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시인 조혜경
포항지역 동인회 ‘푸른시’ 회원
“좋은 시를 쓰고 싶다
내 시가 독자의 마음과 만나
자주 일렁이기를 바란다”

조혜경 시인.
조혜경 시인은 포항 지역 문단을 대표하는 시 동인회 ‘푸른시’의 막내 회원이다. ‘푸른시’는 1999년 포항 지역에서 활동하는 젊은 시인들이 결성한 순수시 동인회로서 현재는 8명이 회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모든 예술이 그렇듯 변방의 지역적 한계를 순수하고 올곧은 ‘시의 힘’으로 극복하려는 ‘푸른시’는 활발한 창작 활동으로 이미 문단에서 널리 알려진 동인 모임이다.

조 시인은 지난 2017년에 회원이 됐다. 그는 경험에 뿌리내린 시들을 주로 쓴다. 고향인 영덕 축산 바다와 음식,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작품에 담는다. 최근 펴낸 동인지 19호에 수록된 그의 시 ‘검은 짜장면’ 등 8편이 눈길을 끌고 있다. 지난 8일 조 시인을 만나 근황을 들었다.

- 시는 어떻게 시작하게 됐는지.

△초등학교 때 선생님의 책상에서 ‘샘터’라는 책을 보게 되었다. 그때 처음 ‘시’를 만났다. 동시는 글자 수가 얼마 되지 않아서 읽기가 좋았다.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줄거리를 기억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었다. 한편 한편이 매번 새로운 글이었고 새로운 세계였다. 지금도 제일 좋아하는 시 중의 하나인 권태응 선생님의 ‘감자꽃’은 내가 아는 감자는 분명한데 전혀 다른 감자로 다가왔다. 그때까지 내가 먹었던 보리밥 안에 굴러다니는 식은 거무튀튀한 감자가 아니라 명랑하고 즐거운 감자였던 것이다. 시가 최소의 단어들로 만들어진 문장으로써 사람들에게 선명한 이미지를 만들고 그 이미지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그때는 다 몰랐겠지만, 그 느낌이 좋아서 시를 좋아하고 쓰기 시작했다.

- 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시는 무엇이기도 하고 무엇이 아니기도 하다. 무척 애매하다. 나는 아직도 시가 ‘무엇이다’라는 정의를 내리기가 어렵다. 노래도 되었다가 기도도 되었다가 어느 날은 나를 천 길 나락으로 떨어뜨리기도 한다. 진흙으로 가득 찬 진창에 뒹굴게 하다가도 신기하게도 단박에 저 우주로 한없이 솟구치게도 하니 시는 ‘그 아무것도 아닌 아무것이다’고 말하면 답이 될 수 있을까. 시도 그렇지만 시인도 그렇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이것이다’라고 명확하게 구분을 짓지 않는 것이 나는 시인이라고 생각한다. 경계에 서 있는 사람이 시인이다. 옳고 그름도 그렇지 않은가. 모두가 다 옳을 수는 없듯 모두가 다 틀릴 수도 없다. 그래서 시인은 어느 한쪽 편에만 서지 않는 사람이다. 그래서 세상 모든 누구의 편이 될 수 있는 사람이다. 시도 시인도 세상을 삶을 당신을 홀로 두지 않는다. 언제나 당신 편이다. 그렇다면 ‘시는 내 편’이라고 생각해도 되겠다.

- ‘푸른시’는 어떻게 만나게 됐나.

△‘푸른시’는 2004년에 처음 알게 되었다. 2004년 ‘문학이 있는 목요일’이라는 포항문인협회 소속 문예아카데미 강좌에 등록을 했다. 그 곳에서 ‘푸른시’ 동인인 선생님들이 시 창작에 관한 강의를 담당하셨다. 그때부터 짝사랑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멀리서 가만히 좋아하는 한 사람이었다. 오랜 시간을 짝사랑만 해 온 내게 지금의 ‘푸른시’ 회장인 김말화 시인이 함께 동인을 하자고 제안을 해왔다. 오래 고민했었다. 나를 세상에 내놓은 사람은 부모님이다. 나를 시의 세상에 내놓은 사람은 ‘푸른시’ 선생님들이다. 시를 잘 쓰든 그렇지 못하든 나는 ‘푸른시’의 옆에 가만히 있기만 해도 좋다. “시는 세상의 푸르름이다”는 ‘푸른시’의 슬로건처럼 ‘푸른’이 주는 ‘살림과 생명’의 시의 바다에서 서툰 헤엄이라도 오랫동안 치고 싶다.

-‘푸른시’에 들어가서 어떤 점이 좋았나.

△다른 장르의 예술도 또한 그렇지만 문학의 한 분야인 시도 협업이 가능하지 않다. 소설은 책상 앞에 묵직하게 자리 잡은 엉덩이가 반은 책임진다고 한다. 시도 마찬가지다. 많은 것을 보고 듣고 읽어야 하지만 시로 남을 수 있는 것을 거르는 데는 소설과 같다. 혼자서 긴 시간을 끙끙거리고 쩔쩔매기가 일쑤다. ‘푸른시’는 한 달에 한 번 월례회라는 형식을 빌려 합평회를 갖는다. 그 시간을 통해 서로 안부를 묻기도 하며 숨을 고른다. 합평회를 거친 시는 결이 달라진다. 시를 보는 눈도 깊어지고 단단해진다. ‘푸른시’는 시의 도반(道伴)이다. 세상의 모든 길이 우리에겐 시의 길이다. ‘푸른’을 묻힌 처음의 길이다. 철저하게 혼자이지만 그런 혼자들이 여럿인 거다. 그것이 우리 ‘푸른시’의 힘이다.

-앞으로의 계획과 바람은.

△좋은 시를 쓰고 싶다. 혀의 윗부분에 돌기처럼 돋아난 부분을 미뢰라고 한다. 내 시에 그런 미뢰가 많이 있기를 바란다. 시는 시인이 내놓은 경험의 미뢰들로 이루어져 있다. 독자는 자신의 경험에서 나온 돌기를 시인의 시와 맞물려 보는 것이다. 그 맞물림이 많으면 짧은 몇 행의 시에서도 많은 책을 읽은 것 이상의 마음이 일렁인다. 그렇게 마음과 마음이 자주 일렁이기를 바란다. 나는 익숙하고 잘 아는 것을 쓰려고 한다. 사소한 것, 오래된 것, 나달나달 보풀이 이는 것, 그 보풀을 손끝으로 잡아채는 것, 식구들, 이웃들, 그들이 내 시의 처음이다. 나는 그 처음을 끝까지 가져갈 것이다. 그 마음을 ‘시’라는 신화로 만들고 싶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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