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천재 철학자, 새로운 인본주의를 말하다

윤희정기자
등록일 2021-12-02 20:10 게재일 2021-12-03 12면
스크랩버튼
‘생각이란 무엇인가’<br/><br/>마르쿠스 가브리엘 지음<br/>열린책들 펴냄·인문·2만2천원
오늘날 인간의 생각하기 능력은 전례 없는 위기에 처해 있다. 인터넷 세상 속에서 실재와 가짜를 구별하는 일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스마트폰, 스마트와치, 태블릿 등 휴대용 기기들은 인간의 지능을 뛰어넘은 지 오래다. 생각이란 무엇이며, 인간의 생각은 무엇이 특별한 걸까? 철학 자체만큼이나 오래된 이 질문은 오늘날 여전히 유효하다.

‘생각이란 무엇인가’(열린책들)는 독일 본 대학의 최연소 교수로 이름을 떨친 ‘천재 철학자’ 마르쿠스 가브리엘(41)의 최신작이다.

2005년 25세라는 젊은 나이로 독일 하이델베르크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4년 뒤 독일 본 대학 최연소 석좌교수로 부임한 가브리엘은 자신의 독자적 철학 이론인 ‘신실재론’을 바탕으로 생각의 의미를 탐구함으로써 인간의 지위를 확고히 하려는 야심 찬 시도를 보인다. 디지털 시대에 새로운 인본주의를 주창해온 그의 이론은 탈진실과 포퓰리즘 등에 응답하기 위한 새로운 형태의 철학으로 읽힌다.

참신한 관점과 날카로운 통찰로 전 세계의 주목을 받는 가브리엘은, 이 책에서 인간의 생각이 시각, 청각, 미각, 후각, 촉각에 비견되는 생물학적 감각임을 논증한다. 그에 따르면 색깔은 시각으로, 소리는 청각으로 접근하듯 생각은 ‘실재에 접근할 수 있는 감각’, 곧 세계와 나를 연결하는 감각이다. 우리의 생각 감각은 진화의 산물이며 우리의 개념은 역사와 문화의 영향을 받아 형성되기 때문에 인간의 생각은 기술로 대체될 수 없다.

가브리엘은 “인간은 동물이 아니기를 의지(意志)하는 동물”이라고 말한다. 이 책은 기술에 대한 환상을 깨부수고 우리의 삶과 미래를 더 나은 방향으로 결정할 수 있는 우리의 생각 감각을 일깨워 준다.

이 책은 저자의 ‘왜 세계는 존재하지 않는가’(2013), ‘나는 뇌가 아니다’(2015)를 잇는 3부작의 완결편이다. 전작들에서 각각 우리 시대에 만연한 자연과학적 세계관과 신경중심주의에 맞서 반론을 제기한 가브리엘은 이 책에서 인간의 생각에 관한 이론을 마무리 지으며 오늘날에 필요한 새로운 인본주의를 제시한다.

우리는 줄곧 생각하는 능력은 인간의 특권이라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인간의 지능적인 문제 해결 방식이 기계에 의해 더 잘 수행하는 상황이 빚어지면서 인간의 개념이 흔들리고 있다. 우리는 우리의 정신마저 기계에 넘겨주고 마는 것은 아닐까?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해 이 책은 우리 시대에 만연한 커다란 두 가지 사유 오류에 맞선다. 하나는 우리가 실재를 이러저러하게 위조하므로 있는 그대로의 실재(실재 그 자체)를 결코 파악할 수 없다고 여기는 구성주의적 견해, 다른 하나는 인간의 생각 능력을 모방할 수 있는 정보 처리 과정이라고 간주하는 인공지능 기술의 바탕에 깔린 견해다.

이 책에서 가브리엘은 구성주의자와 인공지능 지지자들의 주장은 물론, 논리학, 언어철학, 신경과학에서 제기할 수 있는 철학적 가설을 꼼꼼하게 검토하며 거기에 어떤 오류가 있는지 낱낱이 밝혀낸다. 한 치도 물러서지 않고 철학적 기반을 공고히 다져 기술과학에 대한 환상을 쫓아내고 있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스크랩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