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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치마

등록일 2013-05-20 00:10 게재일 2013-05-2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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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 광 규
어느 봄날 여수항 선창가

보잘 것 없는 내 인생에 술을 퍼 먹이던 주막집

남자를 바다에 잃고 술집으로 흘러왔다는 여자가

동백나무 아래서 붉은 치마를 벗던 말씀

-- 선상님, 동박꽃 지는 것 좀 보이다. 사랑은 뒤로 미루는 것이 아니랑께라

십 수년 전

여자는 치마를 뒤집어쓰고 파도 속으로 걸어갔다는데

해마다 이런 봄날

동백나무가 붉은 치마를 벗는다는데

짙붉게 타올랐다 뚝 뚝 떨어지는 동백꽃. 시인의 추억 속에 나오는 술청에서 만난 여자의 한 마디가 가슴을 치는 아침이다. 그런지 모른다. 사랑은 뒤로 미루는게 아닌지 모른다. 못 이룬 사랑의 상처와 앙금을 가슴에 품고 투신한 그 여인처럼 이 봄날 저리 짙붉은 울음 덩어리가 뚝뚝 떨어지고 있는 건 아닐까.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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