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한 번의 연애` 휴먼&북스 펴냄 성석제 지음, 300쪽<br>초등교 입학식 때 매혹당한 고래잡이 딸을 사랑하는데
우리 시대의 이야기꾼 성석제(53) 작가가 첫 번째 장편 연애소설 `단 한 번의 연애`(휴먼&북스)를 펴냈다.
초등학교 입학식에서 고래잡이의 딸에게 매혹 당한 소년이 중년의 남성이 되기까지, 시대의 폭력과 인생의 굴곡을 넘어 오직 한 여자만 사랑한 그 연애와 구원의 서사를 그린 소설이다.
사랑과 구원이라는 보편적 테마를 성석제 작가 특유의 유머와 통찰, 그리고 자기 세대의 경험담을 농축해 그려내 독자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흡인력 강한 소설이다.
동해안 어촌마을(포항 구룡포)에서 태어난 남자(이세길)는 초등학교 입학식에서 고래잡이의 딸(박민현)을 만나 그녀의 매력에 사로잡힌다.
그 시점부터 남자는 유년 시절, 중고등학교 학창 시절, 데모와 미팅으로 대변되는 대학 시절, 그리고 군대(전경) 시절을 거쳐 사회인으로서의 시절까지 이어지는, 한 여자만을 향한 아름답고도 운명적인 연애를 펼쳐간다.
황홀하고 달콤하면서도 치명적인 연애의 미학이, 깊은 좌절감과 극한의 희열 사이를 오가며 반복되는 연애의 본질이, 작가 세대의 경험담과 시대상에서 비롯된 에피소드들을 통해 한편으로는 유쾌하고 유머러스하게, 한편으로는 가슴이 아릴 정도의 묵직한 감동으로 그려진다.
그와 동시에 베이비부머 세대의 주인공들이 시대와 일상의 폭력을 넘어 사랑을 통한 구원을 이루어 나가는 과정 역시 흥미진진하다.
고래잡이배의 포수인 아버지와 나나(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의 식모) 출신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의 폭력에 노출되어 있던 민현을 알고 난 후 지속된 세길의 연애 여정에는 삶이 지닌 본연의 폭력성과 한국 현대사 50여 년의 격렬한 물결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 험난한 질곡의 순간순간마다 평범하기 짝이 없는 `그`의 사랑은 비범하지만 위안의 장소가 없는 그녀에게 구원의 도피처가 되어 준다.
소설은 민현을 향한 세길의 연애 연대기를 보여주면서 동시에 모든 현대적 폭력들에 맞서 인간과 자연의 존엄을 지키며 살아가는 현재의 그들이 나누는 대화를 교차 병렬하는 형태로 구성되어 있다. 성석제 작가 특유의 필담으로 리드미컬하게 현재와 과거, 그리고 시대상을 오가며 이야기의 재미를 배가하고 주제를 선명하게 부각한다.
`단 한 번의 연애`는 평생 단 한 여자만을 사랑했던 한 남자의 간절한 연애 이야기를 통해 세상의 폭력을 극복해내는 사랑의 가치를 다시금 웅변하는 작품이며, 동시에 현시대 인류가 극복해 나가야 할 폭력은 무엇이며 추구해야 할 삶의 가치는 무엇이지를 되묻는 진정성 가득한 소설이다.
소설의 시대라 불리며 세계적인 대문호들을 배출한 19세기의 문학. 이 시대의 소설이 다룬 주제를 가장 극명하게 두러낸 작품들로 허먼 멜빌의 `백경`과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을 꼽을 수 있다. 19세기 세계문학 중에서도 단연 백미로 꼽히는 작품들이다. 전자는 자연을 정복하려는 인간의 위대한 정신과 집념을, 후자는 죄와 구원의 주제를 다룬 작품이다.
성석제의 `단 한 번의 연애`는 이들 고전소설의 소재와 주제의 자장 안에 있으면서도 시대적 역전 현상을 생생하게 반영한 작품이다. 허먼 멜빌이 `백경`을 통해 광포하고 거대한 자연에 대한 인간의 정복과 위대한 정신을 다루었다면, `단 한 번의 연애`는 역으로 인간의 탐욕이 고래와 같은 자연과 생명, 그리고 인류 절대 다수의 삶에 가하는 폭력을 경고하는 형태로 주제의 역전을 이룬다.
또 `죄와 벌`이 라스콜리니코프의 윤리를 구원하는 소냐의 여성적 치유를 그려냈다면, `단 한 번의 연애`는 민현을 향한 세길의 남성적 헌신과 평범함으로 위대함의 빈틈을 아우르는 포용력을 보여줌으로써 사랑과 구원이라는 테마의 변주를 이루어낸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