뚝심으로 만든 한국형 벨벳, 세계무대를 주름잡다
뚝심으로 만든 한국형 벨벳, 세계무대를 주름잡다
  • 등록일 2020.12.23 19:56
  • 게재일 2020.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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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손경찬의 대구·경북 人
류병선 한국여성경제인협회 경북지회장
남편 故 이원화 회장과 ‘영도벨벳’ 이끌며 최고급 벨벳 생산 이뤄내
소재개발에 온힘 특허만 14종… 국산화 성공으로 수출금자탑도
장학금 기부에 미혼모·미혼부 돕기까지 이웃사랑 실천도 앞장
류병선 한국여성경제인협회 경북지회장은 ‘코로나19 사태’를 가족의 중요함을 깨닫는 계기로 삼으면 좋을 것 같다고 했다.

벨벳 갤러리 ‘영도다움’에 들어서자 붉은 커튼과 초록색 벽지가 시선을 끌었다. 실내장식이 모두 벨벳으로 이루어졌다. 의자의 안감은 물론이고 전시되어 있는 핸드백과 여권케이스를 비롯한 홈퍼니싱의 소품이 온통 벨벳을 소재로 하고 있었다. 그 중 가장 시선을 끄는 것이 초록색 벽지였다. 의자의 부드러운 안감처럼 벽지 역시 벨벳이었다. 그 초록색이 스칼렛 오하라를 생각나게 했다. 남북전쟁을 소재로 한 불후의 명작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비비안 리가 역을 맡은 스칼렛 오하라는 영화를 대작으로 만드는데 크게 공헌한 인물이다. 전쟁으로 삶의 궁지에 처한 스칼렛이 돈 많은 남자 레트 바틀러를 만나러 간다. 돈을 빌리러 가는 곤궁한 상황이지만 결코 초라해 보이고 싶지 않았던 그녀는 저택의 창을 가린 초록색 커튼을 떼어냈다. 스칼렛의 드레스가 되어준 초록색 커튼의 소재가 바로 벨벳이었다.

 

“위기는 어떤 곳이든 다 있어요. 코로나19 사태를

가족의 중요함을 깨닫는 계기로 삼으면 좋을 것 같아요.

우리는 서로 사랑하고 용서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남을 나무라기 전에 자기 자신을 먼저 돌아보길…”

“벨벳에 대한 사랑이 각별하신 것 같은데. 언제 어떻게 인연을 맺었어요?”

“결혼 전부터 남편이 국제 고무공장의 방한화에 쓰이는 털을 납품했어요. 털이 박힌 섬유가 벨벳의 시작이었어요. 비로드가 밀수로 들어올 때였어요.”

어느 날 창업주이신 고 이원화 회장이 외국인은 머리를 둘 가졌느냐며, 그들이 만든 것을 우리가 못 만들 이유가 없다면서 벨벳의 조직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벨벳의 소재 개발의 꿈을 실현하기 위한 과정이었다. 독일제 벨벳 조각을 들고 우리나라 과학연구소를 다 찾아다녔지만 끝내 조직을 찾지 못했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 없어서 이 회장이 벨벳의 조직을 직접 만들기 시작했다. 우리 기계의 1미터가 한 폭이면 1:1 조직, 2:2 조직으로 변형을 거듭하며 수많은 번의 실패 끝에, 마침내 합당한 조직을 찾아내게 되었다. 조직을 성공시켜서 천을 짜냈으니 염색을 해야 했다. 가마솥에 불을 때서 직접 염색할 때였는데, 어렵게 짠 벨벳 한 필을 제대로 염색할 곳이 없었다. 은행에도 돈이 없을 때여서 이 회장은 가공공장을 만들어야 한다며 집안의 사돈 팔촌까지 동원해서 돈을 긁어모았다. 막상 염색을 해보니 솥마다 색이 달랐다. 옷 한 벌을 지으려면 세 마 일곱 치가 필요한데, 한 필에 옷 세 벌이 채 나오지 않는가 하면 물이 빠지고 앉았다 일어서면 털이 눕는 부작용까지 잇따랐다.

“소재를 수입하지 않고 고생하며 개발한 이유가 뭘까요?”

“수입하면 일은 쉽게 하지만 우리 것을 갖지 못하잖아요.”

언제까지나 수입에 의존할 수 없으니 우리 것을 가져야 한다는 이 회장의 절실한 바람이 있었기에 오늘날 벨벳을 세계시장으로 보내는 쾌거를 이룰 수 있었다. 우리 것을 갖는다는 건 그렇듯 누군가가 온 생애를 바쳐야 가능한 일이고, 뼈를 깎는 노력 없이는 이룰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소재 개발에 매달리며 연구를 거듭한 창업주의 피나는 노력이 있었기에 영도다움의 오늘이 있다고 여겨진다.

영도다움의 ‘다움’이란 말이 재미있다. 자기다움, 아름다움, 사람다움에서 따온 ‘다움’을 브랜드의 이름으로 삼은 창의력이 돋보인다. 사람이건 사물이건 자기다움으로 빛날 때 비로소 진정성을 가지는 것이니. 이는 세계 일류를 향한 영도다움의 열정을 대변하며 그 가치를 더한다. 게다가 이원화 회장이 원단에 새겨 넣으신 세 마리의 독수리 문양으로 ‘쓰리 이글’이라는 브랜드 네임을 얻었다. 날개를 펼친 독수리의 모습을 자카드에 새겨서 영도의 첫음절 Y를 상징한 발상은 독특함을 넘어 브랜드의 자존심을 돋보이게도 한다.

이원화 회장은 또 영도벨벳을 견제하는 일본에 맞서서 1980년에 일본산 아세테이트 원사 대신에 국산 폴리에스테르 원사를 쓰는 신제품 개발에 힘을 기울였다. 그 결과 영도벨벳은 1996년에 국산 벨벳을 개발해내기에 이르렀다. 대한민국에서, 그것도 분지도시 대구에서 이루어낸 영도다움의 신화는 끝이 없다. 앉았다 일어서면 털이 눕는 약점을 보완하는가 하면, 물세탁을 가능하게 함으로서 벨벳의 접근을 쉽게 하는 것으로 상품의 품질을 최고급으로 끌어올려 우리의 벨벳을 당당하게 세계무대에 서게 했다.

IMF라는 외환위기를 맞아서 몸집 줄이기에 나서야 했던 때를 떠올리며 류병선 회장은 잠깐 회한에 잠겼다. 직원을 줄여야 했고 밤늦도록 잔업까지 해가며 워크아웃을 탈출하기에 온 전력을 기울일 때였다, 그 위기의 순간에 외친 말이 바로 ‘하면 된다’였다. 류 회장은 벨벳으로 못할 것이 없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어려울 일에 부딪칠 때마다 ‘해봤나?’라고 스스로에게 물었다. 예전에 현대그룹 정주영 회장이 한 말이었다. 일을 해보지도 않고 미리 못한다고 물러앉는 것은 류 회장의 방식이 아녔다. 그녀는 일을 시작하던 처음에 빈손이었다는 사실을 똑똑히 기억했다. 처음부터 있어서 일을 시작한 것이 아녔다. 다 잃어도 본전이라고 생각하면 두려울 게 없었을 터.

“장학금이라던가, 좋은 일도 많이 하시던데요.”

“돈을 쓰긴 하지만 방향도 모르고 쓰지는 않아요.”

경제인연합회에서 이혼한 여성을 돕자는 건의가 나왔는데, 류 회장은 못 도운다고 딱 잘랐다. 여성이 되어서 자기가 낳은 아이도 책임지지 못하면서 이 사회에서 무슨 일을 하겠느냐고 일갈했다. 차라리 미혼부·미혼모는 도운다고 했다. 아이를 버리지 않고 책임지는 마음이 예쁘다고. 개개인 사정이야 있겠지만 자기 가정 하나 못 다스리고 이혼한 여성은 도울 필요가 없다며, 이 사회는 한 남자나 자기가 낳은 아이, 혹은 가정 속의 식구 몇 명을 다스리는 것에 비교할 수 없도록 살벌하다고 한다. 이혼녀와 미혼모를 통해서 류 회장은 작은 비유로 보다 큰 것을 말해주었다.

“벨벳의 원조가 어느 나라일까요?”

“프랑스 파리라고 해야겠죠.”

벨벳은 ‘털투성이의’라는 뜻을 지닌 중세 프랑스어 ‘블뤼’(velu)에서 왔다고 백과사전에 기록되어 있다. 프랑스 왕실의 카펫과 커튼, 의자 안감이 모두 벨벳으로 이루어진 상상을 해본다. 플로베르의 보바리 부인이 파리 사교계를 몹시 그리워하던 시절, 프랑스의 최고급 원단 역시 벨벳이었을 것이다. 그녀가 입은 드레스 역시. 밀수와 수입에 의존하던 벨벳을 우리나라에서 직접 생산해낸 영도다움의 역사는 1960년대에 시작되어 1972년에 수출을 시작하고, 1988년에 1천만 불 수출탑을 수상했다. 벨벳 특허만 14종이라니 놀랄 만하지 않은가. 벨벳의 조직을 찾아내고 자재 생산까지 해낸 것이 모두 ‘하면 된다’는 정신이 이루어낸 자연스러운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류 회장은 돈을 벌고 일을 한 것이 행복한 가정을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한시도 잊지 않았다고 했다.

한국에 옳은 벨벳공장 하나 만들겠다며 이원화 회장이 500억을 투자했다. 기계를 리스로 가져온 터라 환율 차이 때문에 폭탄 같은 빚에 떠밀려 부도를 내야 할 입장이 될 즈음, 부부가 다짐한 것이 바로 부도를 낸 부모로 남지 말자는 것이었다. 구조조정을 시작으로 공장을 옮기며 회사의 몸집 줄이기에 나섰다. 그런 어려움을 견딘 끝에 마침내 워크아웃에서 탈출했고 직원들에게 30%의 성과금을 나누어줄 수 있게 되었다.

“그때 어떤 마음이었어요?”

“너무 기뻐서 직원들에게 큰 절을 했어요. 고맙다. 여러분들의 노력으로 성과금을 가져갈 수 있게 된 거라고.”

때로는 할 말이 없어서 만세 삼창을 부르기도 했단다. 그때 직원들과 함께 외쳤던 ‘우리는 할 수 있다, 우리는 해냈다’는 그 말이 바로 류 회장의 철학이다. 그녀는 직원들을 가족이라고 표현한다. 단순히 비위를 맞추기 위한 말이 아니라 진심 어린 마음이어서 직원들에게 큰 절을 할 수 있는 거라며 가족들의 고초를 진심으로 공감했다. 굳은 땅에 물이 고이는 법이다.

“어떤 마음으로 사세요?”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삽니다. 옛말에 ‘열심히 하면 뒷골 야시가 돌본다’는 말이 있어요. 직원들을 가족으로 여기며 함께 어려움을 극복해가다 보면 어려움을 헤쳐 나가게 되어 있어요.”

벽에 걸려 있는 사훈에 ‘머리에는 지혜를, 얼굴에는 미소를, 가슴에는 사랑을, 손에는 늘 일이 함께 하게 하소서’라고 씌어 있다.

“코로나의 위기를 맞은 소상공인들에게 어떤 말씀을 해드리고 싶으세요?”

“위기는 어떤 곳이든 다 있어요. 코로나19 사태를 가족의 중요함을 깨닫는 계기로 삼으면 좋을 것 같아요.”

돈이 있다고 다 행복한 것도 아니고, 작게는 가정이고 크게는 직장이 되는 그 ‘가족’의 중요함을 깨달아야 한다며, 다시 한 번 가족의 소중함을 강조한다. 서로 사랑하고 용서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며, 남을 나무라기 전에 자기 자신을 먼저 돌아보라며 말 매듭을 짓는다. /글 장정옥 소설가

(1997년 매일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2019년 김만중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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