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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상에 굵은 고기 쓰는 건 자손 크게 되게 해달란 뜻이지”

등록일 2021-05-24 20:18 게재일 2021-05-25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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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의 해양문화<br/>바다 음식 - ③ 돔배기, 두치
돔배기는 상어를 토막낸 뒤 소금에 절여 만든 제수 음식이다.

오늘 영일만은 망망하고 흐리다. 바다는 많은 사람들에게 여전히 공포의 대상이다. 그런데 어째서 바다를 보면 안도감이 들까? 바다가 무서워 배 타는 것도 겁내면서 정작 바다를 바라보는 것은 좋아한다. 바다를 통해 위안을 얻는다. 어째서 그럴까? 우리는 모두 바다에서 왔기 때문이다. 우리들 모두가 어미에게서 왔듯이. 우리 육상 생명들의 기원은 바다다. 그래서 우리의 기원을 알려주는 비밀이 어떤 언어권의 문자에는 뚜렷이 남아 있다. 한자어 바다(海)에는 어미(母)가 들어 있고, 프랑스어 ‘어머니(m<00E8>re)’에는 ‘바다(mer)’가 깃들어 있다. 우연일 리가 없다. 필연이다. 바다는 어머니고 어머니는 곧 바다다. 바다처럼 모든 것을 다 받아주는 어머니. 어머니처럼 모든 것을 다 받아주는 바다.

 

‘돔박돔박’ 썰어 이름 붙여졌다는 ‘돔배기’

명절·제사상에 빠지지 않는 음식 중 하나

토막 낸 상어고기 염장해 굽거나 쪄 먹어

기름기 없어 비린내 없고 담백한 맛 일품

 

상어 지느러미·껍질 등으로 만든 ‘두치’

편육과 비슷한 형태로 쫄깃한 식감 자랑

애주가 사랑 한몸에 받는 별미 음식으로

샥스핀 대체할 만한 보물이라 할 수 있어

꼬치에 꿰어 구워낸 돔배기 산적.
꼬치에 꿰어 구워낸 돔배기 산적.

포항에서는 대물 어류들이 자주 밥상에 올라와

우리는 어느 때부터인가 바다에 대한 막연한 공포에 사로잡혀 있지만 실상 바다는 우리에게 너무도 많은 것을 주는 어머니다. 우리에게 끊임없이 먹이를 주는 자애로운 어머니. 우리가 오만하지만 않으면 바다는 우리를 징벌하지 않는다. 오늘도 죽도시장에는 온갖 해산물들이 넘쳐난다. 이토록 풍요로운 먹거리들은 어디서 왔을까? 바다에서 왔다. 어머니 바다의 선물이다. 고래부터 멸치까지 바다에서 나는 수산물 중 죽도시장에 없는 것은 대한민국 어느 시장에도 없다. 경북 지방의 제수음식 중 가장 특별한 생선 요리인 돔배기도 영천과 함께 죽도시장이 본향이다. 돔배기는 경상도 전체의 보편적 음식은 아니다. 대구, 포항, 영천, 경주 등의 경북도 동남부 지방과 안동 등 북부 지방 일부, 부산, 울산 지역에서 주로 먹는다.

실상 도시 사람들에게 상어 요리는 결코 흔한 음식이 아니다. 상어라면 먼저 식인 상어를 떠올리는 사람들에게 상어 요리는 상상이 쉽지 않은 음식이다. 우리 나라에서는 경북 지방의 상어 요리인 돔배기가 유명하지만 실상 전라도 해안이나 섬 지방에서도 상어를 즐겨 먹는다. 남해안 섬에 살았던 나는 상어 요리를 자주 먹고 자랐다. 죽상어(까치상어)는 회나 무침으로 많이 먹었고 말려서 포로도 먹었다. ‘부전’이라 부르던 상어 알은 쪄서 간식으로 즐겼다. 전대미(개상어)라는 아주 작은 상어는 회무침으로도 먹었지만 내장을 탕으로 끓이면 별미 중의 별미였다. 어른 몸보다 큰 대형 상어도 잔치 음식으로 즐겨 사용했다.

동해라는 큰 바다에 인접한 포항 지역에는 유난히 대물 어류들이 자주 밥상에 오른다. 고래부터 상어, 개복치도 모두 대물이다. 게다가 서남해와는 달리 문어 또한 대왕문어를 참문어로 쳐줄 정도로 대물이 대접받는다. 상어를 먹는 문화가 보편화된 것도 동해라는 큰 바다가 있기 때문이다. 옛날부터 포항 지역 어민들은 동해 먼바다로 나가 가오리를 미끼로 상어를 잡았다. 8월 전후에 상어가 가장 많이 잡혔다.

상어 부산물로 만든 두치는 돼지고기 편육처럼 눌러 만든다.
상어 부산물로 만든 두치는 돼지고기 편육처럼 눌러 만든다.

돔배기, 토막 내서 염장한 상어의 살코기

포항 지방에서 돔배기는 명절이나 제사 모실 때 빠지지 않는 제수 음식이다. “제상에 굵은 고기 쓰는 건 자손들 크게 되게 해달라는 뜻이지. 소고기 올리듯이. 돔배기도 올리는 거요.” 죽도시장에서 만난 돔배기 상인 김차봉 할머니 말씀이다. 할머니는 한자리에 앉아 40년 동안 돔배기를 손질해 팔아왔다.

돔배기는 토막 내서 염장한 상어의 살코기다. 주로 꼬치에 꿰어 굽거나 쪄서 조리해 먹는다. 기름기가 거의 없어서 맛이 담백하고 비린내도 없다. 하지만 더 맛있게 먹는 법이 있다. 소 갈빗살에 양념하듯이 양념을 만들어 돔배기에 바른 뒤 굽거나 찐다. 명절이나 제사 때 돔배기 산적을 만들어 쓰고 남은 것은 소금 간을 더 강하게 해서 절였다가 두고두고 반찬으로 먹기도 한다. 염장된 상어는 물에 담가 소금기를 뺀 뒤 쪄서 반찬으로 먹는다. 해안가 마을에서는 잔치집에서도 상어 고기를 썼다. 비싼 소는 잡을 수 없으니 큰 고기인 상어를 썼던 것이다.

돔배기용 상어는 워낙 큰 물고기라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통 마리로 살 일이 없었다. 그래서 판매점에서도 작게 토막 내서 팔았다. 돔박돔박 네모나게 토막을 내서 파는 물고기라 해서 돔배기란 이름이 붙여진 것이다. 상어의 살은 돔배기뿐만 아니라 탕의 재료로도 쓰인다. 상어 중에서도 귀상어와 청상아리, 참상어, 악상어(준달이)만이 돔배기로 만들어진다. 청상아리는 고기가 부드럽고, 참상어는 감칠맛이 난다. 귀상어의 살은 검붉고 어두운 색이지만 청상아리는 살색이 밝고 붉은빛이다. 귀상어가 그중 가장 귀하게 대접받아 값도 비싸다. 청상아리는 모노상어, 귀상어는 양제기(양지)라고도 부른다. 청상아리는 돌고래만큼이나 커서 살이 많으니 돔배기의 재료로 적당하다.

토막 째 진열돼 있는 돔배기.
토막 째 진열돼 있는 돔배기.

돔배기는 숙성 정도에 따라 맛이 다르다. 계절에 따라 절이는 소금의 양도 다르고 숙성 기간도 다르다. 담백하고 밋밋한 돔배기의 맛을 좌우하는 것은 소금 간과 시간이 만들어내는 숙성의 맛이다. 옛날에는 상어를 토막 내고 간을 한 후 2~3개월 정도 숙성된 것을 돔배기라 했다. 굴비와 비슷한 정도의 기간을 숙성시킨 것이다. 하지만 요즈음은 상어를 냉동으로 쓰는 까닭에 미리 염장하지 않고 손님이 구매를 하면 그때 염장해 준다. 그래서 숙성 기간이 짧다. 겨울에는 3~4일, 여름에는 1~2일 정도 실온에서 숙성시킨 다음 물에 깨끗이 씻어서 하루쯤 말린다. 그렇게 꼬들꼬들해진 돔배기를 요리해 상에 올린다.

본래의 돔배기 맛과는 조금 다르게 변화한 셈이다. 음식 문화는 조건에 따라 변화하는 것이니 가공 방법이 조금 달라졌다 해서 변질됐다고 할 수는 없다. 명절이나 제사, 잔치 뒤끝에 남은 돔배기는 껍질과 함께 잘게 썰어서 야채, 소고기 등을 첨가해 탕을 끓여 먹기도 한다. 돔배기에는 콜라겐과 펩타이드 성분이 많아 성인병에 좋다고 한다. 단백질이 많고 지방이 적은 건강식품이기도 하다. 한의학에서는 상어를 ‘교어(鮫魚)’라 하는데 오장을 보하는 효능이 있으며, 특히 간과 폐, 피부 질환이나 눈병에 효과가 있다고 한다.

북한 지역에서도 상어 지느러미 완자찜이나 철갑상어찜 같은 상어를 이용한 다양한 요리가 발달했다. 제주도 사람들도 무채를 썰어 넣고 별상어(개상어, 두툽상어)회, 무침을 즐긴다. 상어의 껍질을 벗겨 머리와 뼈를 발라낸 다음 소금을 약간 뿌려 꾸덕꾸덕하게 말렸다가 굽는 상어 산적(상어 적갈)도 제주 향토 음식이다. 경북 경산에서는 상어 초무침 요리도 즐긴다.

지질학 기록에 따르면 상어는 데본기(3억 6000만~4억 800만 년)에 탄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세계적으로 상어는 200~250여 종이 서식하고 있다. 청새리상어(Prionace)나 백상어, 레몬상어 같은 이름은 상어의 색에서 유래된 것이다. 상어는 더러 동족도 잡아먹는다. 상처를 입어 피가 나는 상어가 있을 때는 상어 떼가 공격하여 잡아먹는 무자비한 어류다. 사람 또한 바다에서는 그저 상어의 먹잇감에 불과하다.

죽도시장 내 돔배기 가게 모습.
죽도시장 내 돔배기 가게 모습.

두치, 식용 상어의 부산물로 만들어

돔배기가 주로 의례용 상어 요리라면 또 다른 상어 요리인 두치는 주당들이 사랑하는 안줏감이다. 두치는 돔배기를 만들고 난 부산물로 만드는데 이것이야말로 진짜다. 두치는 상어 지느러미와 껍질, 연골, 머리 등에 고명을 넣고 돼지고기 편육처럼 눌러서 만든다. 전남 목포 등지에서는 홍어 부산물을 편육처럼 눌러서 만들기도 하는데 두치와 형태가 비슷하다. 서해안에서 박대 껍질로 만드는 벌버리묵도 같은 계통의 음식이라 할 수 있다. 포항에서는 두치, 영천에서는 두투머리라 한다. 두치는 식감이 최고다. 쫄깃한 식감에 약간의 삭힌 맛이 더해서 아주 특별한 맛이 된다. 더러 끓여서 묵으로 만들기도 한다.

중국에서는 상어 지느러미만 주로 먹는다. 중국에서는 그 귀하다는 샥스핀과 비슷한 요리가 죽도시장에서는 아주 저렴한 가격에 팔려 나간다. 일본에서는 일부 내륙 지방에서만 상어를 먹고 대부분은 어묵 재료로 쓰인다. 샥스핀(shark‘s fin)은 대형 상어의 꼬리와 등지느러미를 건조시킨 것인데, 중국어로는 위츠(魚翅)라 한다. 샥스핀으로 끓인 위츠탕(상어 지느러미탕)은 제비집 요리와 함께 최고의 중국 요리 중 하나로 꼽힌다. 명나라 때 탄생한 샥스핀 요리는 황실 요리가 발달했던 청나라 시대 이후 중국의 대표적인 고급 요리가 됐다. 황실이나 귀족들만 먹었던 샥스핀이 현대에 와서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면서 상어 포획량이 급격히 증가했다. 하지만 상어의 몸은 상품성이 없는 까닭에 상어 포획 과정에서 지느러미만 잘라내고 몸체는 버려서 죽게 만드는 잔인성이 문제가 돼 점차 금기 음식이 되고 있다.

상어의 살은 돔배기로 먹고 남은 부산물인 지느러미로 만들어 먹는 두치는 다르다. 식용 상어의 부산물로 만드는 것이니 탓할 일이 아니다. 멸종 위기 종이나 불법 포획이 아닌 식용 상어의 부산물로 만드는 까닭에 도덕적 비난을 받을 이유가 없는 향토 음식 문화다. 중국의 샥스핀을 대체할 만한 뛰어난 요리, 숨겨진 보물이 포항에 있다.

글·사진 / 강제윤 시인·(사)섬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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