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행 보장 타임슬립물 봇물
최근 SF까지 장르 확장 이뤄
매력적 소재+작품성 갖추면
‘정주행’ 달리는 마니아층도
코로나 일상 침체 해소 한몫
‘식상하다’ 평에도 인기 여전

JTBC 드라마 ‘시지프스’. /JTBC 제공

영화나 드라마 속 타임슬립은 게임의 치트키(제작자만 아는 비밀키)와도 같다. 흥미롭고, 쉽고, 빠르고,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

일상을 무기력화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일상이 된 경기 침체에 지친 탓인지 최근 안방극장에서는 이처럼 전지전능한 타임슬립 코드가 보편화됐다. 특히 지난해부터는 “타임슬립 아니면 이야기가 안 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홍수처럼 쏟아지고 있다.

지난해 하반기에는 두 자릿수 시청률을 기록한 SBS TV ‘앨리스’를 비롯해 신예 이도현의 매력을 극대화해 호평받았던 JTBC ‘18 어게인’, 시청률 면에선 ‘펜트하우스’ 때문에 고전했으나 수작이라는 평가를 받은 MBC TV ‘카이로스’가 있다.

‘앨리스’는 죽음으로 인해 엄마 선영(김희선 분)과 영원한 이별을 했던 진겸(주원)이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엄마와 똑같은 모습을 한 태이(김희선)를 만나고 정해진 운명을 바꾸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과정을 그렸다.
 

MBC ‘카이로스’. /MBC 제공
MBC ‘카이로스’. /MBC 제공

‘18 어게인’은 ‘고백부부’ 작가의 신작답게 갈등을 겪던 부부 중 한 명이 과거로 돌아가 배우자를 피하려 하지만 결국 다시 사랑하게 된다는 내용을 담아 공감과 재미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

‘카이로스’는 김은희 작가의 ‘시그널’에서 과거와 현재의 주인공들이 무전으로 이어진 것처럼, 유괴된 어린 딸을 찾아야 하는 미래의 남자 서진(신성록)과 잃어버린 엄마를 구해야 하는 과거의 여자 애리(이세영)가 전화로 공조하는 내용을 그렸다. ‘타임 크로싱’이라는 매력적인 소재에 마니아층이 생겨났고, 현재까지도 몰아보는팬들이 많다.

올해도 연초부터 tvN ‘철인왕후’, JTBC ‘시지프스’, KBS 2TV ‘안녕? 나야!’, OCN ‘타임즈’ 등 타임슬립 포맷을 장착한 작품들이 쏟아지고 있다.

‘철인왕후’는 주인공의 타임슬립을 통해 개인의 삶뿐만 아니라 역사까지 바꿀 수 있었다. 무기력한 왕이었던 철종은 백성을 위해 통치한 성군으로 기록됐다. 역사왜곡 논란도 있었으나 통쾌함이 논란을 이기면서 시청률이 17%대로 종영했다.

전날 시작한 ‘타임즈’도 만만치 않은 스케일이다. 살해당한 대통령을 타임워프를 통해 구하는 게 목적이다. 과거와 현재의 기자가 타임슬립에 힘입어 공조하고, 진실과 거짓이 섞어 혼탁한 정치판 미스터리를 풀어나가는 과정도 호기심을 낳는다.

지난 17일 첫발을 뗀 ‘안녕? 나야!’는 어린 시절 당차고 자신감 넘치게 살았지만 녹록지 않은 현실에 무릎 꿇은 30대 반하니(최강희) 앞에 17살의 하니가 나타나면서 성장해나가는 이야기를 그린다. 앞선 두 작품에 비해 소소하지만 더 많은 사람이 공감할 만한 스토리에 힘입어 5%에 가까운 시청률로 출발했다.

최근에는 남의 나라 장르로만 인식됐던 SF(공상과학)도 ‘선택지’로 부상했다.
 

OCN ‘타임즈’. /OCN 제공
OCN ‘타임즈’. /OCN 제공

지난해 ‘앨리스’가 타임슬립과 SF를 접목해 선전한 데 이어 컴퓨터그래픽이 돋보이는 영화 ‘승리호’가 넷플릭스로 개봉해 호평받자 JTBC에서는 10주년 특별 기획 작품으로 본격 SF 장르의 ‘시지프스’를 내놨다. 제작비는 200억원, 주연도 조승우와 박신혜다.

이 작품은 천재공학자 한태술(조승우)에게 ‘빅 브라더’에 의해 통제받는 미래 도시의 강서해(박신혜)가 찾아오면서 감춰진 진실을 파헤치는 내용으로 시작부터 흥미진진한 전개를 보여줬고 5~6%대 시청률로 출발했다.

이렇듯 타임슬립이 안방극장에 자리 잡은 데 대해 식상하다는 시선도 적지 않지만, 여전히 유효한 흥행 카드라는 분석이 많다.

공희정 드라마평론가는 21일 “‘나인’(2013) 같은 작품이 나왔을 때만 해도 타임슬립은 신선했는데 이제 그런 건 없다. 다만 시간여행은 현실에서는 풀 수 없는 문제를 풀어나갈 수 있는 키(key)가 되고, 반전도 쉽게 줄 수 있어 그 자체로 몰입하기 좋은 소재인 것은 여전하다”고 말했다.

그는 “SF 장르까지 성황인 것을 보면 시간여행도 SF도 답답한 현실을 비현실적으로 풀어내고자 하는 욕망을 담은 게 아닌가 싶다. ‘이 말도 안 되는 현실을 이해할 수 없지만, 세상은 여러 개야’ 같은 메시지로 마음을 움직이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