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강에 나가 보는 심사를동행의 어깨 위에 가만 손으로 얹어보면하류까지 소리 없이공평히 어둠 실은 강이다밤 강물 곁에서 나는어둠이며 어둠 위의 살림들인 가로의 불이며 하늘의 빛들이고 내려가는밤 강물 곁에서늦게 본 맏이처럼 유순한강물의 숨은 낯빛을바로 보진 못하고딴청으로만 걷고 있었다밤 강가에 나가 강물 소리를 들으며 살아온 세월의 두께를 들춰보고 있다. 누구의 슬픔이든 기쁨이든 공평히 싣고 흐르는 강. 어둠이며 어둠 위의 불이며 빛들까지 모두 쓸어안고 흘러가는 강을 바로 보지 못하고 딴청을 부리는 시인의 마음이 너무 순수하고 착하다라는 생각을 해본다.시인
2011-11-04
제 몸을 부수며종(鍾)이운다울음은 살아 있음의 명백한 증거,마침내 깨어지면 울음도 그치리지금존재의 희열을 숨차게 뿜으며하늘과 땅을 느릿느릿 울려 터지는종소리,종소리,그것은 핏빛 자해(自害)의 울음소리.자기 몸을 쳐서 소리를 만들어내는 종(鍾)을 바라보면서 시인은 엄격하게 자기를 들여다보고 반성하고 있다. 자기를 부수어서 내는 저 종소리는 아픔의 소리만은 아니다. 존재의 희열이 배인 소리요, 어쩌면 침묵의 몸짓인지도 모른다. 우리 주변에도 자기를 쳐서 아름다운 소리를 혹은 아프디 아픈 소리를 자아내는 사람들이 있다. 그 소리에 귀 기울여 보아야할 것이다.시인
2011-11-01
그해 가을 한계산성 깊이 들어갔다가나무 이파리 덮고 누운 토끼의 주검을 보았다희고 가늘게 육탈된 뼈를그의 마른 가죽이 죽어라고 껴안고 있었는데그 검고 겁 많던 눈이 있던 자리에어린 상수리나무가 집을 짓고 있었다나무뿌리가 조금씩조금씩 몸속으로 들어올 때그는 얼마나 간지러웠을까내가 아무런 대책도 없이생의 깊은 곳까지 들어갔다가누군가에게 나를 내줘야 할 때가 온다면나도 웃음을 참으며나무에게 나를 내주고 싶다벌레들에게 몸을 맡기고 싶다자연친화적인 생명주의적 사유에서 이 시는 출발한다. 삶과 죽음의 이분법을 초월한 시안이 깊고 그윽하다. 죽음이 삶이고 삶이 곧 죽음이라는 종교적 성찰을 바탕으로 한 이 시에서 시인은 우리 인간도 결국은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라는 인식을 보여주고 있다.시인
2011-07-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