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의 노래와 그 시절의 추억… 그곳에 그가 살아 있었다
그 시절의 노래와 그 시절의 추억… 그곳에 그가 살아 있었다
  • 홍성식기자
  • 등록일 2021.03.16 20:10
  • 게재일 2021.03.1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코로나19 시대 경북의 언택트 관광지를 찾아
⑪ 추억 소환하는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
대구 방천시장 인근에 조성된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

그가 세상에 머문 시간은 겨우 32년. 안타까운 죽음으로부터도 이미 25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그럼에도 아파서 더 아름다웠던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사람들의 기억 속에 뜨거운 눈물처럼 선명하다. 몹시 드문 사례다.

한국엔 통기타 연주와 서정적인 노랫말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런 이들에게 대구광역시는 가수 김광석(1964~1996)의 고향으로 기억된다.
 

‘서른 즈음에’ ‘거리에서’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사랑이라는 이유로’ ‘바람이 불어오는 곳’ ‘이등병의 편지’ ‘기다려 줘’ ‘사랑했지만’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 ‘나의 노래’ ‘먼지가 되어’ ‘그날들’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그녀가 처음 울던 날’….

또한, 대구시 중구 방천시장에 조성된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은 어디서도 받을 수 없는 선물 같은 공간으로 그들에게 다가온다. 지금 40~60대인 생활인들이라면 누구랄 것 없이 청춘의 어느 한때 귓가를 맴돌던 김광석의 노래 한 소절쯤은 기억할 터.

지난해부터 지루하게 이어지는 ‘코로나19 사태’가 준 기억이 잊을 수 없는 환멸이라면, 김광석의 속삭임 같은 호소는 다른 형태의 잊을 수 없는 애틋한 기억이다.

겨울이 지루했던 막을 내리고, 2021년 봄이 분홍빛 무대를 준비하는 3월. 많은 여행자들이 대구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을 찾는 것에는 이유가 있다. 2주 연속 그곳에서 주말을 보낸 기자 역시 그랬다. 거긴 ‘일’을 위해서가 아니라, 잊을 수도 없고, 잊어서는 안 될 ‘청춘의 추억’을 반추하기 위해 찾는 공간이다. ‘김광석 길’의 한복판. 대구의 독특한 먹을거리인 납작만두를 안주로 소주 한 잔 마시기 위해 들른 노천식당. 30년 전 듣던 김광석의 노래가 스피커를 통해 머리가 아닌 가슴을 울리며 들려왔다. ‘기다려줘’였다.

 

‘김광석 길’에서 맛본 대구 대표 먹을거리 납작만두.
‘김광석 길’에서 맛본 대구 대표 먹을거리 납작만두.

난 아직 그대를 이해하지 못 하기에

그대 마음에 이르는 그 길을 찾고 있어

그대의 슬픈 마음을 환히 비춰줄 수 있는

변하지 않을 사랑이 되는 길을 찾고 있어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그대 마음에 다다르는 길

찾을 수 있을까 언제나 멀리 있는 그대….

◆ 2014년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 대통령표창 추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수 김광석에 관해선 많게 혹은, 적게 어느 정도 알고 있다. 하지만, 특정 공간을 여행하기 위해선 사전 지식이 필요하다.

그게 여행을 더욱 풍요롭게 해주는 동시에 일정 짜기에도 도움을 주니까. 세상 모든 건 ‘아는 만큼 보이는 법’. 김광석은 어떤 사람일까?

‘위키백과’는 짧고 뜨거웠던 이 사내의 삶과 죽음을 아래와 같이 요약하고 있다.

“한국의 싱어송라이터. ‘가객’ 또는, ‘노래하는 철학자’로도 불린다. 대구에서 태어나 서울로 상경해 1982년에 명지대에 입학했고, 대학연합 동아리에 가입하면서 가요 공연을 시작했다. 1984년 김민기의 음반에 참여하면서 데뷔했다. 이후 밴드 ‘동물원’의 보컬로 활동하면서 이름을 알렸다.

1996년 1월 6일 죽었으나, 사망 원인과 관련된 논란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2007년 그의 노래 ‘서른 즈음에’가 음악 평론가들이 선정한 ‘최고의 노랫말’이 됐다. 2008년 1월 12주기 추모 콘서트와 함께 대학로 학전 블루소극장에서 노래비 제막식이 열렸다. 2014년엔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 대통령표창이 추서됐다.”

일반적으로 시집엔 50편 이상의 시가, 소설집엔 10편 안팎의 소설이 실린다. 그럼에도 거기서 독자들의 기억 속에 잊히지 않고 오랫동안 남는 건 1~2편 혹은, 3~4편에 불과하다.

그런데, 김광석의 노래는 어떤가? 그의 팬들은 “모든 곡이 사람들 감수성의 창고에서 언제든지 꺼내볼 수 있는 빛나는 보석”이라고 말한다. 이런 견해가 몇몇 사람들만의 터무니없는 과장일까? 그렇지 않은 듯하다. 다음에 언급되는 김광석의 노래를 보자.

‘서른 즈음에’ ‘거리에서’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사랑이라는 이유로’ ‘바람이 불어오는 곳’ ‘이등병의 편지’ ‘기다려 줘’ ‘사랑했지만’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 ‘나의 노래’ ‘먼지가 되어’ ‘그날들’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그녀가 처음 울던 날’….

 

‘김광석 길’에서 청춘을 추억하는 여행자들.
‘김광석 길’에서 청춘을 추억하는 여행자들.

◆ ‘김광석 길’에서 더 뛰어난 예술가가 만들어지길...

적지 않은 것들을 나열했음에도 대부분이 ‘현대의 고전’으로 불러도 좋을 통기타 명곡이 아닌가. 김광석은 164cm의 작은 키에 조그만 손, 해사한 10대 소년의 얼굴로 세상과 인간을 끌어안으려다가 일찍 우리 곁에서 사라졌다.

은유로 이야기하자면 앙투안 생텍쥐페리(Antoine Marie Roger De Saint Exupery)가 쓴 ‘어린 왕자 같은 삶’이었다.

대구시가 그가 가진 가치와 의미를 일찌감치 발견해 사람들과 더불어 요절한 가인(歌人)을 추모하고, 함께 기억할 수 있는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을 조성한 건 탁월한 판단이었다고 생각된다.

그렇다면 바로 이 ‘김광석 길’은 어떤 과정을 통해 조성된 것일까? 대구광역시 중구 홈페이지가 이 질문에 답하고 있다.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은 방천시장 문전성시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만들어졌다. 대구시 중구 달구벌대로 450길은 거리 조성 이전엔 사람이 드물 정도로 어둡고 슬럼화 된 공간이었다. 이 길은 김광석이 대봉동에서 태어났다는 사실에 기초해 조성됐다. 명칭은 김광석이 1993년과 1995년에 각각 발표한 음반 ‘다시 부르기’에서 착안했다.

‘그리기’는 김광석을 그리워하면서(Miss), 그린다(Draw)는 중의적인 의미를 담았다. 2010년 11월 90m 구간이 처음 오픈됐고, 이후 계속해서 영역을 늘려갔다. 2014년 가을엔 전면적으로 재단장을 했다. 대중음악인의 이름을 딴 거리는 전국에서 최초다. 대구시는 이 길이 창작을 통해 태어난 거리인 만큼 여기서 김광석보다 더 뛰어난 예술가가 만들어지길 기대하고 있다.”

 

‘김광석 길’에서 맛본 대구 대표 먹을거리 납작만두.
‘김광석 길’에서 맛본 대구 대표 먹을거리 납작만두.

◆ 다양한 먹을거리와 함께 이색적인 카페도 적지 않아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은 슬픈 목소리를 가졌던 맑은 얼굴의 가객(歌客)을 기억하는 중년만이 아니라, 청년들도 즐겨 찾는 공간으로 이미 자리를 잡았다. 거기엔 먹을거리와 즐길거리가 적지 않다는 것이 한몫했다.

김광석의 이름이 붙은 거리 골목마다엔 대구를 대표하는 음식인 곱창전골과 막창구이, 납작만두와 매운 갈비찜을 만들어내는 식당이 줄을 지어 서있다. 각자의 취향과 입맛에 따라 ‘골라 먹는’ 재미가 있는 곳이 ‘김광석 길’이다.

어묵과 부침개를 파는 분식집에서 김광석의 노래가 흘러나온다는 것도 팬들에겐 빼놓을 수없는 매력.

최근엔 어떤 카페가 방문자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있는지 묻기 위해 20대 커플 두 쌍을 만났다.

‘코로나19 시대’임을 잘 알고 있기에 화사한 색깔의 마스크로 코와 입을 꼼꼼하게 가린 그들이 지목한 곳은 수제 맥주와 화덕 피자가 맛있다는 ‘대도양조장’.

확인을 위해 그곳에 들러 맥주와 피자를 주문했다. 적절한 가격에 다양한 향을 지닌 맥주를 맛볼 수 있었고, 치즈와 베이컨, 채소 등으로 깔끔하게 토핑 된 피자도 나쁘지 않았다. 역시 젊은이들의 감각은 어디서건 쿨하고 정확했다.

돌아올 무렵. ‘김광석 길’ 카페 차양막으로 비가 한두 방울 떨어지기 시작했다. 덤덤한 사람들의 가슴도 흔들리게 만드는 고운 봄비였다. 그 낭만적인 거리를 배경으로 김광석의 노래가 다시 흘러나왔다. ‘그날들’이었다.

그대를 생각하는 것만으로

그대를 바라볼 수 있는 것만으로

그대의 음성을 듣는 것만으로도

기쁨을 느낄 수 있었던 그날들

그대는 기억조차 못하겠지만

이렇듯 소식조차 알 수 없지만

그대의 이름을 부르는 것만으로도

눈물이 흐르곤 했었던 그날들

잊어야 한다면 잊혀지면 좋겠어

부질없는 아픔과 이별할 수 있도록

잊어야 한다면 잊혀지면 좋겠어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그대를….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기어코 봄이 왔다. 독자들 모두의 뜨거운 심장에 ‘영원히 잊히지 않을’ 이름 하나씩이 새겨지기를 기대한다.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홍성식기자님의 최신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