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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바라는 삶

등록일 2022-01-11 19:40 게재일 2022-01-12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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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원했던 삶이라는 건…. /Pixabay

인생을 살면서 종종 길을 잃어버린 기분을 느낀다. 무언가 잘못을 저지르거나 특별한 사건이 벌어져서 그런 기분을 느끼는 건 아니다. 오히려, 아무 것도 잘못되지 않았고 특별한 일도 없을 때, 모든 것이 평소처럼 아무런 문제없이 돌아가고 있다고 느낄 때면 그런 기분을 느낀다. 전에는 이런 기분을 느낄 때면 친구들에게 그 기분을 토로하기도 했지만, ‘네가 살만해서 그렇다’는 말을 들은 이후론 그런 이야기도 잘 하지 않게 되었다.

그건 한편으로 맞는 이야기다. 먹고 사는 것만으로도 정신없을 때는 그런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 법이니까. ‘내가 원하는 삶이 이런 것이었나?’하는 기분은 들지라도, 완전히 길을 잃고 떠밀려가고 있다는 생각은 좀처럼 하지 않았다. 일을 하는 것만으로도 하루가 정신없이 흘러가버리곤 하니까. 오히려 그럴 때면 내가 원하는 삶의 모습이 더욱 확고하게 떠오르기도 했다. 일에 치이며 정신없이 흘러가는 지금과는 다른 삶의 모습 말이다.

그때 내가 원했던 건 아주 단순하고 명료했다. 글을 써서 먹고 사는 삶, 그게 전부였다. 그렇게 글을 써서 돈을 벌고, 그 돈으로 공부를 하고 삶을 이어가며 계속해서 글을 쓰는 것. 그게 내가 원하는 전부였다. 글을 써서 먹고 산다는 게 한편으로 허무맹랑하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공부를 계속하고 글을 계속해서 써나가다 보면 어느 순간 그걸 이루게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종종 힘겨웠던 순간들을 버틸 수 있었던 건, 아마 그런 목표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생각해보면 그때 내가 원했던 삶이라는 걸, 지금의 나는 반쯤은 이룬 것 같다. 적은 돈이지만 글을 쓰며 돈을 벌 수 있게 되었고, 공부도 계속할 수 있게 되었다. 비록 완전하게 글을 쓰는 일만으로 먹고 살 수 있게 된 건 아니지만, 다른 일을 하는 비중은 점점 줄고 있으니까. 좀 더 지출을 줄이고, 삶을 소박하게 꾸려간다면 지금도 글을 쓰는 것만으로도 먹고 살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나는 지향했던 삶의 목표에 어느 정도는 다다른 것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요즘엔 그런 생각이 든다. 내가 원했던 삶이라는 건 참 단조롭고 볼품없는 삶이었구나 하는 생각. 종일 집에 머물면서 타인과 마주칠 일 없이 혼자 글을 읽고 쓴다는 건 굉장히 매력적인 일이기는 하지만, 생각만큼 행복하지는 않다. 그런 순간이 기쁘고 행복하게 그려질 수 있었던 건 ‘글을 써서 먹고 사는 삶’이라는 사이에 숨겨진 괄호가 있었기 때문은 아닐까.

우리는 종종 꿈과 삶의 외관을 착각하곤 한다. 과학자가 되고 싶다는 꿈과 과학자처럼 살고 싶다는 것을 착각하는 것처럼, 혹은 연예인이 되고 싶다는 꿈과 연예인처럼 살고 싶다는 것을 착각하는 것처럼, 나 또한 작가가 되고 싶다는 꿈과 작가처럼 살고 싶다는 삶의 외관을 착각했던 것은 아닐까 싶다. 어린 내가 바랐던 것은 좋은 글을 쓰려 분투하고 스스로를 몰아세우는 작가의 삶이 아니라, 조금의 여유를 갖고 우아하게 책을 읽고 카페에서 노트북으로 글을 쓰는 그런 삶이었던 것 아닐까. ‘글을 써서 먹고 사는 삶’이라는 선망 사이에 숨겨진 괄호는 바로 그 여유와 우아함이었을 것이다.

임지훈 2020년 문화일보,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부문에 당선된 문학평론가. 한양대 국문과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임지훈 2020년 문화일보,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부문에 당선된 문학평론가. 한양대 국문과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어쩌면 내가 그때 꾸었던 것은 꿈이 아니라 타인의 삶의 외관에 대한 동경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건 글 쓰는 일에서 나오는 매혹이 아니라, 내가 가정한 여유로움과 우아함에서 나오는 착각이었던 셈이다. 실제로 글을 써서 먹고 산다는 건 지난하고 무기력하며, 패배감 넘치는 사투의 과정이라는 걸 알게 되었을 때, 그제서야 나는 내가 꾸었던 것이 꿈이 아니라 막연한 동경이나 선망에 지나지 않았던 것임을 알게 된 것이다. 그러니 내가 원했던 삶이라는 건 다음과 같이 수정되는 것이 마땅하리라. ‘글을 써서 먹고 사는 삶’이 아니라 ‘글을 쓰면서 (여유롭고 우아하게) 먹고 사는 삶’으로. 내가 길을 잃은 것 같다는 기분을 느끼는 건, 그 괄호를 인식하지 못해 생긴 방향감각의 상실이었던 것 같다.

이제 나의 삶의 목표를 설정해야 할 시간이 왔다는 생각이 든다. 길을 잃은 것 같은 기분은, 그런 생각을 해야 할 시간이라는 알림 같은 것이었으리라.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무엇을 위해 살아갈 것인지. 여유롭고 우아한 삶을 살고 싶은 것인가, 아니면 그것들을 포기하면서까지 쓰고 싶은 글이 있는 것인지. 내가 정말로 하고 싶은 말이 있기는 한 것인지. 그 질문들 사이에서 삶의 목표를 재설정해야 할 시간이다. 나의 삶을 아주 단순하고 소박하게 만들어줄 하나의 문장을, 여유롭고 우아한 삶의 외관이 아니라 정말 목숨을 걸고 싶어질 만큼 매력적인 질문을 찾아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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