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의 얼굴 동성로에서 순 우리말 간판을 볼 수 있을까.
561돌 한글날을 맞아 본지 취재팀은 지난 6일부터 상가가 밀집돼 있는 동성로 2개 구역을 지정, 간판 170여 개를 모두 조사했다.
외래어, 혼합어, 가장 특색있는 우리말 간판 등을 별도로 구분, 탐사보도(Investigative Reporting)기법을 활용해 수치 오차를 줄였다.
또 7일과 8일 이틀간은 동성로에 나온 포르투갈인, 미국인 등 외국인 2명을 인터뷰, 동성로 영어 간판과 한글 간판에 대한 느낌을 취재했다.
◆동성로의 황당한 간판=8일 오후 대구 중구 동성로.
동성로 중심가인 대구백화점→한일로, 대구백화점→일명 통신 골목으로 이어지는 300m 거리에서 순 우리말 간판은 쉽게 보이지 않았다. 한글로 쓰인 영어 간판, 정체불명의 외래어 간판 등은 쉽게 눈에 띄지만 순 우리말 간판은 찾기 힘들었다.
도대체 외래어 간판과 우리말 간판 비율은 어느 정도일까.
본지 취재결과에 따르면 대백에서 한일로까지 간판을 내건 상가는 총 78곳. 이중 순 우리말 간판은 25개(32%). 영어 37개(47%), 혼합어는 13개(16%)다.
중국어와 한자어가 섞여 뜻을 알 수 없는 간판도 3개(4%)나 있었다.
대백에서 통신골목까지 200m 거리에 있는 전체 상가 수는 90곳. 이중 순 우리말 간판은 25개(27%). 영어 46개(51%). 혼합어가 17개(18%)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불어와 일어를 혼합한 정체불명(?)의 외래어 간판도 2개(2%)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대한민국, 보름달, 우두머리, 사랑채 등 순 우리말 간판을 내건 상가는 전체의 0.2%에 그쳤다.
일부 우리말 간판을 사용 중인 상가의 상호 역시 순 우리말 뜻을 가진 상호 보다 업주 이름 등을 내건 고유 명사 간판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업종별로는 병원, 피부 미용실 등의 간판에서 이런 현상이 두드러졌다.
◆뜻 없는 외래어 간판=취재팀은 동성로 간판의 우리말 외면 현상에 대한 의견을 외국인 2명과 20대 대학생에게 물어봤다.
외국인들은 중국, 일본 등 인근 아시아 국가에 비해 대구 동성로 간판에 영어가 유독 많이 사용된 것 같다고 했다.
포르투칼에서 온 아빌라(46)씨는 “상가 밀집지역인 일본 도쿄의 신주쿠 거리 상가들은 간판 이름을 잃지 못할 정도로 순수 일본어 간판이 많았다. 대구
동성로는 뜻을 이해 못 할 영어 간판과 한글과 영어가 뒤섞인 이상한 상호 간판이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동성로에서 만난 미국인 존슨(여·42)씨는 “한국에서 생활한지 6개월이 넘었지만 상가들이 밀집된 지역에는 으레 영어 간판이 많다. 하지만, 대부분 뜻
을 알 수 없는 황당한 상호가 대부분이며 일부 간판은 영어를 한글로 적어둔 것도 있어 이상하다”고 느낌을 전했다.
대학생 이진영(25)씨는 “사실 간판만 보면 한국적 색깔이 없는 것 같다. 시각적으로도 복잡한 느낌이 든다. 순 우리말 간판이 오히려 이색적인 느낌을
받을 만큼 외래어 사용간판이 지역에서 범람하고 있는 것 같다”고 자신의 의견을 밝혔다.
◆취재 어떻게 했나=본지 취재팀은 561돌을 맞은 한글날. 지역의 순수 우리말 사용 실태를 조사키 위해 3일간 동성로 지역 상가 간판을 집중 취재했다.
정확한 수치를 도출해내기 위해 CAR(컴퓨터 활용 취재) 기법을 활용했다.
또 외국인을 만나 동성로 영어 간판과 우리말 간판에 대한 느낌을 취재키 위해 매일 2시간씩 동성로에서 외국인과 인터뷰를 시도했다.
이번 취재에는 4명의 본지 기자가 3일간 취재팀을 구성해 함께했다.
/장영훈·김윤호·배준수·문석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