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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산(小山) 박대성(朴大成)의 묵향 50년

권오신 기자
등록일 2009-06-16 19:47 게재일 2009-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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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신 객원 논설위원

지금 경주를 국내외에 가장 잘 알리는 사람은 지난 4월24일부터 오는 30일까지 ‘경주 세계문화엑스포 문화센터 개관 초대전’을 여는 소산 박대성 화백이다.

경주 배리 서남산 화실에서 만난 소산 박대성의 붓 길 속에는 지나온 삶이 넉넉히 녹아 있다. 무엇보다 화선지에 핀 묵향에는 누구에게나 가슴 저릴 그리움이 피어나게 해서 예술과 인간의 만남을 환희로 이끈다.

그의 그림은 처음과 끝이 모두 한국화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한국을 잘 나타낸다고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빨리빨리가 우리 삶의 한 양식으로 자리 잡다 보니 장년이 되어서 초년에 본 것을 보려면 박물관에나 가야 하나 박대성 화백만은 발 묵에서 피어나는 동양적 조형미를 평생 놓지 않고 있다.

그 붓끝은 중화의 문명세계를 넘는 공간에 닿아야 마무리 지어질 것 같다. 소산 박대성은 한국전쟁으로 어지러웠던 시기(3살) 팔을 잃고 초등학교에 들어갈 무렵부터 팔 하나로 살아갈 길을 찾았던 것으로 보인다.

금천(錦川)중학교가 그의 최종학력이다. 정신에 습기가 끼기 시작한 소년 시절부터 방안에서 지내면서 무엇인가를 그리는 것에 평생을 걸었다. 그는 자신의 이런 출발점을 두고 운명이라 했다.

지금도 청도 금천에서 먹줄이 옆 허리에 길게 들어간 버들피리나 송어 붕어 모래무지잡이를 했던 시절을 떠올리면서 화선지에 그릴 색을 찾아간다고 한다. 집에서 학교까지는 9km다.

보릿고개가 극심했었던 시절이어서 보리밥 한 덩이로 배를 채우고 학교로 오가는 길은 늘 허기지다. 허기진 배를 자연에서 채우기도 한다. 봄여름은 지천으로 피어나는 야생화를 보고 가을에는 결실로 가는 자연현상에 빠져들면서 색감을 익혔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 물과 빛은 자연계와 인간생활을 지탱하는 두 기둥이니 이것을 알면 옛 어른들은 시견(示見)이 났다 철이 들었다고 하셨다.

그런 색감이 가장 영감적으로 떠오르는 곳이 경주여서 70년대 중반부터 경주를 소재로 한 그림을 그리기 시작, 경주에 아예 정착해 버렸다고 한다.

청태 낀 경주의 고옥(古屋)과 불국(佛國)으로 만든 돌 색깔에 빨려들기 시작했던 1973년 29살 나든 해 1년간 대만 고궁박물관에서 수학했던 시기가 자신의 그림세계를 열 근간이 되었다고 회고했다.

80년대 초에는 북인도에서 티베트 히말라야를 넘고 타클라마칸 사막을 종단하는 등 동서 문화를 체험하는 긴 여행길을 통해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했었지만 형식에서 벗어나 초월하는 길을 찾았다고 한다.

소산이 경주를 보는 시각은 지난 천 년에 있는 것 같다. 그러면서도 도시가 살아 움직이는 것은 지난 천 년도 더 없이 중요하지만 미래 천 년을 볼 수 있는 즉 현재를 움직이는 곳이 얼마나 있는 데서 생명력은 판가름난다고 자주 말한다.

그런 직관력은 과거와 미래를 이분법적으로 구분하기보다는 미래를 열어가는 핵심이론으로 통찰하는 것 같다. 그러니 펜으로 그은 것 같은 필선이 나오는가 하면 담장 같은 공간을 채울 예술세계(불국사)가 펼쳤다.

수묵담채로 그려진 분청사기를 보면 어머니의 정감 같은 것이 작품에서 느껴져 끌어안고 손으로 만지고 싶은 충동을 이내 받는다. 기교가 들어간 일본과 중국 작품들은 이내 싫증이 나는 것과는 정 반대다. 이것이 예술의 생명이고 박대성의 미술 세계가 위대하다는 증거다.

이런 극치의 예술작품 앞에 서게 되면 그림에서 내뿜는 기운으로 인해 작은 떨림 현상을 가슴으로 느끼게 된다. 이런 현상들은 유명 예술작품을 감상할 때 느끼는 극적인 정서변화를 두고 말한다.

그가 소장하고 있는 원대의 서예가 조명부가 썼던 벼루 등 문방사우는 중국 예술가들도 깜짝 놀랄 만큼 수준 높은 문화재다. 문방사우는 그가 갖는 작품세계 즉 마지막 사유에서 안목이 갖추어진다고 하니 더없이 볼만하다.

경주 황성공원에 건립하려던 박대성 미술관은 그런 의미에서 가속도를 높이는 것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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