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이번 채점 결과를 정밀 분석해 보면 전혀 문제가 없는 것도 아니다. 비교적 쉽게 출제됐다는 수리 가형(자연계)에서 2등급 비율이 10.08%로 기준치 7%를 크게 초과했다. 반면 3등급은 9.55%로 오히려 기준치 12%에 못 미쳤다. 이는 단 1∼2 문제 차이로 2등급으로 내려간 학생들이 대폭 늘어났음을 의미한다. 입시학원들은 수리 가형의 1등급 구분점수(커트라인)를 98점으로 추정하고 있다. 3점짜리 한 문제만 틀린 학생은 2등급으로 떨어진 것이다. 2등급을 받은 자연계열 수험생들의 진로 선택에 혼란이 불가피하다. 고3학년 교실에서는 “12년 동안 공부한 게 숫자 한 개로 표시되다니…”등의 탄식이 흘러나오고 있다고 한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난이도 조정에 더욱 신경 써야 할 대목이다.
이뿐만 아니다. 수능 각 영역의 총점이 아무리 높다 하더라도 등급 커트라인에 걸려 낮은 등급을 받게 되는 경우도 생긴다. 예를 들어 A학생이 언어·수리·외국어 영역에서 각각 100점, 100점, 90점을, B학생이 91점, 91점, 91점을 받았다면 총점으로는 A학생이 290점으로 B학생(273점)보다 17점이나 높지만 등급으로 환산하면 A학생은 1-1-2등급, B학생은 모두 1등급이 돼 결국 B학생이 더 유리해지는 기현상이 나타난다. 수험생들이 인터넷 댓글 등을 통해 구분점수를 밝히라고 요구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1∼2점 차이로 등수가 매겨지는 서열화 폐단을 막고 공교육을 정상화하기 위해 등급제로 바꿨는데도 학생들은 여전히 (구분) 점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현행 내신 및 수능 등급제 아래의 입시전형은 매우 복잡하다. 반영 과목과 반영비율 등 대학별 전형방법을 숙지하고 연구하지 않으면 지원서를 내기가 쉽지 않다. ‘로또식’이라거나 ‘미로 찾기’라는 말까지 나돌 정도다. 대학들은 수능 등급이 기준치에 근접하게 나타났어도 수능과 내신의 등급 간 점수 차를 줄이는 등의 방법으로 ‘수능·내신 무력화’를 꾀하고 있다. 상위권 대학의 경우 논술이 당락을 좌우할 것이라는 전망에 따라 고액 논술 학원과 과외가 성행하고 있다. 교육부가 수능 성적을 조기 발표하고 점수제에 집착하는 대학을 제재한다고 해서 이런 문제들이 해결되지는 않을 것이다. 진학 담당 교사들은 “등급제로 한 과목을 망치면 만회가 불가능한 상황이 벌어졌다. 학생들에게 너무 가혹한 것 같다”고 말했다. 등급 세분화 등으로 내신 및 수능 등급제의 맹점을 보완하는 노력과 함께 중장기적으로는 입시 자율화를 포함해 더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