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⑨ 過則勿憚改(과즉물탄개)

등록일 2016-04-29 02:01 게재일 2016-04-29 17면
스크랩버튼
웃어 넘기기에는 너무 무서운 일이다. 몇 년 전 주변에 있었던 실제 상황이다. 부모님의 강요에 한문학과에 진학한 아이가 있었다. 한문학도가 되길 바라는 그의 부모님은 적어도 대학 서문 정도는 외우기를 바랬다. 방학때 내려온 아이에게 그간 배운 한문 공부 글귀 속에 가장 의미있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침없이 꾸중 하듯 내놓은 단어가 `과즉물탄개(過則勿憚改)`였다. 듣는 순간 화들짝 놀랐다고 한다. “허물이 있으면 즉시 고치기를 꺼리지 말라”는 말이다. 공자는 위령공편에서도 “잘못을 저지르고도 고치지 않는 것이야말로 허물이라”고 했다. `과즉물탄개`는 도리를 어기고 나면 고치기를 꺼리지 말라는 매서운 회초리이다. 과(過)는 월(越)과 통하여 먼곳을 지나가다는 뜻과 도를 지나가다의 의미이며 탄(憚)은 心과 單을 꺼리어 싫어하는 마음이며 개(改)는 딱딱해진 것을 두드리고 고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다산은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에 “사람은 모름지기 사나운 새나 짐승처럼 전투적인 기상이 있고나서 그것을 부드럽게 안으로 다스려 법도에 알맞게 행동하면 유용한 인재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사람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허물을 고치면 대인(大人)이 될 수도 있다. 인생은 늙고 나날이 약해지기 마련이다. 무엇이든가에 쉽게 길들여진다는 것이 무섭다. 잘못에 젖어들어 시·공간에 길들어져 버리면 벗어날 수 없는 타성에 젖어든다. 잘못을 고치고자 하는데는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돌아 오기가 쉽지 않다. 손가락만큼의 구멍이 저수지의 물을 모두다 말린다. 60일간 감옥살이를 하고도 공자의 사위가 된 제자 공야장은 비록 전과자이지만 공자는 허물의 이유를 알았기에 그의 제자를 사위로 맞이한 것이다.

사회는 사람들의 잘못을 너무 쉽게 용서하고 안아주는 경향이 있다. 용서하고 안아주는 일이 나쁜 것이 아니지만 용서는 허물어진 내 양심을 손질하는 일이며 아름다운 선행이다. 문제는 받아들이는 깊은 반성없는 그들의 마음이 문제이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스스로 배웠다고 하는 큰 도둑들의 잘못된 도리는 어찌할 것인가 한심하기 그지없다.

사는 일이 이런 저런 이유로 녹록지 않다. 그렇지만 누구나 사는 일에 살얼음을 밟듯 조심하고 깊은 못가에 이르듯 조심하는 마음으로 행하면 허물을 조금씩 줄여갈 수 있을 것이다. 남의 허물을 입에 올리기전에 나의 허물이나 고쳐야 겠다.

솔뫼 정현식<서예가·솔뫼서예연구소장 >

스크랩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