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숙 대구지법 포항지원 부장판사에 지역민 뜨거운 관심
증거제출·변론기일 엄수 ‘강단’
재판부 5번 변경·5년 끌던 소송
한 달에 재판 2차례 열며 결론
경산 출신 경북대 법학과 졸업
2004년 46회 사법시험에 합격
‘n번방 사건’ 등 굵직한 재판도

포항지진 손배소에서 포항시민 일부 승소 판결을 한 대구지방법원· 대구가정법원 포항지원 박현숙(43·사법연수원 37기·사진) 부장판사에 대한 지역민들의 관심이 커지고 있다.

<관련기사 4·7면>

이 사건은 소송이 제기될 때만 하더라도 지역변호사 업계에서조차 고개를 갸우뚱거릴 정도로 반신반의 분위기 상태에서 출발했다. 모 시민단체에서 접촉한 한 변호사는 일만 번거롭고 승산이 없다며 거절하기까지 했다. 그만큼 쉽지 않은 도전이었던 것으로, 소송 당사자들도 시간이 지연되자 큰 기대를 걸지 않았다.

그러나 박 부장판사는 예상을 깨고 지루하게 전개되던 소송을 이번에 쾌도난마처럼 확고하게 정리했다. 지난 16일 지진 피해를 입은 포항시민 4만7천850명이 정부 등을 상대로 낸 지진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피고가 원고에게 200∼300만원의 위자료를 지급하라”며 판결한 것.

아직 항소 및 대법원 상고 절차가 남아있긴 하나 1차 판결이 끝까지 유지된다면 이 판결 하나로 포항시민 50여만 명은 1조여 원이 넘는 배상을 받게 된다. 천문학적 액수다. 그렇다 보니 이 판결을 내린 박 부장판사에 대해 시민들이 더 놀라워하며 세평이 이어지고 있다.

일단 지역 법조계는 ‘포항지진 피해에 대해 국가 책임을 처음으로 인정한 기념비적인 판결’이라고 반겼다.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은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판결이라는 평도 했다.

A변호사는 “이번 판결은 여러 의미가 있다”면서 “첫째 포항지진이 자연재해가 아닌 촉발지진으로 인정된 점, 둘째 국가의 책임을 인정한 점, 셋째 손해배상액이 비교적 적절했다는 점” 등을 꼽았다. 그는 이번 판결을 들여다보니 이 세 가지가 절묘하게 잘 어우러져 있었다면서 재판부의 고민을 엿볼 수 있었다고 했다.

B변호사는 “지진특별법에 이어 포항시민을 대한민국의 국민임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준 판결이었다”면서 “포항시민들은 이번에 국민으로서 큰 자긍심을 가지게 됐다”고 말했다.

포항시민단체들도 환영하고 나섰다.

모시민단체 한 관계자는 “포항지진 손배소 관련해 2018년10월 첫 소장을 접수한 뒤 재판부가 5차례나 바뀌었고, 선고까지 재판이 22차례나 열렸다”면서 “피고 측 국가가 선임한 변호사들은 지난 4년 동안 증명 서류 하나도 내지 않고 재판을 방해해 왔다”고 그간 힘들었던 재판과정을 회고했다.

그는 “예전의 재판부와는 달리 박 부장판사는 피고에게 정해진 시간에 증거를 제출토록 분명히 하고, 변론 기일도 정확하게 지키게 하는 등 카리스마 있게 재판을 이끌었다”고 강조했다.

소송 원고 측 C변호사는 박 부장판사를 ‘깜놀 판사’라고 불렀다. 그는 “박 부장판사는 한 달에 2차례 재판을 열 정도로 열정적이었다”라면서 “재판에서 보여준 추진력과 강단은 매우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경산 출신으로 대구 남산고와 경북대 법학과를 졸업한 박 부장판사는 2004년 제46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2008년 대구지법 판사를 시작으로 수원지법 안양지원, 서울중앙지법, 서울서부지법 등을 거쳐 올해 2월부터 대구지법 포항지원 부장판사로 재직하고 있다.

박 부장판사는 그동안 사회적으로 주목받는 사건을 여럿 맡았다. 2020년 3월 아동 성 착취 영상을 제작하고 유포한 ‘텔레그램 n번방’사건을 맡아 세간의 관심을 모았으며 같은 해 9월에는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에서 재판에 증인으로 나온 탈북자의 비공개 증언을 언론에 유출한 국가정보원 전직 간부에게 징역 1년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했다. 또 성관계를 맺은 여성의 신체를 촬영하고 동의 없이 SNS에 게시한 혐의(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로 기소된 종근당 회장의 아들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하기도 했다.

포항에 와서도 지연되던 상당수 재판을 신속하게 끝내 변호인과 의뢰인들로부터 강한 인상을 남겼다. 재판을 꼼꼼하면서도 엄정하고 공정하게 진행하다 보니 판결 결과에 대한 저항이 미미하다는 것이 안팎 평가다.

/이시라기자 sira115@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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