하면 좋겠습니다."



한국화가 이철진(46·사진)은 여체 누드 작가로 불린다. 화가로서 신비한 여체의 빛깔을 찾겠다며 일찍부터 독특한 여체 누드 작업을 고집해 왔다.


그는 어릴적부터 만화를 많이 그렸다. 그러다 ‘프란다스의 개’라는 만화영화 속에 등장하는 화가 지망생인 주인공이 그리는 스케치를 보며 회화적인 그림을 처음 접한 후 줄곧 그렸다.


“지금보다 만화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던 시절이었지만 초등학교 5∼6년에 지금은 한겨레 신문 시사만화가 박재동 문화생으로 있다는 절친했던 정00과 연재만화를 만들어 아이들에게 보여주기도 했었지요. 중고등학교 때도 교과서엔 필기보단 온통 만화로 도배했었고 어머니께 항상 매를 맞은 기억이 있어요. 그당시 반 친구들의 공책에 한 장 정도씩은 내 그림이 있었던 것 같아요.”


포항에서 포항예술고 교사로 재직하며 작품활동을 겸하고 있는 그는 ‘새봄’부턴 포항시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그림강좌에 강사로 나선다.


포항문화원에서 포항지역아트센터 강좌의 하나로 ‘김홍도, 집 밖으로 나오다’라는 타이틀을 달고 4월2일부터 시작해 6개월간 계속한다. 타이틀이 재미있는데, 그가 수십년 동안 화두로 삼오온 인물화의 대가에 대한 열정이 담겨 있단다. 우리나라 한국화의 대가의 순수한 빛의 에너지로 포항을 비추고 감싸 안겠다는 의미이겠다.


그의 고향은 경남 합천이다. 영남대 한국화과 졸업 후 줄곧 대구에서 활동하다 포항예술고가 개교하면서 2000년부터 본격적으로 포항에서 살고 있다.


원래는 서양화로 대학을 들어갔다. 2학년때 동양화과로 과를 선택했다.


“어려서부터 인물화를 좋아했고 지금 한성대 교수로 재직중인 정종해 교수님 인물화를 부산에서 재수시절 보고 ‘이거다’ 싶어 대학들어와 전공을 바꾸었지요. 그당시 정종해 교수님이 영남대에 재직하고 계신 상태라 대학도 영남대로 가게된 동기이지요.”


그는 많은 공모전 수상 경력이 있다.


“지금은 공모전의 위상이 많이 추락했지만 20년 전에는 열기가 대단했지요. 그 당시 대학 3학년때 전국예술문화 대전에 은상을 수상했고, 대학 4년때 대구시미술대전 특선을 시작으로 대구미술대전에 연 특선 4회 최우수수상 수상으로 30대 초에 최연소 대구시미술대전 초대작가가 되었고 대한민국미술대전 입선·경상북도 미술대전 특선 4회 등에 입상했지요.”


그는 20여년째 독특한 여체 누드로 많은 인기를 얻고 있다. 여체 누드에 천착하는 이유를 물었다.


“특별한 이유는 없어요. 그냥 인물화를 좋아했었고 대학 졸업후 부터 본격적으로 누드화를 그린 것 같아요. 사람들이 이런 질문을 하면 난 특별한 대답을 하지못하지요. 그냥 ‘그릴줄 아는게 인물화 밖에 없어서’라고 할 뿐입니다. 사실 그래요 . 사람들은 누드를 그리는 것에 대해 뭔가 다른 시각으로 보는 모양입니다. 아니 뭔가 특별한 이유를 만들고 싶어 하는 것 같아요. 그렇지만 정물화가가 정물을 보듯 난 그런 의미로 누드를 봅니다. 누드는 제 그림 화면속에서 공간속을 채우는 정물의 역할을 할뿐 다른 의미는 없어요. 그저 감상자들이 서로다른 의미를 가지고 감상평을 하는 것 일뿐 이지요. 물론 그속에 제 나름의 철학을 넣고 싶어하는 것이 앞으로의 제 작업의 방향성이기도 하지만이요….”


그는 매년 해외 전시 및 아트페어를 빠짐없이 한다. 그간 많은 성과도 있었다.


“해외 전시엔 이유가 있겠나요. 작가가 작업을 세상에 내보이고 싶어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그것이 또한 아티스트의 본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술가가 자기 혼자만의 즐거움으로 작업을 작업실에만 보관 한다면 그것은 사치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굳이 또 한가지를 든다면 졸업후 첫 개인전을 가지면서 스스로 약속한 것이 앞으로 20년간은 매년 작품발표를 하겠다라는 스스로의 약속이었지요. 그 약속은 이곳 포항으로 와서 조금씩 깨어지는 느낌은 이곳에는 주변 도시에 비해 작품발표의 공간(갤러리)이 없다는 것이 가장 슬픕니다.”


또한 다른 이유도 있었다.


“최근 몇 년간 미술계에 거의 핵폭풍이 불었지요. 각종 국내외 아트페어를 비롯 화가들의 작품 발표는 엄청났다고 볼 수 있어요. 그 속에서 몇몇 해외 아트페어에 작품발표를 한 것이 특별하다고 생각지는 않지만 개인적으로 2008년 뉴욕 아트월드 스페이스 개인전은 개인적으로 참의미가 있었어요. 전 세계의 아티스트가 모여있는 곳…. 제가 아티스트라는 것이 새삼 얼마나 자랑스럽다고 느낀 곳, 또한 저에게 새로운 세상의 조우와 철학을 맛보게 한 그런 곳이었죠. 저의 작품세계의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기회가 된다면 언젠가 꼭 뉴욕에서 작품활동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처럼 한국화가로 ‘치열하게’사는 그에게 힘든 점은 없을까.


“힘든 점은 특별한 것은 없어요. 일반 사람들은 동·서양화를 구분하지만 저에게 이미 장르의 구분은 의미가 없어요. 작업을 하면서 회화 자체가 주는 꿈틀거리는 힘이 저에겐 에너지이며 그런 작업을 한다는 것이 보람 아닐까요.”


그는 포항예술고 교사로 살며 제자들에 대한 사랑도 남다르다. 10년 동안 졸업생을 배출하면서 누구 한 사람 애착이 안가는 학생은 없다.


“그림을 그리다 늦게 교사가 된 탓일까요? 학생들을 가르치고 상담하고 똘방똘방 저만 바라보고 있는 아이들을 위해 솔직히 제가 더 무엇을 해줄게 없을까 하며 뛰어 다녔어요. 지역적인 특성 탓인지 생각보다 집이 어려운 학생들이 많아요. 그들을 위해 학비 지원을 위해 독지가를 찿아다녔던 일, 부모님의 불화로 가정을 뛰쳐나온 학생들을 집으로 돌려보낸 일들…. 지금 생각하면 한 편의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합니다. 이제는 시집을 간다는 소식도 들리고 아이출산 소식도 들립니다. 꿈만 같아요.”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곳 없듯이 그에겐 모두가 자랑하고 싶은 제자들이다.


“모두가 자랑하고 싶지만 서울에서 나름 작업을 하는 친구들도 생기고 무엇보다 작업하는 친구들을 볼때 가장 보람을 느낍니다.”


그는 그간 22회의 개인전을 열었다. 앞으론 포항에서 여건(장소)이 된다면 매년 작품 발표를 하고 싶어한다. 작업은 당분간은 현재의 테마를 그대로 유지하겠지만 후에 한국적 철학이 담긴 작업을 하고 싶어 한다.


그는 개인전 외에도 한국화와 관련 단체에서도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영남한국화회, 한국화 동질성 회복회 등…. 한국화 동질성 회복회는 예술활동이 서울 위주라는것에 반발 서울을 제외한 대구, 부산, 제주, 광주, 전주, 대전 등에서 10여명의 작가들이 모여 매년 지역을 순회하며 전시회를 여는 동질성 회복의 기치를 가지고 만든 단체다.


4월부터 나서는 포항문화원 강의는 그에겐 각별한 경험이 된다.


“지역에서 한국화 강의를 보지못해 아쉬웠어요. 이번에 포항시민을 대상으로 포항문화원에서 좋은 프로그램을 만들었다고 연락받았습니다. 과연 부족한 제가 잘할 수 있을지 스스로 부담스럽지만 나름 제가진 모든 것을 한번 보여주고 싶습니다.”


그는 박정희 전 대통령과 엔디 워홀을 존경한다고 했다.


“구애받지 않는 작업에 대한 열정과 미술에서 영화까지 엔터테이너 적인 자유분방한 사고와 활동으로 그를 보면 제스스로가 작업을 하고 싶은 충동에 미치게 합니다.”


포항 미술계의 앞으로 나아갈길을 짚어달라고 했다.


“감히 제가 포항 미술계를 운운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지만 굳이 한가지 지적한다면 포항에는 좋은 화가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이 맘놓고 작업을 내보일 수 있는 화랑(갤러리)들이 많이 생겨나면 좋겠습니다. 포항에는 많은 콜렉터들이 있는 것으로 안다. 그들이 작품 소장을 위해 대구나 서울 등지로 가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지역 작가들의 작품에도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고 그러기 위해선 하루속히 의식있는 갤러리들이 생겨나야 할 것 입니다.”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기에 그림을 많이 보러 갈 것을 권한다는 그.


“전시회에 가기가 부끄럽다는 사람들이 있지요. 대학 졸업후 대구 모화랑에서 큐레이터를 몇 년 한 적이 있어요. 그때 일반인들이 전시장을 들어오는 것에 부담을 느낀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미술관은 각종 기획전을 준비하므로 입장료를 낸다고 보면 됩니다. 화랑이나 갤러리는 입장료가 없어요. 그저 들어와서 자기만의 방식으로 작품을 감상하면 됩니다. 음악이 깔려나오면 남에게 그 음악에 지장을 주지않을 만큼 발자국 소리를 내지 않으면 좋겠고 어린이를 동반했다면 아이 혼자 뛰어다니지 않게 손을 잡고 관람하면 좋겠습니다.”


그림감상법은 먼저 들어가며 팸플릿을 가지고 평론글이나 작가글 등을 통해 작가의 작업방향을읽고 감상을 하면 이해가 빠르고 작가가 있으면 여러 가지 대화를 나누어 보는 것도 좋다고 했다.


너무 엄숙한 분위기에 부담은 금물이라고. 그것도 아니면 자기의 감정대로 순수하게 작품을 보며 의미를 가지는 것, 그것이 바로 좋은 그림 감상법이라고 했다.


“제가 좋아서 하는 일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제 작업을 보고 삶의 활력을 느끼는 계기가 되면 좋겠습니다. 꿈이 있다면 훗날 사람들의 뇌리속에 제 이름 석자가 기억되는 것입니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종합 기사리스트

더보기 이미지
스크랩버튼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