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셀로나는 스페인의 전형을 거부하는 땅이다. 느긋함과 다소 게으른 듯한 낙천성, 비경제성의 요소를 말끔히 걷어낸 도시가 바로 바르셀로나이다. 경제기반을 갖춘 이 도시는 스페인을 먹여 살리는 구심점이 된다. 시민들 스스로 ‘스페인 속의 새로운 나라’라고 불리기를 원할 만큼 자부심 또한 강하다.
지중해를 끼고 일찍이 발달한 이 해안도시는 유럽으로 통하는 관문 역할을 했다. 따라서 경제와 더불어 문화와 예술이 크게 성장한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다. 라스 람블라스 거리와 시민들이 그 중심에 있고, 파블로 피카소와 후안 미로, 그리고 살바도르 달리 같은 예술가가 그 뒷심을 받혀준다.
그 중 가장 눈을 뗄 수 없게 만든 예술가가 가우디이다. 아무리 봐도 바르셀로나는 가우디를 위한 땅이었다. 맨 처음 구엘공원을 둘러본다. 건축가인 가우디의 후견인 역할을 했던 구엘의 이름을 딴 공원은 미로의 연속이었다. 가우디가 설계한, 길고 둥근 타일의자에 앉아 기념사진 한 장을 찍고, 인공 동굴 안에서 기타 치는 멋쟁이 걸인에게 동전 한 닢을 던지고 돌아섰을 뿐인데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몇 십 분간 헤매는 동안, 미로 속 실험 생쥐가 된 기분이다. 나중에야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내 식으로 표현하자면 가우디는 지독한 직선 혐오증 증후군을 앓는 사람이었다. 가우디 손길이 닿은 건조물은 하나같이 꾸불텅하고 환상적이고 모호했다. 확실한 것을 원하는 여행객이 길을 잃는 것은 당연하지 않겠는가. 반듯하거나 아귀가 딱딱 맞는 가시적인 질서정연함을 거부하는 그 독특함이 가우디만의 천재성이 되었다.
까사 밀라라는 고급 아파트를 둘러볼 때 가우디의 천재성은 한결 여행객 가까이 다가온다. 꾸불거리고 휘어진 외관은 물결치는 파도를 닮았다. 비효율적인 저런 공간에서 어떻게 밥을 먹고 잠을 잘 수 있을까. 가구의 대부분이 직선이나 각이 진 형태인데 어떻게 그것들을 배치할 수 있을까. 저택 실내를 돌아보고서야 이런 의문들은 사라진다. 둥글게 휜 부엌에도 주방기기가 놓일 수 있고, 자연 동굴처럼 아무렇게나 뚫린 철제 창문으로 바깥 공기도 자유로이 드나든다.
가우디 건축의 포스트모던함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사그라다 파밀리아(성가족 성당)의 위용을 보면 왜 바르셀로나가 가우디의 땅일 수밖에 없는지 확연히 드러난다. 이렇다 할 특징 없는 시내 한 가운데에 성가족성당은 서 있다. 일명 옥수수 성당이라 불리는 이 건축물은 가우디 말년의 심혈을 기울인 최대 작품 중 하나이다. 이 설계도를 완성하기도 전에 가우디는 전차 사고로 죽고 만다.
껍질 깐 옥수수 모양을 한 네 기둥이 하늘을 향해 치솟아 있다. 겉으로 보기에 멀쩡한 이 성당이 완공되려면 아직 2백년 정도를 기다려야 한단다. 가우디가 남긴 설계도를 꼼꼼하게 점검하기도 해야 하고, 부족한 경비를 관광객이나 시민들로부터 조달해야 하는 숙제도 남아있을 것이다. 하지만 성당 미완성의 가장 큰 이유는 조급해 하지 않는 그들 특유의 국민성 때문이 아닐까. 빨리빨리 문화를 대표하는 우리네 같으면 대대적인 성금 모으기를 해서라도 기어이 완공하고야 말았을 것을.
가우디 없는 바르셀로나를 가우디가 먹여 살리는 것처럼 보였다. 거리엔 가우디의 예술을 보기 위한 관광객이 붐비고, 상점마다 그를 위한 기념품이 넘쳐난다. 냉장고용 장식 붙이개에서 학용품, 심지어 건축물 축소 모형까지 가우디와 관계되는 모든 것이 눈앞에 어린다. 꾸불꾸불한 구엘 공원에서 길을 잃은 것처럼 약간의 현기증이 인다. 그것은 진정한 예술가 가우디를 질투하는 정도의 기분 좋은 현기증이었다.
<김살로메·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