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과 손길로 전달되는 사랑이야기
시선과 손길로 전달되는 사랑이야기
  • 등록일 2021.01.18 19:33
  • 게재일 2021.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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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드 헤인즈 감독의 ‘캐롤’

토드 헤인즈 감독의 영화 ‘캐롤’은 ‘흐름’에 관한 영화다. 시작하는 연인의 감정이 어떻게 전달돼 얽히는가에 관한 영화다. 한 순간 포착돼 잊혀지지 않는 감정이 무엇을 매개로 전달되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특별나거나 유별난 것이 아니라 사랑을 경험해 보았다면 누구나 겪었을 보편적 감정의 ‘흐름’을 보여주고 있다.

시작은 ‘시선’이었다. 크리스마스 시즌을 앞두고 있는 백화점에서, 무수한 사람들 사이로 단 한 사람에게 시선이 머문다. 서로의 시선을 확인한 두 사람에게 시간과 소리가 멈추고, 두 사람만의 공기가 흐른다. 그 공간 속에서 모든 감각은 예민해지고, 미세한 떨림조차 크게 울린다. 운명적인 사랑, 한 눈에 반한 사랑이라는 단어들로 표현할 수 있겠지만 영화는 ‘흐름’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것은 언어 이전에 표현돼 전달되는 그 무엇이며, 대화없이 전달되는 감정의 총체적인 것이다. 누군가를 내 마음 안으로 들이는 이유를 쉽게 설명할 수 있었던가. 이유가 정립되기 이전의 시선에 포착되어 눈빛으로 전달되는 그 무엇이다. 순간이며 영원인 사건이 ‘눈빛’ 하나로 펼쳐지고 있는 현장을 목격한다. ‘눈빛’으로 전달된 감정은 ‘손길’로 진화한다. ‘눈빛’이 나와 당신의 불확실한 감정의 교환이었을 때, ‘손길’은 그 다음 단계로 이어지는 흐름의 신호로 작용한다. 장갑과 담배를 피우는 손과 피아노를 치는 손, 술 잔을 잡은 손과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손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시선에 풍성하며 미묘한 감정들을 실어 전달했듯이, 이들의 손동작에도 다양한 감정들이 흐르고 전달되기를 반복한다. 중요한 결정의 순간과 변곡점에서 언어보다 시선과 손길이 선행한다. 언어는, 그들이 나누는 대화는 그 이후의 확인을 위한 도구로 사용된다.

영화 ‘캐롤’의 첫 장면은 영화 후반부에서 반복되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이 장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질문을 던지는 방식이다. 영화 속에서 두 번의 중요한 질문(요청)이 나오는데 그 질문을 던진 이의 의지와 희망을 전달하는 매개체로 손길이 등장한다.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시선으로 전달된다. 두 번의 요청이 언어로 시작해 손길로 전달되고, 그에 대한 답변은 눈빛으로 전달되고, 눈빛으로 화답하는 방식으로 끝을 맺는다. 구구절절하지 않다. 섬세하게 전달되는 모든 것들을 올올이 포착해 전달하고 있다. 두 배우는 미장센 속에서 감정의 넓이보다는 깊이에 치중한다. 그 깊이가 심오하거나 난해한 깊이는 아니다. 공간의 흐름 속에 존재하는 모든 디테일들을 오롯이 전달하는 순간들을 감상자는 그저 ‘흐름’에 몸을 맡기면 되는 영화다. 만나고 헤어지는 사랑의 격량을 빼곡히 메우고 있는 것은 감정의 애틋함이다. 눈으로 감상하는 영화가 어느 순간부터 설레임과 두근거림으로 가슴을 울린다.

각자의 사랑이 어떻게 무엇으로 시작되었는가를 회상할 때, 그리고 그 기억이 무엇으로 어떻게 남아 있는가를 추억할 때, 보편적으로 떠오르는 것들의 집합체다. 상세한 이유가 사라지고 아련한 감정으로 남는 것의 모든 것들을 담았다.

영화 ‘캐롤’에서 보여지는 사랑에 개연성이 존재하지 않는다. 영화의 대사처럼 그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처럼” 등장해 시작되는 사랑이다. 그 시작은 설명할 수 없는 ‘끌림’이다. 설명하지 않아도 우리는 알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그 무엇인가다.

영화는 섬세한 것들이 유유히 흐르는 연속이다. 그 흐름이 감정의 파고를 만들고, 마지막을 장식한다. 어쩌면 격정적일 수 있는 마지막 장면은 느리고 차분하게 흐른다. 선택의 순간에 두 사람을 둘러싼 모든 것들의 소음은 소거되고 시간은 느리게 흐르며, 흔들리던 카메라는 고정되고 줌인한다. 이것은 ‘흐름’의 모든 것들이 마지막에 도달해 보여줄 수 있는 아름답고 숨막히는 엔딩이다.

마지막에 밝히는 것이지만 영화 ‘캐롤’의 사랑은 그 남자와 그 여자의 사랑이야기가 아닌 그녀와 그녀의 사랑이다. 이것이 보편적인 사랑을 이야기할 때 방해가 되거나 낯설어질 이유가 되지 않는다. 1950년대라는 시대적 배경을 감안하더라도 이질적이지 않은 보편적인 사랑의 ‘흐름’으로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문화기획사 엔진42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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