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설레는 인생 꿈꾸는데 나이가 무슨 상관 있나요”
“가슴 설레는 인생 꿈꾸는데 나이가 무슨 상관 있나요”
  • 홍성식기자
  • 등록일 2021.03.10 19:56
  • 게재일 2021.03.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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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에 매료된 영어강사 이미하 씨
인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가슴 설레는 삶을 이어가고 싶다는 이미하 씨.

삶의 무대를 옮기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나이가 먹어갈수록 편안한 공간, 익숙한 사람들에게 끌리는 게 인지상정(人之常情)이다.

하지만 모든 인간이 똑같을 수는 없는 법. 어떤 사람은 정주(定住)가 아닌 떠돎에서 존재의 이유를 찾기도 한다.

30년 가까운 세월 동안 모범적인 영어강사로 살아온 이미하(57)씨는 늘상 보는 풍경과 매일 만나는 사람들 곁을 떠나 캄보디아라는 낯선 나라에서 새롭고 설레는 삶을 살아가는 꿈을 꾸고 있다.

대부분의 동년배들이 안정적인 환경에서 안주하려는 나이에 20대 청춘처럼 불확실한 미래로 겁 없이 뛰어들고자 하는 이미하 씨에게 그간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지난해 출간된 이미하의 책 ‘오십, 질문을 시작하다’엔 이런 문장이 담겼다.

 

포항토박이로 30년 가까이 영어강사의 길
최근엔 신문에 투고한 글 등 모아 책 펴내기도
2009년 교회 청년부 교사로 찾은 캄보디아서
친절하고 순정한 캄보디아 사람들에 반해
현지 학생들에 영어·독서교육 펼치기로 결심
“예순이 되는 3년 후엔 닭 농장 운영하며
작은 희망 선물하는 나눔의 삶 펼칠 거예요”

“누군가 내게 캄보디아에서 답을 찾았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그렇다’라고 대답할 수 없을지 모른다. 내 삶은 캄보디아로 떠나기 전과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주어진 여러 역할을 감당하며 바쁘게 살아간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삶으로 뛰어들며 오히려 더 질문이 많아졌다. 하지만 나이 오십 언저리에서 불안하게 두리번거리던 나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 더 여유 있는 마음으로 변했다. 캄보디아에서 보낸 시간이 내 속에 영원히 시들지 않는 ‘시간의 꽃’을 남겨주었다.”

이 고백만으로는 앞서 언급한 궁금증 모두가 풀리지 않았다. 그래서 만남을 청했다. 봄이 성큼 다가온 3월 초순 어느 날 이미하 씨를 만났다.

캄보디아와 캄보디아 사람들에게 매료된 이유, 향후 캄보디아 이주 계획까지를 세세하게 들을 수 있었다. 아래는 “죽는 날까지 가슴 설레는 삶을 살고 싶다”는 그녀의 이야기다.

-포항이 고향인가.

△그렇다. 1965년 포항에서 태어났고 쭉 자랐다. 대학(경북대 영문과) 다닐 때만 대구로 잠시 떠나 있었다. 현재는 동생과 함께 영어학원을 운영하고 있다. 학교를 마친 후 25년 이상 영어강사로 일했다. 회사도 다녀보고, 사회단체에서도 잠시 일했는데, 아이들을 가르치는 게 적성에 가장 잘 맞았다.

-어린 시절엔 어떤 아이였는지 궁금하다.

△약간 조숙하고 우울한 학생이었다. 어릴 때 집안 형편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초등학교를 네 군데나 옮겨 다녔다. 친구를 사귀기 힘들었다. 책이 유일한 친구가 돼줬다. 초등학교 땐 안데르센 동화와 만났고, 중·고교생 때는 전혜린의 수필도 읽고, 루이제 린저(Luise Rinser)의 소설도 읽었다.

-영문학을 전공으로 택한 이유가 있는지.

△중학교 때 영어 선생님을 좋아했다. 우리 학교 여학생들의 우상이던 총각 선생님이었다. 그분 덕택에 누구보다 영어 공부를 열심히 했다.(웃음) 그때 예습을 하는 습관이 생겼는데, 이후 영어 실력을 탄탄하게 쌓을 수 있는 바탕이 됐다. 영어와 문학을 좋아했으니 영문학과 진학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 아닌가. 대학 때는 동아리 활동도, 학생운동에도 별 관심이 없었다. 그저 친구 한두 명과 조용히 다니며 눈에 띄지 않는 평범한 학생이었다.
 

자신이 가르치는 캄보디아 학생들과 함께 환하게 웃고 있는 이미하 씨.
자신이 가르치는 캄보디아 학생들과 함께 환하게 웃고 있는 이미하 씨.

-책읽기와 글쓰기는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가.

△젊은 시절엔 지식을 얻거나, 호기심을 충족시키거나, 삶의 영역을 넓히기 위해 책을 읽었다. 하지만 나이가 들고 보니 이제 책이 친구처럼 느껴진다. 내 마음을 가장 잘 알아주는 친구 말이다. 그래서 독서를 통해 위로를 얻는다. 책과 마음 속 깊이 숨겨둔 이야기를 나누는 것 같은 감정이 든다.

글쓰기는 어릴 때부터 좋아했다. 초등학교 때 괴발개발 쓴 글을 신문사에 보내기도 했고, 결혼한 후에도 한겨레신문 등에 독자 투고를 했다. 최근에 낸 ‘오십, 질문을 시작하다’는 나의 첫 책이다.

-이제 캄보디아 이야기를 해보자. 2009년 처음으로 방문한 것인지.

△휴가로 떠난 다른 해외여행과는 출발부터가 달랐다. 첫아이를 낳은 이후 내게는 세 가지 목표가 생겼다. 신(神)을 떠나지 않겠다, 내 재능인 영어 교육을 통해 세상에 도움을 주고 싶다, 나와 가족만을 위하는 것이 아닌 타인과 나누는 삶을 살고 싶다는 게 그것이었다. 그걸 실천하려고 청각 장애인을 위한 수화 통역봉사도 했다.

2009년 교회 청년부 교사로 활동했는데, 캄보디아로 떠난 선교여행에서 가슴 뜨거운 경험을 했다. 동남아시아 현대사가 강제한 고통과 빈곤함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야생의 생명력을 거기서 봤다. 그들의 가난이 마냥 불행한 것만은 아니란 걸 느꼈고, 순박한 눈망울을 가진 캄보디아 아이들에게 영어 공부와 독서를 통해 삶이 긍정적으로 변화할 수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어졌다.

-가장 기억에 남는 캄보디아의 도시는 어딘가.

△첫 방문 이후 열 번 이상 찾아갔다. 지인들과 함께도 가고 혼자서도 갔다. 한 해에 두 번 간 적도 있다. 마지막으로 찾아갔던 게 ‘코로나19 사태’ 직전인 지난해 2월이다. 캄보디아의 역사와 문화에 관한 책도 찾아서 읽었다. 2016년엔 5주를 머물며 영어를 가르쳤다. 캄보디아 수도인 프놈펜(Phnom Penh)의 골목길을 걸으며 현지인들과 미소 가득한 인사를 하던 게 기억에 선명하다. 그때 생각했다. ‘이 사람들과 함께 기쁨과 슬픔을 나누며 살고 싶다’고.

-캄보디아와 캄보디아 사람들의 매력은.

△20대 때 장 자크 아노(Jean Jacques Annaud)가 연출한 영화 ‘연인’을 봤다. 마지막 장면의 누런 강물이 인상적이었는데, 바로 그 메콩강을 캄보디아 낡은 목선 위에서 다시 만났다. 원시적 풍광이 너무나 매력적인 나라다. 하늘로 뻗은 열대의 나무들과 그 아래 조그만 집들, 한가롭게 풀을 뜯는 소들…. 이 모든 게 낯설지 않고 정겨웠다. 음식도 입에 맞았다. 캄보디아 사람들은 같은 동양인으로서 유대감이 있다. 게다가 친절하고 순정하다. 낯을 가리는 내가 먼저 손을 내밀 용기가 생겼다.
 

잘 살고 싶다. 죽는 날까지 가슴이 뛰는, 아침에 일어나면 무덤덤하지 않고 새로운 일에 가슴 설레는 인생을 살고 싶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보단 나쁜 일이라도 일어나는 게 신나는 것 아닐까? 모험심은 청년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라고 믿는다.

-캄보디아에서의 잊을 수 없는 에피소드는.

△‘영어 교육’을 봉사활동의 무기로 캄보디아에 간 게 쉰한 살 때다. 고등학생들을 가르쳤는데, 처음엔 세 명의 개구쟁이들이 날 힘들게 했다. 수업 분위기를 엉망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화를 내거나 혼내지 않고 조용히 불러 야자나무 아래서 ‘외국에서 온 선생님은 아직 캄보디아의 생활방식과 문화를 잘 모른단다. 너희들이 도와줄 수 없겠니?’라고 물었다. 내 말에 담긴 진실이 통했는지 그 아이들의 태도가 확 바뀌었다. 그곳 아이들에겐 때 묻지 않은 순수함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앞으로 캄보디아와의 인연을 어떻게 이어갈 생각인가.

△예순이 되는 3년 후엔 캄보디아로 이주해 살고 싶다. 그러려면 경제적 기반이 마련돼야 하기에 현지의 지인과 닭 농장 만드는 걸 진지하게 논의 중이다. 그때쯤이면 두 아들은 내 도움이 필요 없을 나이가 될 테고, 새로운 삶을 살아보고 싶다는 엄마의 꿈을 꺾지 않으리라 믿는다.(웃음) 남편에게도 함께 가자는 이야기를 이미 했다. 경제적 문제는 닭 농장 운영을 통해 해결하고, 내가 가진 영어 교육과 독서 교육이란 재능을 아낌없이 나눔으로써 캄보디아 아이들에게 작은 희망을 선물하고 싶다.

-당신이 궁극적으로 꿈꾸는 삶은.

△잘 살고 싶다. 이건 단순히 경제적인 측면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죽는 날까지 가슴이 뛰는, 아침에 일어나면 무덤덤하지 않고 새로운 일에 가슴 설레는 인생을 살고 싶다. 캄보디아로 가고 싶은 이유도 가슴 뛰고 설레는 삶을 위해서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보단 나쁜 일이라도 일어나는 게 신나는 것 아닐까? 모험심은 청년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라고 믿는다.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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