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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구름의 언어

구름을 보면서 수증기가 뭉친 현상이라고 생각하는 이가 몇이나 될까. 만약 있다면, 모든 것을 과학의 눈으로 바라보는 사람이거나 감수성이 사막처럼 마른 사람일 것이다.구름은 지상에서 가장 높은 곳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지위가 아무리 높은 사람도 구름을 보려면 하늘을 우러러보아야 한다. 높은 곳에서 우리네 마음을 쥐락펴락하는 존재가 구름이다.언덕에 누워 구름을 가만히 보면 나도 구름이 된다. 뭉게구름을 바라보면 마음속에도 무언가가 뭉게뭉게 일어난다. 양떼구름을 보면 초원에서 노니는 양 떼를 보는 양 마음의 지평에도 평화가 깃든다. 파란 도화지 위에 잔잔히 깔린 솜털 같은 구름을 보면 마음이 보송해진다. 산봉우리를 넘어가는 구름을 보면 나도 산 너머로 떠나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비구름 - 하늘을 가득 채운 짙은 회색빛 먹구름탑구름 - 구름 상부에 성벽 위의 작은 탑이나 총구멍 모양이 있는 구름새털구름 - 푸르고 높은 하늘에 나타나는 새털 같은 구름조개구름 - 높은 하늘에 펼쳐지는 희고 작은 비늘 같은 구름차일구름 - 흐린 날씨 구름, 회색의 장막 같은 구름양떼구름 - 다수의 구름 덩어리들이 모여 만들어진 구름(높쌘구름)안개구름 - 수증기가 지표 근처 또는 낮은 높이에서 응결하여 형성된 구름뭉게구름 - 수증기가 상승기류를 타고 위로 솟구치면서 만들어진 구름쌘비구름 - 많은 양의 수증기가 강한 상승기류로 탑 모양으로 솟구치면서 만들어진 구름연직구름 - 밑면은 낮은 고도에 있지만 매우 높게 솟아 있는 구름밑턱구름 - 물방울과 얼음 알갱이가 간간이 섞여 있는 구름아치구름 - 낮은 고도에서 수평으로 형성되는 기다란 형상의 구름모루구름 - 적란운의 윗부분에 나타나는 모루 또는 나팔꽃 모양의 구름유방적운 - 모양이 포유류의 유방을 닮은 구름꼬리구름 - 내리는 비가 땅에 닿기 전에 증발하여, 마치 꼬리를 끄는 것처럼 보이는 구름모자구름 - 산 꼭대기를 덮거나 둘러싸는 모양의 구름삿갓구름 - 외딴 산봉우리의 꼭대기 부근에 두른 갓 모양의 구름진주구름 - 20~30km 높이에서 나타나는 진주색 구름렌즈구름 - 볼록렌즈를 하나 또는 여러 개 합친 듯한 모양의 구름버섯구름 - 원자폭탄 등이 폭발할 때 버섯 모양으로 발생하는 거대한 구름털보구름 - 구름 윗부분에 털 또는 섬유질의 조직이 나타나는 구름(복슬구름)깔때기구름 - 토네이도가 발생할 때 형성되는 회오리 모양의 구름햇무리구름 - 희거나 옅은 회색의 빛으로 얇게 덮이는 베일 같은 구름대머리구름 - 구름 상부가 매끄럽고 평탄한 모양의 구름두루마리구름 - 회색 구름이 담요처럼 둘둘 말리면서 헝클어진 구름(층쌘구름)거친물결구름 - 거친 물결이 치는 듯한 모양의 구름(악마의 구름)구름은 높은 지위를 상징한다. 출세하려는 꿈을 꿀 때, ‘청운(靑雲)의 뜻을 품는다’라고 한다. 용이 바람과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오르듯, 좋은 기운을 타고 천하에 두각을 나타내는 사람을 ‘풍운아(風雲兒)’라고 한다. 잡히지 않는 헛된 꿈을 꿀 때 ‘뜬구름 잡는다’라고 한다.구름은 전조를 표현한다. 위험이나 파탄의 기미가 일어날 때 ‘암운(暗雲)이 드리우다’라고 말한다. 전쟁이 일어나려는 형세가 일어날 때 ‘전운(戰雲)이 감돈다’라고 말한다. 벼락이라도 때릴 것 같은 조마조마한 상황을 ‘뇌운(雷雲)’이라고 한다. 사람이 구름처럼 모여들면 ‘운집(雲集)’이라고 한다. 구름처럼 변화가 무쌍한 현상을 ‘풍운조화(風雲造化)’라고 일컫는다.구름은 은유이다. 잠자리를 나눈 남녀 사이는 ‘운우지정(雲雨之情)’이며, 남녀가 잠자리에서 누리는 쾌락은 ‘운우지락(雲雨之樂)’이다. 비에 흠뻑 젖은 듯 빠져드는, 바람결을 따라 구름을 탄 듯 몸이 두둥실 떠오르는, 꿈인 듯 생시인 듯 몽롱한, 구름결 같은 그 해방의 운치를 은근히 빗대기에 구름만한 것이 있으랴.세속을 벗어나 자연에 은거하면 ‘운서(雲棲)’라고 한다. 속세를 떠나 깊은 산에서 없는 듯 살면 ‘운와(雲臥)’라고 하며, 구름처럼 자유롭게 노닐면 ‘운유(雲遊)’라고 한다. 그래서 당나라 시인 맹호연은 맑고 깨끗한 마음을 “야객운위심 고승월위성(野客雲爲心 高僧月爲性)”이라고 읊었다. 길손은 구름을 마음으로 삼고, 고승은 달을 성품으로 삼는다는 뜻인데, 가벼우면서도 참으로 높은 말이다.우리네 정서에도 구름이 많이 나온다. 숱한 시인이 구름을 동경하고 숭배하고 노래했다. 만약 구름이 없다면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라는 표현이 없어진다. 모든 시詩에 구름이 빠지면 삶에서 구름이 사라진다. 삶의 하늘에 구름이 없다면 우리네 마음은 비 한 방울 내리지 않는 황량한 사막이 된다./수필가·문학평론가

2021-03-24

비가 올라나 눈이 올라나

“낮부터 내린 비는 이 저녁 유리창에 이슬만 뿌려 놓고서 밤이 되면 더욱 커지는 시계 소리처럼 내 마음을 흔들고 있네”햇빛촌이 부른 ‘유리창엔 비’ 노랫말이다. 창밖엔 비가 내리면 메마른 마음도 이런저런 상념에 촉촉이 젖는다. 그것은 그리움이기도 하다가 외로움이기도 하다가 근원을 알 수 없는 서러움이기도 하다. 그 눈물은 눈가에 이슬처럼 방울 맺히고 보슬비처럼 보슬보슬 젖고 장대비처럼 주르르 흘러내리기도 한다.·가랑비-가늘게 내리는 비. 이슬비보다 더 굵다.·개부심-장마로 홍수가 난 후에 한동안 멎었다가 다시 내려, 진흙을 씻어내는 비.·는개-안개비보다는 조금 굵고 이슬비보다는 가는 비.·도둑비-밤에 몰래 살짝 내린 비.·먼지잼-먼지가 일지 않을 정도로 아주 조금 내리는 비.·발비-빗발이 발처럼 보이도록 굵게 내리는 비.·보슬비-바람이 없을 때 작은 알갱이로 보슬보슬 내리는 비.·부슬비-보슬비 알갱이보다 조금 굵은 비.·산돌림-이 산 저 골짜기로 돌아다니면서 한 줄기씩 내리는 소나기.·싸락비-싸래기처럼 포슬포슬 내리는 비.·실비-실처럼 가늘게, 길게 금을 그으며 내리는 비.·소낙비-갑자기 세차게 쏟아지다가 이내 그치는 비(소나기).·색시비-수줍은 새색시처럼 소리 없이 내리는 비.·안개비-눈에 보이지 않게 내리는 비.·여우비-맑은 날에 잠깐 뿌리는 비.·웃비-좍좍 내리다가 잠시 그쳤으나 다시 내리는 비.·이슬비-는개보다 굵고 가랑비보다 가늘게 내리는 비.·작달비-굵고 세차게 퍼붓는 비.·자드락비-굵고 거칠게 내리는 비.·장대비-빗줄기가 굵은 장대처럼 쏟아지는 비.·진눈깨비-눈도 비도 아닌, 눈과 비가 뒤섞인 비.·채찍비-채찍으로 후려치듯 굵고 세차게 내리는 비.비는 때에 따라 나름의 이름이 있다. 음력 보름 무렵에 내리는 비는 보름치며 음력 그믐께 내리는 비는 그믐치다. 견우직녀가 만나는 칠월칠석에 내리는 비는 칠석물이며 양이 모종하기에 알맞도록 내리는 비는 모종비이다. 모내기할 무렵에 한목 오는 비는 목비며 뜨거운 복날 전후에 시원하게 내리는 비는 복비다. 농사를 짓도록 적합하게 내리는 비는 꿀비며 필요할 때를 맞추어 알맞게 내리는 비는 단비요, 약처럼 요긴할 때 내리는 비는 약비다.그런가 하면 어떠한 행위를 부르는 비도 있다. 할 일 많은 봄에 내리는 비는 일을 부르므로 일비라고 한다. 바쁜 일이 없는 여름에는 비가 오면 낮잠을 자기 좋으므로 잠비라고 한다. 가을걷이가 끝나고 비가 오면 떡을 해 먹으면서 여유 있게 쉰다고 떡비라고 한다. 농한기인 겨울에 내리는 비는 술 마시며 놀기 좋다고 술비라고 부른다. 비의 이름에 삶의 정취가 고스란히 녹아있지 않은가.우리네 조상은 일상을 비에 맞추었다. 잔비, 흙비, 해비, 가루비, 누리비, 봄장마, 장맛비, 달구비, 궂은비, 마른비, 비보라, 바람비, 우레비, 가을비, 겨울비, 건들장마, 억수장마, 모다깃비, 무더기비, 비에 따라 일을 하거나 집에서 쉬었다.농경문화에서 비는 곧 하늘의 말씀이었다. 천둥, 번개와 함께 비를 퍼부으면 하늘이 노했다고 믿었고 오래도록 하늘이 외면한다고 여겼다. 가뭄을 끝내는 비에 웃고 비가 너무 많이 와서 홍수가 나면 울었다. 다 마른 빨래를 적시는 소낙비를 원망하고 더위를 식히는 소나기에 고마워했다. 사람을 울리고 웃기는 존재인 비, 그래서 정선아리랑에는 목놓아 울고 싶은 마음을 이렇게 읊었다.“비가 올라나 눈이 올라나 억수장마 질라나 만수산 검은 구름이 막 모여든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 고개로 나를 넘겨주게”우리네 가요에는 비가 많이 내린다. 새벽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안개비가 소리 없이 마음을 적신다. 그대는 봄비를 무척 좋아하는지 다정하게 묻고 이 빗속을 둘이서 말 없이 걸어보자고 청한다. 비라도 내리면 금방 울어 버리겠네 라고 울먹이고 가랑비야 내 얼굴을 세차게 때려달라고 읍소한다. 이별 뒤 슬픔을 이기지 못해 찬비야 내려라 밤을 새워 내려라고 절창한다.요즘은 비에 대한 서정이 옛날 같지 않다. 비가 삶을 좌우하는 시절이 아니므로 일상에서 비에 울고 웃을 일이 별로 없다. 그래선지 무엇에 젖는 문화보다 무엇을 즐기는 문화가 성행한다. TV는 먹고 놀고 즐기고 춤추는 예능 프로그램이 점령한 지 오래다. 생각하고 사색하는 프로그램이 몇 있지만, 그 분량이 적어 안타깝기도 하다.어느새 버들가지에 연둣빛 봄물이 파릇하다. 봄비 내리면 우산을 들고 들녘에 나가봄직도 하다. 차박차박 빗방울이 대지를 두드리는 소리를 가만히 들어보고, 발끝으로 고인 물 찰박찰박 차며 걸어도 보고, 그렇게 젖다 보면 무엇에 젖는다는 것의 의미를 느낄 수 있을 터이니./수필가·문학평론가

2021-03-10

바람의 手채화

소소리바람이 옷깃을 차갑게 파고들더니 어느새 샛바람(春風)이 불어온다. 샛바람이 가지 끝을 간질이면 꽃이 눈을 비비며 깨어난다. 꽃이 피면 이를 시샘하는 꽃샘바람이 심술을 부린다. 이어 산과 들에 봄기운이 완연하면 명지바람이 불어와 온누리를 따뜻하게 쓰다듬는다.봄바람은 겨우내 움츠렸던 사람의 마음도 깨운다. 하늘 맑고 바람 좋은 날, 우리네 아낙은 겨우내 때 묻은 이불 홑청을 뜯고 두꺼운 옷을 꺼냈다. 우물가에서 빨래를 방망이로 두드리고 치대고 차박차박 발로 밟았다. 때가 빠지면 빨래를 헹궈 두 손으로 쥐어짰다. 물기 빠진 빨래를 탈탈 털어 빨랫줄에 널었다. 바지랑대를 높이 치켜세우면 높다란 빨랫줄에서 빨래가 휘날렸다. 그러고 나면 겨우내 찌들었던 마음까지 상쾌해졌다.가는바람: 약하게 솔솔 부는 바람.간들바람: 부드럽고 간드러지게 부는 바람.갈바람: 가을바람.강바람: 비는 내리지 아니하고 심하게 부는 바람.강쇠바람: 첫가을 부는 동풍.갯바람: 바다에서 육지로 부는 바람.건들바람: 초가을 선들선들 부는 바람.고추바람: 살을 에듯 매섭게 부는 차가운 바람.꽃바람: 꽃이 필 무렵 부는 봄바람.꽃샘바람: 이른 봄, 꽃이 필 무렵에 부는 쌀쌀한 바람.높새바람: 동북풍을 달리 이르는 말.도리깨바람: 도리깨질을 할 때 일어나는 바람.꽁무니바람 : 뒤쪽에서 불어오는 바람.마파람: 뱃사람들의 은어로, 남풍(南風)을 이르는 말.명지바람: 보드랍고 화창한 바람.내기바람: 산비탈을 따라 세게 불어 내리는 온도가 높거나 건조한 바람.높새바람: 동북풍을 달리 이르는 말.박초바람: 배를 빨리 달리게 하는 바람.벼락바람: 갑자기 휘몰아치는 바람.서늘바람: 첫가을에 부는 서늘한 바람.서릿바람: 서리가 내린 아침에 부는 쌀쌀한 바람.선들바람: 가볍고 시원하게 부는 바람.손돌바람: 음력 10월 20일께, 억울하게 죽은 뱃사공의 원혼이 몰고 온다는 매서운 바람.소슬바람: 소나무 사이를 스쳐 부는 바람.솔솔바람: 부드럽고 가볍게 계속 부는 바람.하늬바람: 서쪽에서 부는 바람.황소바람: 좁은 틈으로 세게 불어 드는 바람.흘레바람: 비를 몰아오는 바람.가을이 오면 하늬바람이 불어왔다. ‘하늬’는 하늘바람으로 갈바람 또는 가을바람이라고도 한다. 옛말로는 가슬, 가실, 秋風인데, 뱃사람들은 이를 가수알바람이라고 불렀다. 먼 하늘에서 솔솔 불어오기에 실바람이며 선선하기에 선들바람이다. 서리가 내리면 서릿바람이 불고 이어서 손돌바람이 분다. 겨울이 오면 문풍지 사이로 황소바람이 들어온다.부는 바람만 바람이 아니다. 가마를 타고 가면서 쐬는 바람은 가맛바람, 신이 나서 엉덩이를 흔들며 걸으면 궁둥잇바람, 여자가 극성스럽게 설치면 치맛바람, 신이 나면 신바람, 춤에 빠지면 춤바람, 쓸데없이 이리저리 돌아다니면 헛바람이다. 그뿐인가. 산과 들로 놀러 가면 소풍이고 투기하러 떼를 지어 몰려가면 광풍이다. 몽고풍, 왜색풍, 복고풍, 바람을 닮은 현상도 바람이다.바람의 이름에는 우리네 삶의 정서가 배어 있다. 바람에 따라 삶도 달라졌다. 재를 넘어 문틈으로 솔솔 들어오는 바람을 황소바람이라고 부른다. 모내기할 즈음 부는 아침의 동풍과 저녁의 북서풍을 피죽바람이라고 하는데, 이 바람이 불면 흉년이 들어 밥은커녕 피죽도 못 먹는다고 해서 붙인 이름이다. 음력 10월 20일께 불어오는 몹시 매서운 바람은 손돌바람으로 억울하게 죽은 뱃사공의 원혼이 몰고 온다고 믿었다.바람은 때와 장소와 시간에 따라 다 이름이 다르다. 덴바람, 댑바람, 도래바람, 돌개바람, 회오리바람, 된새바람, 들바람, 마칼바람, 맞바람, 몽고바람, 벼락바람, 갈마바람, 용숫바람, 짠바람, 흔들바람, 산들바람, 흙바람, 갑작바람, 날파람, 꽃바람, 새벽바람, 노대바람, 왕바람, 문바람, 윗바람, 싹쓸바람(태풍), 틈새바람….눈에 보이지 않지만, 바람은 구석구석 가리지 않고 쏘다니며 제 할 일을 한다. 겨우내 땅속에서 잠자던 화신花神을 깨우고 가지 끝 꽃눈을 간질인다. 심술이 나면 꽃샘바람을 불어대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 명지바람으로 쓰다듬는다. 그러다 먹구름을 몰고 우르르 몰려와 나무의 멱살을 흔들고 지붕을 날려버린다. 때로는 몸을 비틀어 하늘로 용솟음친다.바람은 없어서는 안 될 존재이다. 바람이 없다면 세상은 활기를 잃고 적막해진다. 바람이 아니면, 누가 씨앗을 퍼트려 산과 들을 푸르게 할 것이며 누가 청둥오리를 높이 밀어올려 히말라야 산맥을 넘게 할 것인가. 누가 사막을 쓰다듬어 유려한 곡선을 그리며, 소녀의 머리칼을 누가 휘날려 소년의 숫기를 깨울까.보이지 않는 손, 바람은 산들바다를 아름답게 만든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바람이 그린 手채화이다. /김이랑 문학평론가

2021-03-03

길을 떠나도 여전히 길

요즘 ‘꽃길만 가자’는 말이 유행이다. 인생길을 가면서 숱한 길을 다 겪는다. 그 고난이 어떤지 다들 알기에 건네는 덕담인데, 인생길이 맑고 평평하면 삶이 재미있을까. 아름답고 향기로운 길만 있다면 삶이 맛있을까.사는 재미는 희로애락에 있다. 사는 맛은 달고 쓰고 맵고 시고 짠 데 있다. 맵디매운 시련을 이겨내고 성취했다는 기쁨과 쓰디쓴 좌절을 딛고 일어섰다는 자부심이 있어야 한다. 길을 가다가 건지는 개똥철학 같은 깨달음도 있어야 인생의 진정한 맛을 알 수 있다. 사는 재미와 사는 맛 모두 길을 가면서 얻는 것이다.벼룻길 : 아래쪽이 강가나 바닷가로 통한 벼랑길.외통길 : 한 곳으로만 난 길.에움길 : 에워서 빙 둘러 가는 길.거님길 : 산책길의 옛말.두멧길 : 두메 산골에 난 길.뒤안길 : 뒤꼍으로 난 길.발구길 : 마소에 메워 물건을 실어 나르는 썰매가 다닐 수 있는 길.푸서릿길 : 풀이 자란 정리 안 된 길.눈석잇길 : 눈이 녹아 질척거리는 길.돌서덜길 : 냇가나 강가에 돌이 많이 깔린 길.자드락길 : 나지막한 산기슭의 비탈에 있는 좁은 길.길은 원래 있던 것이 아니다. 누군가가 간 발자국이 모여 길이 되었다. 짐승을 잡으러 가면 사냥길, 나무하러 가면 나뭇길, 시장에 가면 시장길, 물건 팔러 가면 장삿길, 놀러 가면 나들잇길, 과거 보러 가면 과거길, 벼슬하러 가면 벼슬길, 죄를 짓고 쫓겨나면 귀양길, 몰래 가면 잠행길, 밥 얻으러 가면 동냥길, 처음 가면 첫길, 누군가와 함께 가면 동행길, 산소에 가면 성묫길, 임금이 가면 거둥길, 길은 목적이나 상황이나 조건에 따라 이름이 다르다.목적에 따라 : 마중길, 배웅길, 과거길성질에 따라 : 비탈길, 가시밭길, 오르막길일기에 따라 : 빗길, 눈길, 밤길, 새벽길재질에 따라 : 황톳길, 자갈길, 돌서덜길거리에 따라 : 지름길, 하룻길, 에움길장소에 따라 : 오솔길, 숲길, 산길, 둑길, 고갯길, 논두렁길, 밭두렁길모양에 따라 : 꼬부랑길, 곧은길이뿐일까. 사람이 가는 곳은 다 길이다. 길이 없어도 내가 가면 길이고 누군가가 갔으면 그 또한 길이다. 산, 들, 바다, 하늘은 말할 것도 없고 마음속에도 길이 있다.첫길, 꽃길, 둑길, 샛길, 잿길, 논길, 산길, 빗길, 눈길, 돌길, 숲길, 큰길, 갓길, 밤길, 곁길, 외길, 촌길, 물길, 하늘길, 진창길, 갈림길, 흙탕길, 지름길, 자갈길, 비탈길, 벼랑길, 황천길, 모랫길, 바른길, 에움길, 돌림길, 고샅길, 언덕길, 외딴길, 나뭇길, 덤불길, 두렁길, 황톳길, 오름길, 내림길, 비탈길, 오르막길, 내리막길, 가시밭길, 돌너덜길우리네 길은 잘 빠지고 평평하고 반듯하지 않다. 가파르고 질척하고 거칠다. 아슬아슬하고 구불구불하고 울퉁불퉁하다. 이는 우리네 삶과 다르지 않다. 살다 보면, 진창길을 만나 바짓가랑이에 흙탕물이 튀고 비탈길 오르느라 숨을 헐떡이고 벼랑길 지나느라 다리가 후들거린다. 길을 잘못 들어 한동안 헤매기도 한다.그래도 우리는 늘 길을 떠난다. 무언가를 얻기 위해, 무엇을 하러, 때로는 무작정 길을 떠난다. 길을 떠났으면 길이 아닌 곳에 있어야 하는데, 아무리 돌아봐도 여전히 길 위에 있다. 왜 그럴까. 여자의 길, 배움의 길, 출세의 길, 고행의 길, 설욕의 길, 재기의 길, 군인의 길, 영광의 길, 임금의 길, 신하의 길, 군자의 길, 인생 그 자체가 길이기 때문이다.길에는 나름의 맛이 있다. 오솔길은 호젓한 사색에 드는 맛이 있다. 갈림길 앞에서는 이리 갈까 저리 갈까 망설이다 하나를 선택하는 맛이 있고 나중에 후회하는 맛도 있다. 외통길은 선택의 여지가 없기에 이겨내야 하는 맛이 있다. 꽃길은 화려하고 향기로운 맛이 있고 뒤안길은 쓸쓸한 맛이 있다.먼저 닿기 위해 길을 가면 길을 알지 못한다. 산길을 발밤발밤 노래하는 사람은 산꽃이 차례대로 피고 지는 까닭을 알게 되고, 들길을 거니는 사람은 알곡이 도담도담 여무는 속도를 보게 된다. 다람쥐며 산새며 송사리며 풀꽃이며, 길섶에 있는 것들은 느릿하게 눈을 맞추는 영혼에게 말을 걸어오므로.진달래, 찔레꽃, 산딸기가 줄지어 피는 산모롱이 길은 통째로 먹어도 맛있다. 짤랑짤랑 가위소리가 먼저 뛰어오는 길은 엿가락처럼 몇 토막 뚝 잘라 먹어도 좋다. 바깥에만 두기 아까워 내 안으로도 내고 싶은 길을 찾아 나는 또 길을 떠난다.(길 위의 명상/김이랑/일부 발췌)살아봐야 인생을 알 듯, 길을 걸어야 길을 알고 길가의 것들과 눈을 맞추어야 길맛을 안다. 만약 당신이 빨리 가기 위해 고속도로를 달린다면 그것은 길 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속도(速度) 위에 있다. /문학평론가 김이랑

2021-02-24

장가 가고 시집 가고

남녀가 부부로 맺는 일을 결혼이라고 한다. 요즘에는 ‘화촉을 밝히다’, ‘백년가약을 맺다’로 말하기도 하지만 예전에는 혼인(婚姻)이라는 용어가 더 친숙했다. 혼인을 한자의 풀어보면 ‘女+昏’+‘女+因’이다. 女는 여자, 因은 근본으로 이는 모계사회의 흔적이다. 昏은 해가 저물 때로, 혼인은 해가 저물면 부부의 인연(因緣)을 맺는다는 뜻을 담고 있다.신랑은 장가(丈家)에 들어 일정 기간 머물렀다. 첫 아이를 얻으면 비로소 독립하거나 본가로 되돌아왔다. 이로써 신부는 새로운 부모를 모시기 위해 시집으로 오게 된다. 그래서 ‘장가 가고 시집 가고’라는 말이 생겨났다.사람이 모이는 행사답게 혼례에는 사람과 관련된 재미있는 용어가 많다. 용어를 가만히 곱씹어보면 우리말 답게 토속적 냄새가 진하게 배어있다.함진아비 : 혼인 때, 신랑집에서 채단을 넣은 함을 지고 신부집으로 가는 사람.기럭아비 : 신랑이 기러기를 가지고 신부집에 가서 상 위에 놓고 절하는 전안 의식을 할 때, 기러기를 들고 신랑 앞에 서서 가는 사람.꼭지도둑 : 혼인할 때 신랑을 따라가는 어린 여자 하인을 일컫는 말.열두하님 : 혼인할 때 신부를 따르던 열두 명의 여자 하인을 높여 일컫는 말.족두리하님 : 혼인한 새색시가 시집으로 갈 때 신부를 따라가는 여자 하인을 높여 일컫는 말.하님 : 여자 하인을 높여 부르는 말.고이댕기 : 서북 지방에서 혼례를 올릴 때 신부가 드리는 2가닥 댕기.혼인이 성사되면 혼례를 치르기 위해 신랑이 말을 타고 신부의 집으로 간다. 마부를 앞세우고 그 뒤를 청사초롱을 든 하인과 나무로 만든 기러기를 든 기럭아비를 비롯해 꼭지도둑도 따라갔다. 꼭지도둑은 혼례상에 놓인 꼭지숟가락을 훔치는 일을 맡았다. 꼭지숟가락은 어린아이가 쓰는 작은 숟가락으로 자루 끝에 동글납작한 꼭지가 달려있다. 훔친 꼭지숟가락은 나중에 다시 신부에게 돌려주는데, 여기에는 하루빨리 아이를 낳기를 바라는 의미가 숨어있다.혼례가 끝나고 며칠 뒤, 불편하고 거추장스런 의장을 풀어 놓고 가벼운 복장으로 어른을 뵈었다. 이 만남을 ‘풀보기’라고 일컫는다. ‘댕기풀이’는 신부의 댕기를 푼 신랑이 친구들에게 한턱내는 일로 ‘자리보기’라고도 말한다. 자리보기에서는 짓궂은 성적 농담이 오고 갔다. 자리보기는 첫날밤을 지내는 신랑 신부의 잠자리를 구경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첫날밤 신방은 사람이 보아 주지 않으면 귀신이 먼저 엿본다고 하여, 사람들은 신방의 문 창호지에 침으로 구멍을 내어 들여다보았다.친인척이나 친구들이 모여 신랑을 거꾸로 매달고 발바닥을 때렸는데, 이를 ‘족장(足掌)’이라고 한다. 한의학에서 발바닥을 때리면 기혈이 순환해 정력이 향상된다고 하는데, 이를 근거로 신부와의 잠자리에서 힘을 쓰라는 뜻도 숨어 있다. 신랑을 골탕 먹이는 행위를 ‘신랑 다루어 먹기’ 또는 ‘장가 턱’이라고 하는데, 이는 재미이기도 하지만 신랑을 괴롭혀 인성을 파악하려는 의도도 있다고 한다.오다가다 우연히 만나 동거하는 예비 부부를 ‘뜨게 부부’라고 한다. ‘뜨게’는 ‘본을 뜨다’에서 나왔는데, ‘흉내내다’라는 뜻으로 혼례를 치르지 않고 부부처럼 행세하는 것을 말한다. 요즘에는 이를 ‘동거’ 또는 ‘혼전동거’라고 말한다.뜨게 부부와 비슷한 말이 있다. ‘두더지혼인’이 그것인데, 정식이긴 하나 남몰래 하는 결혼이다. 옛날 두더지 처녀가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상대와 결혼하기 위해 이런저런 동물을 전전하다가 결국은 동족인 두더지 총각에게 시집가고 말더라는 우화(寓話)에서 비롯된 말이다. 과분한 욕심을 부리지 말라는 교훈을 담고 있다.부정한 결혼을 지칭하는 말로 ‘보쟁이다’가 있다. 부부가 아닌 남녀가 은밀한 관계를 계속 맺는 행위로, 요즘으로 말하면 내연(內緣) 관계이다. 보쟁이다가 들킨 남녀는 ‘덕석말이’를 하였는데 이는 멍석을 말아서 매를 때리는 벌로 촌락의 자치적 통제방식였다.이미 결혼한 남녀를 핫아비, 핫어미라 불렀다. ‘핫’은 ‘홑(홀)’과 대조되는 말이다. 핫은 배우자가 있고, 홑은 없다는 뜻을 가진 접두어이다. 그래서 홀아비, 홀어미는 짝 잃은 외톨이를 지칭하며 이들의 독신 생활을 ‘홀앗이’라고 했다.홀앗이하는 외톨이들도 다시 짝을 만나 새 가정을 꾸렸다. 재혼 또는 재취(再娶)인데 이를 속현(續絃)이라 했다. 續絃은 거문고(琴)와 비파(瑟)의 현이 끊어진 것을 다시 잇는다는 뜻이다. 끊어진 금슬(琴瑟)의 현이 다시 이어졌으니 그 선율이 어찌 아름답지 않겠는가.문화가 바뀌면서 옛 결혼 풍속도 대부분 사라졌다. 이에 따라 용어도 몇 가지만 살아남았다. 우리말이 물러간 자리를 웨딩, 웨딩드레스, 턱시도, 스튜디오 촬영, 리허설 촬영, 웨딩앨범, 피로연파티, 메이크업 같은 외국어가 차지했는데, 이러한 용어가 더 고급스럽고 품격 있다고 여기는 사람이 많아 안타깝기도 하다.시대의 변화에 따라 쓰지 않는 언어는 도태되는 게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하지만 연지곤지, 족두리, 댕기풀이 같은 아름다운 우리말이 사라진다는 것은 아쉬운 일이다. /문학평론가 김이랑

2021-02-03

삶을 깁고 공그르고

한글은 표현이 아름다운 글자이다. 하지만 외래어와 더불어 국적불명의 언어들 때문에 우리말이 설 자리를 완전히 잃어버릴 수 있겠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이에 우리 말글의 아름다움과 소중함을 돌아보는 장을 마련하고자 한다. 삶의 각 분야에 녹아 있는 우리말을 김이랑 문학평론가가 찾아 그 아름다움을 들려줄 예정이다. 세종대왕의 애민정신과 함께 만물의 공존과 조화, 상생의 세계관이 깃들어 있는 우리말의 의미와 가치를 되새기는 장이 될 것이다. 독자들의 관심과 격려를 바란다. /편집자 주개나 소 등 동물은 털옷을 입고 태어난다. 하지만 인간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태어난다. 벌거숭이가 세상에 나왔을 때 씻긴 다음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옷 입히기이다. 그래서인지 언어배열도 의식주(衣食住)라고 썼다. 음식이나 집보다 옷(衣)을 우선시했던 것이다.어릴 적 어머니는 반짇고리를 꺼내 호롱불 옆에 앉았다. 그러고는 바늘에 실을 꿰어가며 밤늦도록 바느질했다. 구멍이 난 양말, 무릎이 해진 바지, 단추가 떨어진 점퍼, 끈 떨어진 책가방, 이러한 것을 무릎에 올려놓고 깁고 호고 홀치고 공글렀다. 어머니의 손길을 거치면 옷도 가방도 멀쩡해졌다.바느질할 때, 어머니는 한눈을 팔지 않았다. 천을 덧대고 이으며 한 땀 한 땀 바늘길을 냈다. 어머니의 손놀림에 따라 바늘이 가고 실이 따라갔다. 작은 바늘과 가느다란 실이 만들어내는 언어는 어머니의 손끝처럼 매우 세밀했다.깁다 : 다른 헝겊 조각을 대거나 또는 그대로 꿰매다.박다 : 두들기거나 꽂거나 틀거나 하여 속으로 들어가게 하다.뜨다 : 실이나 끈, 노 따위로 얽거나 짜서 만들다.호다 : 헝겊을 여러 겹 겹쳐 대고 땀을 곱걸지 않은 채 성기게 꿰매다.누비다 : 천을 두 겹으로 포개어 안팎으로 만들고 그 사이에 솜을 두어 가로 세로로 줄이 지게 박다.볼달다 : 버선의 앞뒤 바닥에 헝겊을 대어 깁다.홀치다 : 풀리지 않도록 단단히 동여매다.감치다 : 실의 올이 풀리지 않게 용수철 모양으로 감으며 꿰매다.시치다 : 여러 겹의 헝겊 조각을 맞대어 듬성듬성 성기게 꿰매다.사뜨다 : 올이 풀리지 않도록 가장자리를 실로 감치다.휘갑치다 : 가장자리가 풀리지 않도록 얽어 휘둘러 감아 꿰매다.공그르다 : 접어 맞댄 양쪽에 바늘을 번갈아 넣어 가며 실 땀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게 속으로 떠서 꿰매다.징거매다 : 옷이 해어지지 아니하게 딴 천을 대고 대강 꿰매다.송당거리다 : 바늘땀을 다문다문 거칠게 자꾸 호다.바느질이라는 행위 속에 이러한 동사가 있다. 깁고, 박고, 뜨고, 호고, 누비고, 홀치고, 감치고, 시치고, 사뜨고, 휘갑치고, 공그르고…, 우리말은 행위나 상태를 소리로 표현하는 소리글자이다. 하나씩 입안에서 가만히 굴려보면 행위와 발음이 닮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우리말은 세밀한 동작을 절묘하게 소리로 표현하기 때문이다.땀 : 바늘로 한 번 뜬 자국.솔기 : 두 장의 천을 실로 꿰매어 이어 놓은 부분.매듭 : 실이나 끈 따위를 묶어 마디를 맺은 자리.시접 : 접혀서 옷 솔기의 속으로 들어간 부분.민짜 : 아무 장식이 없는 박음질.곱솔 : 솔기를 한번 꺾어서 호고 다시 또 접어서 박는 일.쌈솔 : 겉으로 시접한 쪽을 0.3~0.5cm 내에서 박은 다음 그 시접으로 접어 한 번 더 박는 일.뒤옹솔 : 바느질한 감의 안을 서로 맞대고 시접을 0.5cm 정도 박은 다음 안으로 뒤집어서 겉쪽의 시접이 보이지 않도록 다시 안에서 박는 일.가름솔 : 여러 천을 겉끼리 맞추어 한 번 박아 솔기를 양쪽으로 가르는 일.마름질 : 옷감이나 재목 따위를 치수에 맞게 재거나 자르는 일.뜨개질 : 털실이나 실 따위를 얽고 짜서 옷, 장갑 따위를 만드는 일.박이옷 : 박음질하여 지은 옷.도련박기 : 도련이나 치마의 밑단을 박는 작업.반짇고리 : 바늘·실·골무·헝겊 같은 바느질 도구를 담는 그릇.누비이불 : 누벼서 지은 이불.김이랑수필가이렇게 나열해보니, 바느질과 관련된 명사도 동사 못지않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바늘로 뜬 자국은 ‘땀’이라 하고 맺은 자리는 ‘매듭’이라 하고 솔기를 곱으로 접는다고 ‘곱솔’이라 한다. 안으로 솔기를 싼다고 ‘쌈솔’이라 하고 뒤로 보이지 않게 한다고 ‘뒤옹솔’이라 한다. 게다가 솔기를 가른다고 ‘가름솔’이라 하고 침을 감는다고 ‘감침질’이라고 하니, 그 모양새가 발음에 그대로 살아있지 않는가.그런가 하면 파생어도 많다. ‘일을 마무리하다’에서 ‘마무리’는 ‘마무르다’에서 나왔다. 옷을 입을 때 끈을 매고 여미고 하는 뒷단속을 ‘매무시’라고 한다. 마무르다, 매무새, 매다, 맺다, 맵시 등은 모두 바느질에서 나온 말이다. 삶에서 옷을 뺄 수 없듯이 바느질 용어가 삶 곳곳에 녹아 있는 것이다.가만히 짚어보면 우리네 삶도 바느질과 같다. 살다가 마음이 해지면 깁고, 느슨해지면 단단히 홀치고, 풀어질 것 같으면 말아서 감친다. 큰일을 앞두고는 마음 매무새를 가다듬고 일이 끝나면 마무리한다. 인연은 맺고 다하면 끊고 하던 일은 매듭을 짓는다. 정착하고 싶으면 말뚝을 박고 그렇지 않으면 세상을 누비며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다. /문학평론가

2021-0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