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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 쓰며 곱씹는 글맛 필사의 매력 속으로

허명화 시민기자
등록일 2025-02-18 19:10 게재일 2025-02-19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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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양덕의 책방 수북에서 필사 시리즈인 ‘마음산책 문장들 시리즈’ 코너를 마련하고 있다.

요즘 필사(筆寫) 열기가 뜨겁다. 필사를 하는 사람들도 부쩍 늘었다. 책 속의 인상 깊은 문장을 정성스레 옮겨 적는 데서 사람들의 마음을 채우고 있는 게 그 이유다. 단순히 책을 읽는 것을 넘어서 손으로 따라 쓰며 곱씹는 재미에 독서하는 깊은 맛도 더해진다. 그 인기에 서점가는 필사 관련 노트 책을 따로 두는 공간을 마련할 정도다. 온라인 서점에서도 관련 책이 10위 안에 드는 건 당연하다. 온라인에서의 SNS 인증샷을 시작으로 이제는 오프라인에서도 필사를 즐기는 사람들의 관련 모임이 여럿이다. 필사 노트 한 권쯤 가지고 있는 건 자연스런 모습이다. 때아닌 필사 열풍이다.

필사책은 시집이나 소설, 에세이 등 기존의 정형화된 것에서부터 셰익스피어, 니체, 소펜하우어의 문장, 한강 작가의 필사 노트와 비상계엄으로 인한 2030 세대의 헌법 필사가 그 분위기를 뜨겁게 데웠다. 헌법 필사책은 지난달 1,036% 증가했고 품귀현상까지 있을 정도다. 최근에는 필사 열풍을 따라 드라마 대본, 가수의 노랫말까지 다양한 필사책이 출판되고 있다.

평소에 아침마다 좋아하는 시를 필사한다는 직장인 A(34)씨는 “시를 필사하다가 얼마 전부터는 내가 좋아하는 가수의 노랫말도 필사하고 있다. 손으로 직접 따라 쓰면 기분이 좋아지고 가사의 의미도 새롭게 음미할 수 있어서 좋다”고 말했다.

또 필사는 문해력에도 도움을 준다. 최근 숏폼에 익숙해진 MZ세대는 긴 글을 읽거나 낯선 어휘를 마주하면 어려움에 부딪히고 있다. 이들은 어휘력과 문해력에 관한 책에 관심도가 높은데 그만큼 언어 능력에 한계를 느끼는 자신들의 고민을 보여주고 있다. 뤼튼이나 챗GPT, 얼마 전에 우리들을 놀라게 한 딥시크 등 AI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질수록 개인의 글쓰기 감각은 점점 더 무뎌진다. 이런 상황에서도 MZ세대가 주목한 게 바로 필사다. 키보드 대신에 손으로 써 내려가는 과정은 단순한 글쓰기가 아니라 기억과 인지력 상승은 물론 진정한 의미의 문해력 향상으로 이어진다.

초등고학년 자녀를 둔 40대 학부모 B씨도 “아이들과 최근에 자신이 좋아하는 책으로 필사를 하고 있다.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아이들과 좋아하는 책을 가지고 필사하니 즐거운 시간이다. 아이들 글씨 연습하기도 좋다. AI 시대 문해력과 독서가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는데 아이들과 어른들 모두에게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필사는 아날로그적 행위다. 현대인의 바쁜 일상 속에서 마음을 차분히 정돈하고 몰입감을 주는 활동이다. 디지털 시대에 손으로 옮겨 적으며 천천히 느끼는 글맛은 느리다. 그 느림이 정신적 위안을 만들어 준다. 그래서 필사는 자기 계발과 동시에 힐링을 주어 사람들에게 매력적인 활동으로 확실히 자리매김하고 있다.

서로 필사를 공유함으로써 교류의 즐거움도 느낀다. 필사 모임으로도 이어지며 독서와 글쓰기에 대한 생각을 나눈다. 필사는 혼자만의 활동이 아닌 사람들과의 교류를 통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문화현상이 되고 있다. 유명 작가의 작품을 깊이 음미하고 감동적인 문장을 자신의 손 글씨로 다시 느끼는 과정에서 창작에 대한 열망도 생긴다. 필사가 단순히 따라 쓰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자신만의 또 다른 창작으로 이어지는 과정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특별한 매력이 있다. 올해도 손으로 따라 쓰는 필사의 열풍은 쭉 이어질 것 같다.

/허명화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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