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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

정태원 기자
등록일 2008-11-06 16:01 게재일 2008-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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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원 북부취재본부장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속언이 있다.

이 말은 여성의 지위를 한껏 낮추어 보던 시기에 한집안이든 한나라든 여성의 목소리가 높은 것을 비하한 표현으로 널리 쓰였다.

일반적으로 이 표현을 유교 천지이던 조선에서 남존여비의 대표되는 말쯤으로 알고 있는데 그건 잘못 알려진 것이다. 이 말이 옛 문헌에 처음 보이는 것은 서경 목서 편으로 주나라 무왕이 은나라 주(紂)왕를 정벌하러 나서면서 군사들에게 맹서 하는 말에서 비롯된다.

무왕은 은나라를 정벌하는 이유를 들면서 “옛사람의 말에 암탉은 새벽에 울지 말아야 하니 암탉이 새벽에 울면 집안이 무너진다. (古人有言曰 牝鷄 無晨, 牝鷄之晨, 惟家之索)” 는 표현을 쓴다.

무릇 새벽을 알리는 닭 울음소리는 수탉의 몫이다. 암탉이 울 때는 주로 낮으로 알을 낳았을 때나 병아리를 데리고 다닐 때, 또는 놀랐을 때이다. 이런 상도(常道)를 위반하고 암탉이 새벽을 알리는 소리를 내는 건 요사스런 재앙이 될 뿐이라는 것이다.

주 무왕의 이 말은 상왕 주(紂)가 두 번째로 맞은 황후 달기의 말만 듣고 정치하는 것을 빗대서 한 말이다. 주(紂)는 주지육림(酒池肉林)이라는 고사성어를 만들어냈을 정도로 지극히 무도한 인간이었는데, 바른 말 하는 충신들을 무수히 죽였고 그 중에 한 명이 자신의 숙부인 비간(比干)도 포함된다.

그는 기자, 미자(微子)와 더불어 후일 공자가 ‘은(殷)나라의 어진 세 사람이라 칭한 인물이기도 하다. 비간의 죽음에도 왕후 달기가 개입돼 있었다.

이때 벌써 “옛 사람들의 말에…”라는 표현을 한 것으로 미루어 암탉이 새벽에 울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 중국에서는 3천 년 전부터 쓰여진 모양이다.

이후 우리나라 기록에 남아 있는 사례로는 신라 27대 선덕여왕 때인데 중국과 한반도에서 최초로 등극한 여왕을 두고 당태종 이세민이 비아냥거린 것이다.

당 태종이 이후, 후손 가운데 측천무후가 등장해 통치할 걸 예견했다면 신라를 선각자들이 통치한다고 치켜세워야 했을 일이었으나 그는 그 정도의 예지 능력도 없었으면서 남의 나라 여성군주를 두고 함부로 말한 것이다.

이 속담이 우리나라 속담으로 둔갑한 건 불과 백여 년 전으로, 일본공사 ‘이노우에’가 명성황후를 두고 한 말이 조선이 망하는 결과로 이어지면서 속담으로 정착된 것이다. ‘이노우에’는 고종의 면전에서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라고 으름장을 놓았던 것이다.

명성황후의 목소리가 높아서 조선이 망했을 리야 없는 일이지만 공교롭게도 조선이 망한데다 유교의식의 잔재까지 한데 엮이면서 우리 속담으로 정착된듯하다. 여성의 권익도 한껏 신장되고 각계각층에서 여성들의 활약이 눈부신 요즘인 만큼, 이제는 사라져야 할 이 속담이 못난 사내들에 의해 다시 세간에 널리 퍼지는 모양이다.

고위 공직자 재산 현황이 밝혀지거나 위장전입 사실 등이 드러나면서 “나는 모르는 일이고 우리 집사람이 그런 것 같다”고 둘러대더니, 요즘은 또 쌀 소득보전 직불금 문제를 두고 “내가 한 일이 아니고 내 아내가 한 일”이라며 치사한 변명으로 나오는 공직자가 꽤 많다는 소식이다.

이 말을 앞서 예로 든 고사와 비교하면 남이 한 얘기가 아니라, 스스로 “우리집은 암탉이 새벽에 울고 있소” 이다.

상식적인 도리에 어긋나는 말이다. 자신 몰래 부인이 저지른 짓이라면 집안 다스린 가장의 체면이 말이 아닌 것이고, 이게 변명이 되는 것으로 알고 자신에게 닥칠 불이익을 피해 보려 한다면 한집안의 가장으로서는 물론 한나라의 공직자로서도 더더욱 면목이 없는 일이다. 암탉도 울 때는 울어야 한다.

그러나 새벽에 울어서는 되지 않는다. 새벽에 운 일도 없고, 자신의 공직생활 수십 년을 뒷바라지하느라 쇠잔해 졌을 아내에게 억울한 누명까지 씌워가며 벼슬 세우고 어깨 으쓱대 온 못난 수탉들 울음소리에 집안도 나라도 스산한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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