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손경찬의 대구·경북人
▒ 대구상공회의소 이재하 회장

“사람은 희망을 갖고 있는 한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이재하 회장.
“사람은 희망을 갖고 있는 한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이재하 회장.

상공회의소는 동대구역 부근을 지나칠 때면 문득 보게 되는 건물이다. 오래도록 그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당연히 있을 것이 있다는 느낌 외에는 별다른 끌림이 없는 건물이라고 할까. 인터뷰가 아니면 영영 인연을 쌓을 일이 없을 것 같던 곳이기도 하다. 사람의 일은 알 수 없는 것이어서, 그런 이질적인 곳에 상공회의소 회장으로 연임하신 이재하 회장님을 만나러 갔다. 상공회의소 회장은 지역의 상공인은 물론이고 국내외적으로 지역의 경제를 대표하는 인물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명함을 주고받는 것으로 간단한 인사를 나누고 회장님께 기본적인 질문을 던졌다.

 

상공회의소는 상공인들의 권익을 대변하고
제도개선을 통한 규제를 완화시켜줍니다
기업인들의 시장개척과 사회활동도 뒷받침해주죠
기업이란 여러 사람이 합쳐서 이루어내는 것,
사람이 아무리 똑똑해도 여러 명의 힘을
합치지 않으면 어떤 일도 이뤄내지 못한다
심기일전해서 한 길로 매진할 때
이르고자 하는 목적지에 가까워질 수 있음은
기업이나 예술이나 조금도 다르지 않다

“상공회의소가 어떤 일을 하는 곳인지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세요.”

“상공인들의 권익을 대변하고 제도개선을 통한 규제를 완화시켜줍니다. 기업인들의 시장개척과 사회활동을 적극적으로 뒷받침해주기도 하죠.”

수출기업의 판로 개척과 일자리 창출 지원사업, 지역 인적자원개발 등 코로나로 어려움을 겪는 소기업과 착한소비운동을 지원해주고, 1000억 이상을 배출하는 지역 리딩기업인들을 모셔서 격려한다. 그런가 하면 원로기업인들의 힘을 북돋워주고 후배들에게 모범을 보여주는 다양한 일을 추진한다고 자상하게 설명해주신다. 상공회의소는 전 세계 어디에나 다 있고, 전국 시가지에 73개의 상공회의소가 있다며, 대구상공회의소가 서울 부산 다음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다고 한다. 이 회장은 대한상공회의소 부회장직도 맡고 있다.

“상공회의소와 지역의 기업은 서로에게 어떤 존재일까요?”

“서로 밀어주고 끌어주는 공생관계라고 봅니다.”

기업이란 매년 새로운 어려움이 산적하는 것이어서 10년 단위로 1차 오일쇼크, 2차 오일쇼크, IMF 금융위기, 코로나 등의 경제적 대란이 한 번씩 찾아오고, 또 5년 단위로 환율 파동과 원자재 파동으로 기업이 위기를 맞기 일쑤라고 한다. 그뿐 아니라 매년 변화하는 트렌드를 예견하고 기업의 견인차 역할을 한시도 게을리 할 수 없다고 했다. 그렇게 기업과 상공인들이 서로 당겨주고 밀어주며 대구상공회의소가 올해 창립 115주년을 맞았다. 국채보상운동과 금 모으기 운동을 할 때 대구 상공인들이 나라의 위기에 큰 힘을 보태기도 했다.

“상공인을 어떻게 정의하십니까?”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을 예로 들며 시대가 바뀌어서 지금은 기업이 모든 소비와 생산, 수출의 중심에서 축을 이룬다고 한다. 대기업, 중소기업, 소기업 할 것 없이 가장 좋은 일자리는 기업이 만든다며 40년 넘게 기업에 투신해온 기업인답게 이 회장은 기업이 살아야 국가도 산다고 단언한다. 기업이 좋은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도록 의욕을 북돋워줘야 기업이 살 수 있고. 노사문화가 잘 이루어져야 기업도 잘 된다며 이 회장은 노조와 노동자, 기업이 서로 협조의 관계여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하기도 했다.

“상공회의소 들어오시기 전에 어떤 일을 하셨어요?”

“교직에 있었어요, 미술선생을 하다 우연히 자동차 부속공장을 시작하게 되어 오늘에 이르렀어요.”

이 회장은 기업을 한 지 40년이 넘었고 지금도 여전히 기업을 하고 있다. 교직에 그대로 있었으면 먹고 살 걱정은 없었을 테지만 뜻이 있는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과감하게 자동차 부품에 손을 댔다고 한다. 직원 다섯 명으로 시작한 기업이 지금은 삼천 명으로 불었다고. 매년 절벽을 걷는 아찔아찔한 기분으로 살았다고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어떤 날은 베개가 첨벙 젖어 있을 정도로 긴장 속에 살았다며, 기업과 함께 살아온 지난한 시간을 어떻게 말로 다 하겠느냐며 말을 줄인다. 이 회장뿐만 아니라 모든 기업인이 그렇게 절벽을 걷는 기분으로 살고 있다는 말이 터이다. 코로나의 위기를 맞은 현실의 가혹함은 말할 필요도 없을 테고. 지금은 방식이 조금 달라졌지만 예전에는 어음이 잘못되면 줄줄이 도산하기 때문에 수시로 위기에 몰렸다고 한다. 매달 들어오는 어음을 막지 못하면 그대로 부도를 맞게 되는 위험을 안고 산 것이 40년이라며, 그런 위기에 몰린 기업인을 구해주고 도움을 주는 곳이 상공회의소라고 한다.

“그냥 학교에 있을 걸 하고 후회하지 않으셨어요?”

“한 번쯤 후회를 하긴 했지만 그러지 않으려고 악착같이 일에 매달렸어요.”

후회하지 않으려고 더욱 일에 매달렸다는 말이 강한 여운을 준다. 우연히 주어진 성공은 없다는 말일 것이다. 학교에 있었으면 65세에 퇴직을 했겠지만, 기업을 하고 있으니 아직도 현역이라며 여유로운 미소를 짓는다. 하고 싶은 일을 했고 그 일을 열심히 하다 보니 오늘 이 자리에 앉아 있다는 말이다. 자리와 위치가 사회적 책임감을 안겨준다며, 작게는 기업에 소속된 식구들을 챙기게 해주고 크게는 지역의 기업을 챙기게 되더라는 말이 한 집안의 가장을 연상하게 한다.

“가장 어려웠던 시절의 에피소드를 하나 들려주세요.”

“1979년도에 기계를 도입하려고 일본에 갔어요.”

일본 돈과 우리나라 돈의 차이가 3:1일 때여서 기계를 구입할 염을 못 내고 돌아왔다. 기계의 사진을 못 찍게 해서 꼼꼼하게 살핀 후 밖으로 나와서 머릿속에 담아온 기계를 직접 그림으로 그렸다. 그림 공부를 한 것이 도움이 되었다. 그렇게 그려온 그림을 들고 설계하는 사람에게 갔다.

“비행기가 둥실 떠오르자 손오공이 된 느낌이었어요.”

이 회장은 일본으로 가며 비행기를 처음 탔다. 손오공이 되어 하늘을 훨훨 날아다니는 느낌이 드는 순간, 사람이란 것이 상상의 나래를 펼치면 무슨 일이라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천재의 머리가 아무리 좋아도 IQ 150 정도이고 머리가 나쁜 사람 역시 IQ 90 정도이다. 60의 차이가 크긴 하지만, 보통 사람의 두 머리를 합치면 좋은 머리 하나를 능가한다. 기업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여러 사람이 합쳐서 이루어내는 것이고, 사람이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다. 자동차 역시 그와 같다. 2만여 개의 부품이 모여야 자동차 한 대가 이루어진다. 사람이 아무리 똑똑해도 여러 명의 힘을 합치지 않으면 어떤 일도 이뤄내지 못한다. 자기 생각만 옳다고 주장하면 발전이 없다. 자만심은 버리고 자신의 길을 가려는 고집이나 의지는 갖고 있어야 한다며, 이 회장은 기업철학으로 주일무적(主一無適)을 내놓으신다. 한 가지 일에 집중하여 마음이 제자리를 벗어나지 않도록 한다는 퇴계 이황의 경(敬)사상을 이르는 말이다. 심기일전해서 한 길로 매진할 때 이르고자 하는 목적지에 가까워질 수 있음은 기업이나 예술이나 조금도 다르지 않다.

“바쁘실 텐데 건강관리를 어떻게 하세요?”

“아무리 바빠도 꼭 해야 할 일을 위해서는 시간을 내야죠.”

텔레비전을 보며 자전거와 러닝머신 보약을 마신다고 한다. 주량이 얼마나 되느냐고 물으니 술도 약하고 정에도 약하다고 슬쩍 농담을 던진다.

“임기 중에 꼭 이루고 싶은 일이 있으신지.”

“대구에 연구소가 필요해요.”

R&BD센터에 기업연구소와 연구기관 분원을 유치해서 벤처타운을 만들 계획을 3년 전부터 구상했다고 한다. 연구소가 주어지고 연구 분위기가 살아나면 밀라노가 형성되는 날이 오지 않겠느냐며 그 꿈을 실현시킬 방법을 찾는 중이라고 한다. 기업이 살아야 대구시의 경제도 살아난다고. 다산 정약용이 백성을 위하여 목민관이 있다고 한 것처럼 근로자 중 누구도 억울한 사람이 생기지 않게 기업과 국가가 명심해야 할 것이 바로 애민정신과 민본사상이 아닐지. 국민이 있어야 기업도 있고 국가도 있다.

“어려운 일이 있으면 의논을 하세요?”

“의논도 하고 정보도 찾죠. 의논보다 중요한 것이 의지예요.”

이 회장은 사회적 역할이 주어졌을 때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나아가게 해주는 것이 바로 의지라고 한다. 사람은 희망을 갖고 있는 한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고. 사업가에게는 의지도 필요하고 책임감도 필요하다며 자신의 선택에 책임을 질 줄 알게 하는 것이 의지라고 재삼 강조한다. 자동차 부품 한 가지를 잡고 40년 넘도록 묵묵히 걸어올 수 있었던 힘이 의지였음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 같다.

/글 장정옥 소설가

(1997년 매일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2019년 김만중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