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심연 속의 나, 너는 누구인가?
내 심연 속의 나, 너는 누구인가?
  • 등록일 2021.04.06 19:13
  • 게재일 2021.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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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손경찬의 대구·경북 人
▒ 조각가 김광호
작품 활동의 기저가 자신이 누구인가라는 물음이었다고 설명한 김광호 작가.

악수를 하려는데 작가의 손이 얼른 눈에 들어온다. 덩치에 비해서 작아 보이는 그 손이 지금껏 어디에서도 보지 못한 작품을 만들어냈다. 김 작가의 작품을 실물로 보기 전에는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그의 작품에 꼭꼭 숨겨져 있는 그림자와 실물의 관계를. 그 이해 못함은 나만 그런 것이 아닌 듯, 김 작가가 차에 싣고 온 작품을 직접 들고 왔다. 하얀 프레임에 담긴 작품을 직접 보게 될 줄 몰랐다. 인터뷰 한 꼭지를 위해 차에 작품까지 싣고 왔다는 사실이 작가를 다시 보게 했다. 작품을 직접 들고 온 것은 올해부터 작업하기 시작한 ‘반영’을 알기 쉽게 설명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거울에 작품의 그림자가 비친다는데 실물을 보고도 잘 모르겠다. 무엇을 두고 그림자라고 하는지. 그냥 철로 만든 추상화 같은 작품이 있고, 손가락 두 마디쯤 떨어진 바탕에 바깥의 입방체와 똑같은 모형이 빨간색으로 그려져 있을 뿐. 김 화백이 프레임 속의 빨간 그림을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고요한 설경을 보며 눈길을 걸어가는데

햇살에 비친 그의 그림자가 눈길에 선명하게 떠올랐다.

자신의 실존에 대해서 고민이 많을 때였는데 김 작가는

그림자를 보는 순간 깨달았다. 작품을 시작할 때부터 줄곧 다루어

온 테마가 바로 실존적인 의미로서의 ‘그림자’였다.

조각가 김광호의 작품.
조각가 김광호의 작품.

“저 빨간 그림을 어떻게 그렸느냐고 묻는 사람이 많더군요.”

얼른 아는 척을 했다. 스테인리스로 빗은 입방체의 모형을 바탕에 붙여 본을 뜬 다음 색칠부터 하고, 그 앞에 실물을 세운 거 아니냐고. 그러자 김 작가가 작품 앞에 쪼그리고 앉아서 실물의 뒤에 손가락을 댔다. 그러자 거울에 손가락이 비친 만큼 바탕의 그림이 없어졌다. 그제야 아! 하고 조각품의 비밀과 그림자의 존재를 확실히 알아보았다. 바탕의 빨간색 그림의 출처가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그 빨간 그림자를 만들어낸 것이 거울인 것을 너무 늦게 알아챘다.

“아! 거울의 조화였군요.”

“모형 뒷면이 비친 거죠.”

김 작가의 조각에 그런 비밀이 숨어 있다. 더 큰 비밀은 ‘큐빅(Cubic)’이라는 작품을 책상 위로 자리를 옮겨놓으니 거울에 비친 그림자가 움직이며 좀 전에 보았던 형상이 다른 것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엄연히 존재하면서도 실체가 없는 것의 입방체. ‘큐빅’은 하나의 형상으로 고정된 것이 아니라 보는 사람이 어디로 움직이느냐에 따라서 작품이 달라진다. 간단하면서도 복잡한 구조로 만들어졌다. 조각이 저렇게 추상적인 요소를 지닌 줄 처음 알았다. 그림자의 조화가 방향에 따라 모습을 달리하며 색다른 형상을 연출한다는 사실을.

“대학시절의 가장 큰 관심이 뭐였어요?”

“소리였어요.”

김 작가는 소리를 형상화시켜보고 싶더란다. 사고가 엉뚱한 방향하게 튀어 오른다. 동성로 소리와 칠성시장의 소리, 학교 운동장에서 들리는 소리, 강물이 흐르는 소리 등, 눈에 보이지 않는 소리를 보이는 것으로 만들어서 누가 봐도 소리가 느낌으로 나타난다는 걸 알게 해주고 싶었는데 아직 그 꿈을 이루지 못했다고 한다. 소리를 조각 작품으로 만들면 어떤 것이 될지 궁금해진다. 어쩌면 작가의 마지막 작업이 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림자를 언제 어떻게 만났어요?”

“1986년 겨울 군 복무 중에 폭설이 내렸어요. 눈이 그치고 해가 떴는데 눈이 부실 정도로 날이 맑았어요.”

그 자신도 몰랐던 그를 알아보게 한 것은 눈 위에 떠오른 그림자였다. 고요한 설경을 보며 눈길을 걸어가는데 햇살에 비친 그의 그림자가 눈길에 선명하게 떠올랐다. 그가 가는 곳마다 조용히 따라다니는데도 한 번도 알아보지 못했던 그것이 가시광선에 훤히 떠오른 것이다. 자신의 실존에 대해서 고민이 많을 때였는데 김 작가는 그림자를 보는 순간 깨달았다. 그 그림자가 바로 자신이고 죽을 때 관에 함께 묻히게 될 존재라는 사실을. 작품을 시작할 때부터 줄곧 다루어온 테마가 바로 실존적인 의미로서의 ‘그림자’였다.

“그때는 그림자가 평생을 함께 할 화두가 될 줄 몰랐어요.”

자코메티의 작품에 가늘고 긴 팔 다리를 가진 실존적인 형상의 인물이 있다면 김 작가의 작품에는 그림자가 있다. 그림자는 물상의 또 다른 실체라고 할 수 있다.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존재하는 물상. 또는 그늘에 숨겨져 있는 음영으로서의 존재. 그것은 여러 겹의 자아를 가진 인간의 이면과 같다. 인간의 이면에는 수많은 자아가 있다. 빛을 따라 나타나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하는 존재. 어느 순간 불쑥 나타나서 존재감을 드러내는 그것은 반드시 양(陽)에서만 존재하는 음(蔭)의 모습을 드러낸다.

‘그림자, 그는 누구일까?’

칼 융에 의하면 페르소나에 의해 억압된 자아가 그림자이다. 페르소나가 보여 지고 싶은 그림자로서의 ‘나’라면 자아는 보여 지는 그대로의 본질적인 ‘나’다. 페르소나는 자아와 분리되어 있다. 그림자는 내 속에 억압된 자아이기도 하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진화를 거듭하는, 여러 개의 얼굴을 가진 페르소나이기도 하다.

 

조각가 김광호의 작품.
조각가 김광호의 작품.

김 작가가 그림자와 함께 한 시간이 33년이다. 1998년도에 첫 전시회를 했는데 도록에 담긴 아카이브가 모두 ‘나는 누구인가?’를 묻는 사람의 형상을 갖추고 있다. 김 작가는 사람의 형상으로 뚫려나간 구멍, 그 여백을 작품으로 활용했다. 여백이야 말로 그림자를 드러내기 좋은 물성이다. 그러고 보니 사람 모양의 그 구멍이 정말 그림자 같다. 기이하다는 생각과 함께 궁금증이 인다. 조각은 두뇌의 예술인가 손의 예술인가. 바위에 추사의 부작란을 심고, 허공에다 집을 짓고, 그림자에 영혼을 싣는 사람. 그림자는 자신과 함께 관에 들어가 영원을 함께 한다. 해를 등지고 길게 드리운 그림자를 보며 김 작가가 묻는다.

“나는 누구인가?”

해가 비치면 그림자가 생긴다. 아침에는 내 뒤에서 놀고, 한낮에는 발밑에서 놀다 오후 4시가 되면 그의 발치에 길게 늘어서서 함께 걷는다. 늘 소유하고 있지만 그림자는 만질 수도 보듬을 수도 없다. 대상이 있어야 비로소 존재하고, 물성이 인식될 때 그림자도 인식되고 실존한다. 장 주네가 ‘자코메티의 아틀리에’에 언급한 대로 ‘개개의 대상은 홀로 있을 수 있기에 아름답다.’는 말이 조형예술의 미학을 말해준다.

23회나 되는 김 작가의 전시회 테마가 모두 ‘그림자’를 주제로 하고 있다. 초창기에는 철판을 그림대로 자르고 오려내는 선적인 작업, 면적인 작업, 다양한 색채의 도입까지 많은 변화를 거쳤다. 2015년부터 사군자(四君子)의 그림자 작업이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몰골법으로 작품을 그렸는데, 이즈음에는 그릴 대상의 면이 아닌 윤곽선으로 표현하는 백묘법을 차용한다. 백묘법과 몰골법의 혼합으로 작업하는 사군자를 예로 든다면, 꽃잎은 백묘법으로 선만 살리고 잎이나 가지, 둥치 등은 몰골법으로 면을 사용한다. 까다롭고 힘든 작업이지만 변화를 추구하는 그만의 방식이다. 진화는 거듭된다.

김 화백은 철을 다루는 작가다. 철과 알루미늄, 스테인리스스틸, 자연석 등의 재료를 레이저커팅 작업으로 입체화시켜 색까지 입힌다. 물상의 환원작업이다. 달 항아리와 매화, 소나무, 국화, 대나무가 그의 손에서 비틀어지고 기울어지며 입체화된다. 입체화된 물성은 공간에 실루엣을 만들고 여백의 미를 만들어낸다. 지금까지 전시회를 23회나 했지만 우리나라의 전통문화에 관심을 갖고 사군자를 표현하기 시작한 것은 17회 전시회부터다.

“철로 작품을 만드는 것은 공간에 대한 재해석인가요?”

“개념이 조금 다르긴 하지만 여백을 만들기 위해 프레임을 만들었으니 공간에 대한 사유라고 할까요?”

올해는 ‘반영’이란 작품을 만들고 있다. 그림자에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존재론적 성찰을 담았다. 그림자는 존재하지 않는 것의 존재함이다. 허상에 불과하지만 실체보다 더 많은 말을 함유하고 있다. 그림자는 자아가 내뱉지 못한 많은 말을 품고 있다. 그림자가 슬퍼 보이는 건 그 때문이다. 반영은 자신에 대한 깨달음이라며, 김 작가는 지금까지 해온 작품 활동의 기저가 자신이 누구냐는 물음이었고 앞으로도 그럴 거라고 한다. 자신을 .아는 것보다 큰 깨달음은 없다는 결론 같다.

경남 합천에서 태어난 김 작가는 경북대 예술대 1회 졸업생으로 졸업하고 교직생활을 했다. 경북대 미술교육학 석사 논문으로 ‘자코메티의 인체조각에 나타난 시지각적 특성’ 을 썼고, 박사과정에서 ‘한국 실존주의 조각연구’를 썼다.

/글 장정옥 소설가

(1997년 매일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2019년 김만중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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