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경 조
제 스스로 무너질 수 없다고
꼿꼿이 직립해 있던
저 마른 꽃대, 철컥
자신을 가둔 녹슨 경계 오늘에야 허물었다
동거인 김 노인도 젓깃불도 나가버린
조등(弔燈) 없는 그 방에서
열일곱 살 나풀거리며
태평양 전쟁 해협으로 행방불명된 처녀
출렁거리던 생의 비린내
그 위병소 문짝에 날마다 목 매어도
살아남아야 했던
한 마리 새가 되어 비상해 본다
제 청춘마저 낮설어 완강히 덫이 된 땅
면사무소 호적계에
출생신고 할 자식 하나 남길 수 없었던 여자
오늘 처음으로 입술 연지 길게 바르고
훨훨 종이꽃 되어 승천하였으리
분명 이 땅의 호적 어딘가에 꼭 있을 것 같은
일제 식민치하에서 강제로 끌려가 종군 위안부로 희생당하며 질곡의 생을 살다가 돌아가신 어느 할머니의 죽음을 애도하며 전쟁의 비인간성과 제국주의 폭력을 고발하고 가슴 아픈 역사의 소용돌이를 아파하는 시인의 목소리를 듣는다. <시인>